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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인터뷰 | 이것조차도 그냥 제 모습이니까요.

조금 더 느릿하고 단단하게 나를 성장시켜 준 물건들에 대하여

8번째 물건 인터뷰이, 안펭귄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파도처럼 흘러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파도는 제각기 다른 형태 다른 리듬으로 치잖아요. 자유로운 파도처럼 앞으로도 저만의 길을 흘러가고 싶어요.


Part 1. 일기장


- 나와 가장 오랜 시간 함께 한 물건 : 일기장

저는 평소에 다양한 형태로 기록을 남기는 걸 좋아해요. 그 순간의 분위기, 온도, 향, 감정 등 세세한 것 하나하나 기억하고 싶은데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라 최대한 기록하고 저장하려고 합니다.

기억이 쉽게 휘발되는 게 아쉬워 일기장, 블로그, 사진, 영상 등 지나가는 순간순간을 가장 효과적으로 담을 수 있는 매체로 하루를 기억하려고 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메인이 되는 건 일기장인데요. 가장 날 것의 감정과 생각이 담겨 있어서 저와 닮았다고 생각해요. 가끔 일기장을 다시 읽어보면 민망할 때도 있지만, 그 또한 저의 모습이기에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가끔 일기를 쓸 때조차도 스스로의 감정이나 생각을 속일 때가 있는데 그때는 주저 없이 일기장을 덮고, 온전히 저를 드러낼 수 있는 늦은 새벽 시간에 일기를 쓰는 편이에요.

— 저도 늦은 새벽 일기를 쓰면 나에게 집중하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보통 몇 시에 일기를 쓰나요


보통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에 일기를 쓰고 있어요.

새벽 시간대가 주는 솔직함이 있어서 그 시간에 일기 쓰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가 원래 좀 늦게 자는 편이기도 하구요. 수면 패턴이 많이 불규칙해요.



— 일기는 매일 꾸준히 쓰시나요?

아니요, 쓰고 싶을 때만 써요.

그래도 딱 한 가지 지키고 있는 건 블로그에 일주일에 한 번씩 주간 일기를 쓰고 있다는 거예요. 

거의 1~2년 되어 가는데 간단하게라도 포토 덤프식으로 일주일 치 사진을 올려놓고 

몇 마디 끄적거리는 형태로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 일상을 틈틈이 기록해 오셨네요. 다양한 형태로 기록을 남기신다고 적혀 있어서 

어떤 플랫폼을 활용해서 저장해 두시는지 궁금했어요.


일단 블로그는 사진이랑 영상을 함께 담을 수 있어서 좋아해요.

물론 일기장보다 블로그는 오픈된 공간이라서 민망할 때도 있는데 

사진이나 영상을 담기에 가장 적합한 플랫폼이라서 그곳에 적고 있어요.


일기장 같은 경우에는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은 생각이나 감정들을 적고 있어요.

날것의 감정들이다 보니까 일기를 매일까지는 안 쓰는 것 같아요. 


매일 날것의 모습을 기록하면 스스로도 지치고, 감정의 변화도 크잖아요. 

그래서 일기는 정말 감정의 폭이 클 때만 쓰는 것 같아요.



— 저도 블로그에 일기를 써봤는데 꾸준히 글을 남기는 게 쉽지는 않더라구요.

꾸준히 그 습관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나요?


일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부담을 덜어주었어요. 

매일 쓰는 건 강박이 될 수도 있는데 일주일이라는 텀이 있으니 

언제든 그 안에 쓰면 되니 저한테 강박이나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루틴이 되었어요. 

덕분에 꾸준히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일기도 마찬가지인데요. 감정의 낙폭을 빠르게 알아차리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루틴인가요?

네, 뭔가 스스로 감정이 정리가 안 되거나 폭이 클 때는 그런 식으로 적고 

기록하는 걸 통해서 스스로 정리를 하는 것 같아요. 혼란스러운 마음들을.



 적고 나면 감정의 찌꺼기들이 사라지나요?

물론 해결이 되지 않는 것들도 있지만 그런 행동을 함으로써 좀 후련해지는 것 같아요.



 일기가 나에게 주는 효능감이 뭔가요?

블로그는 정말 그냥 단순 기록의 의미가 커요. 

그냥 '나 일주일 동안 이런 거 했다.' 그래서 좋았다, 혹은 나빴다 정도의 선에서 기록을 남기는 편이에요. 

일기장에는 쌓아두었던 감정을 표출할 때가 많아서 조금 더 딥한 얘기들을 쓰는 것 같아요.



— 내가 썼던 일기를 종종 다시 읽나요?

다시 읽을 때도 있어요. 몇 년 지난 이야기들을 다시 읽으면 

시간이 지나 상황이나 감정이 객관화가 되기도 하고.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 보니까 아무렇지도 않구나 하는 것도 있어서

오히려 시간이 지난 일기들을 다시 펼쳐보는 편이에요.


— 일기 속에서 낯선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나요?

제가 올해 스물다섯인데 스물둘, 스물셋 무렵의 일기를 보면 오히려 더 성숙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올해 정말 철이 없게 살고 있구나, 과거의 제가 오히려 더 어른스럽고 성숙해서 그 부분이 낯설었습니다.


 맞아요, 철드는 건 꼭 나이 순이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시기에 훅 철이 들었다가 다시 또 철이 줄어들기도 하더라구요. 힘들었던 시절에도 날 것의 일기를 썼다면, 다시는 펼쳐볼 수 없는 시절의 일기도 있나요?


고등학교 시절이 저에게 있어서는 정말 인생에 있어서 펼쳐보고 싶지 않은 3년이었기 때문에 

대학 입시가 끝나자마자 그 3년 치 플래너를 다 버렸어요. 

그냥 가끔 가다 그 시절의 기록이 궁금하기도 한데 없어져서 속 시원한 것도 있어요.


 상징적인 의미도 있었나 보네요. 버리면서 '이 시절을 떨쳐버린다'는 느낌도 있었던 건가요?

그런 것도 있고, 그냥 거기 있던 어둡고 힘든 감정들을 다시 펼치면서 고통받기가 싫었어요. 

그냥 그대로 버리고 싶었죠. 물론 조금씩 단단해지고 아물었기 때문에 지금이라면 편하게 읽었을 것 같아요.



— 일기는 언제부터 썼나요?

왜 초등학교 때 일기장 있잖아요. 

그때부터 썼는데, 보니까 어렸을 때부터 제가 뭔가 끄적이는 걸 좋아했더라고요. 


본가에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기장이 남아 있는데 일기가 쓰기 싫으면 아예 안 쓰면 되는 거잖아요. 근데 '오늘은 그냥 일기 쓰기 싫다'라고 적어놨더라고요. 


그걸 보고 내가 뭔가를 적는 것, 기록 남기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는 걸 느꼈어요.



— 블로그로 입성을 하게 된 건 언제부터예요?

블로그는 스무 살 때 동아리 선배가 이런저런 기록들을 꾸준히 남기면 나중에 네게 큰 자산이 될 거라고 해서 시작했던 건데 초창기에는 맛집이나 리뷰 글 위주였어요. 어느 순간부터 자전적인 얘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비중이 좀 더 일상 쪽으로 치우치게 된 것 같아요.




— 저는 사실 블로그에 얼굴을 절대 안 올리거든요. 펭귄님의 블로그에는 얼굴도 자유롭게 업로드되던

그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그 모습도 저이기 때문에 부담감은 없고요. 

과거의 저였다면 그걸 다 숨겼을 것 같아요. 

어딘가에 노출되는 모습이나 사진들 전부.


근데 어느 순간부터 본연의 저를, 노출하는 것에 대해 부담이 없어진 것 같아요. 

그냥 그게 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거고 그냥 '내 모습이 싫은 사람은 그 사람이 비켜가겠지'라는 마인드로 그냥 제 글과 사진을 올리고 있습니다.



— 아이유님이 일기를 정말 꾸준히 썼잖아요. 

무료해졌던 때에는 일기 쓰는 걸 2년 정도 멈추기도 했고, 요즘은 '무엇을 할 예정'이라는 식으로 낮에 일기를 써보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펭귄님도 일기에 권태기가 있을 때 일기에 변주를 주기도 하나요?


최근에 일기장에 글 쓰는 게 안 되고 있거든요. 

뭔가 써야만 한다는 강박으로 억지로 쓰는 것도 싫고 

그렇게 썼을 때의 일기도 별것 없는 문장이 나오기 때문에 

차라리 이럴 거면 안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은 느슨하게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있다고 해야 될까요? 


그래서 일기를 안 쓰고 있어요. 

근데 아마 다시 스스로를 조여야 할 시기가 온다면 하루하루를 다시 기록해 나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 일기를 멈추는 것에 큰 부담은 없네요. '난 일기 쓰는 인간이야. 다시 써야 돼!'

이런 마음보다는 다시 줄이 당겨지면, 내가 쓸 때가 오겠지 이런 여유로운 모습이에요.


한때는 그런 생각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이 모습조차도 나니까 그냥 인정을 하고

지금은 내가 조금 쉬고 싶은가 보다 하면서 모든 감정을 인정하고 있어요.


— 블로그가 일상의 나열이고 일기는 감정의 흐름에 가까운 듯해요. 

어느 날  갑자기 불이 나서 이 일기장들이 다 사라져버린다면 나의 기분은 어떨까요?


마음이 쓰릴 것 같긴 해요. 왜냐면 2022년이 그냥 통으로 날아가는 거잖아요.

좀 아릴 것 같아요.


— 하지만 담담하네요. 어차피 또 적어 나갈테니까

네, 앞으로 또 써나갈 거니까요. 그리고 블로그가 있잖아요. 

감정적인 건 날아가고 휘발되는 거지만 그 블로그에 일상의 기록일지라도 감정들이 조금씩은 묻어 있기 때문에 그걸 통해서 기억할 수 있으니까.



— 앞으로 평생 내가 일기를 적는 사람일 거라는 확신이 있나요?

일기가 됐든 낙서가 됐든 어떤 형태로든 기록을 하는 사람일 건 분명한 것 같아요.


— 사람을 자주 만나는 편이라고 하셨는데 

나와 사람들의 시간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추고 조율하고 있나요?


이래서 잠을 잘 못 자는 것 같기도 해요.

사람들을 만나서 얻는 에너지와 혼자 있을 때 얻는 에너지는 종류가 다르잖아요. 


근데 저는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아서 집에서 혼자 있을 때 피곤해도 

하고 싶었던 게 있으면 영화를 본다든지 유튜브를 본다든지 그런 걸 꼭 하고 자거든요. 

그렇게 안 했을 땐 다음 날에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에너지가 안 생겨요. 


사람들은 저를 외향적으로들 많이 생각하는데 

저는 사실 혼자 있는 시간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일주일에 그래도 약속이 거의 한 4~5일 있었다면 반드시 

이틀은 집에 틀어박혀서 안 나가고 그냥 혼자 있어요.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할 일 하고, 그런 시간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 잠들기 전에 일기를 쓰는 이유가 '그 시간이 제일 솔직하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혹시 잠들기 전과 깬 후에 나의 감정선은 어떻게 다른 것 같아요?


한 번 잠들기 전에 썼던 일기를 일어나서 본 적이 있거든요. 

스스로한테 너무 민망한 거예요. 

그 누구도 내 일기를 보지 않았지만 스스로 부끄러운 거예요. 


그럴 정도로 이성적인 모먼트와 감성적인 모먼트가 다른 것 같아요. 

가끔 가다 저랑 친한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너는 진짜 한없이 차가울 때가 있다. 한없이 냉정해 보일 때가 있다'고 하는데 그런 순간과 감정적인 순간이 제 안에 공존하는 것 같아요.


— 아무도 읽은 적 없는 이 일기장을 만약 누군가 읽게 된다면 어떨 것 같아요?


근데 그건 궁금해요. 

만약에 날 것 그 자체의 안수현을 다른 타인이 읽었을 때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거든요.

왜냐면 남들이 생각하는 제 모습과 다를 수도 있잖아요. 

어쩌면 제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저의 날것의 모습을 보고 

놀랄 수도 있는 거고, 그 반응이 궁금하긴 해요.


— 혹시 공유해 줄 수 있는 한 구절이 있나요?

네, 이 페이지가 적당히 감정이 좀 섞여 있는 것 같아요.

오늘 새벽에 화재 때문에 피곤한 상태로 하루 종일 방 안에 있었다. 
오후 4시가 넘어서야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게 오늘의 가장 의미 있는 활동. 
대응단 오니까 좋기는 한데 생활 패턴 망가지는 건 답도 없네.
(중략)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직 나는 한참 부족한 사람이지만 조금씩 채워가면서 바위처럼 단단해지고 싶다.
저녁에는 평소처럼 후임들이랑 운동도 하고 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기 전에 오랜만에 아이유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들으면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이 시간과 잘 어울려서 기분이 좋다. 가사가 정말 예쁘다.






— 요즘은 스스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의 폭이 좁잖아요. 한 글자씩 손으로 꾹꾹 눌러쓰는 일기를 어떻게 오래 이어올 수 있었을까요?

일단은 일기를 완성형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안 써지는 것 같아요. 

끝을 내지 못하더라도 일단은 써나가보다 보면 어떤 형태로든 마무리가 될 거라는 마음으로,

저는 끝을 생각하고 쓰지는 않거든요. 


그리고 일기장이라는 건 오로지 저의 것이고 

제 공간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가 되든 상관이 없어서 저는 형태에 대한 강박을 안 가지려고 해요. 

그래야 쓰는 부담도 줄어들고.


일기 권태기 올 때는 이만큼이나 안 적었거든요. 

진짜 해야 할 일들만 적어놓은 날도 있고.

이때는 글씨도 좀 느슨해진 것 같은데, 이런 때에 억지로 "해야 해!"라고는 안 하는 것 같아요.








Part 2. 반려 식물


- 요즘 내가 푹 빠진 물건 : 반려 식물

요즘 제가 푹 빠진 물건이라기보다는 반려 식물이에요.
 어렸을 때 종종 키우긴 했지만, 저만의 공간이 없어서 애착이나 책임감이 없었는데요. 지금은 네모난 저의 공간이 생겨서 반려 식물을 하나하나 들여오고 있습니다.

침대에 누워서 햇볕을 쬐고 있는 반려 식물들을 보면서 멍 때리면 행복하기도 하고, 하루하루 자라 있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기도 해요.

삭막했던 제 공간이 푸른색으로 가득 차고 있는 요즘이라 행복합니다.


맨 오른쪽 식물이 우주목 친구


— 창가에 식물이 엄청 많은데 가장 애착이 가는 식물이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저는 이 친구가 제일 애착이 강한데요. 제가 어렸을 때도 식물을 키웠어요. 

당시 제가 키웠던 식물 종류가 이 우주목이라는 친구인데, 

그 당시에는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아마 식물 키우시는 분들은 아실텐데 

너무 많은 관심을 주면 오히려 식물한테 해가 되거든요. 

과습이 된다든지 영양 과잉이 된다든지. 그래서 어렸을 때 키웠던 우주목이 말라서 죽었어요.

 

지금의 우주목을 만나게 된 날엔 제가 망원 쪽에서 약속이 있었는데 

지하철을 타고 집을 가려다가 그날따라 뭔가 걷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지하철을 타지 않고 몇 정거장 걸어가는데 길거리 노점상에 이게 있었어요. 

'어? 저거 우주목인데?' 하고 냅다 데리고 왔죠.


— 식물이 특이하게 생겼네요. 

선인장 다육 식물 종류예요.

물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주면 돼요. 어렸을 때는 너무 물을 많이 준 나머지 죽어서.


— 언제 산 거예요? 

작년에 이 집에 이사 오고 나서 얘를 제일 먼저 들였어요 



— 집으로 오는 길이 엄청 푸릇푸릇했잖아요, 나무도 많고.

푸릇푸릇한 자연을 좋아하시는 편인지 궁금해요.


집이 부산인데 제 방 창문을 열면 바다가 조금 보이거든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바다나 숲 아니면 자연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자연의 색이나 자연의 소리, 자연의 향이 들리거나 보일 때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저도 모르게 좋아하는 것 같아요.


— 좋아하는 색깔은 무슨 색인가요?

진한 초록색, 혹은 연한 파란색이에요.


 이후에 더 들이고 싶은 식물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얘를 꼭 사야 해! 라고 종류를 정한 건 아니고 

그냥 양재 꽃시장 구경하다가 이거 괜찮은데? 싶어서 데려온 친구들이거든요. 

그래서 뭔가 꼭 이 식물을 사야지! 하는 기준은 없는 것 같아요. 


— 나중에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가게 된다면 대형 식물을 들이고 싶은 마음도 있나요?

네 있어요. 몬스테라나 테이블야자. 그런 친구들.


걔네는 확실히 좀 크기도 하고, 큰 집에 있어야 걔네들도 좋지 않을까 해요.

지금은 못 데려오는데 나중에 제가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 데리고 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 자취집에서도 충분히 잘 키우고 계시는 것 같아요. 내가 식물에게 배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얘네도 성장을 하는구나.' 잠깐잠깐 볼 때마다 성장해 있는 걸 보면서 나도 얘네처럼 무디지만 조금씩 성장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어쨌든 저는 얘네들을 맨날 보잖아요. 

볼 때 그냥 별로 안 큰 것 같은데 제가 옛날에 찍은 사진들을 보면 생각보다 많이 자랐다는 걸 느낄 수 있어서 신기한 것 같아요.




— 혹시 식물 일기는 써보신 적 없나요?

식물 일기는 안 쓰는데 일기 내용이 그냥 식물이 될 때도 있죠. 근데 식물이 메인이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얘네들에게 관심을 너무 많이 주면 오히려 안 좋다는 걸 어렸을 때 느껴서 그런지 관심을 덜어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 토기 모양의 화분을 좋아하시네요.

맞아요. 오늘의 집이나 핀터레스트를 보면 그 사람 취향을 알 수 있다고 하잖아요. 제가 하트를 찍어놓은 사진들을 보면 항상 플렌테리어나 자연과 관련된 인테리어가 있어요. 그런 걸 좋아하기도 하고 이런 화분의 형태가 그냥 저의 집이나 저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데려왔어요.


— 식물은 생각보다 신경 써서 키워야 하는데, 

내가 이제 식물을 위해서 이것까지 해봤다 하는 노력이 있다면요?

근데 저는 진짜 다른 식집사 분들에 비해서 관심과 신경을 안 쓰는 편이긴 해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너무 많은 관심과 신경이 오히려 독이 된다는 걸 알고 나서는 

얘를 위해서 영양제를 더 사야 돼. 이런 식의 집중케어는 안 하고 있어요.


이것저것 일 벌리고 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제가 너무 바빠지면 신경을 못 써줄 때가 있을 테니 차라리 좀 강한 친구들을 데려오려고 해요.

얘네가 저의 삶의 중심이 되면 안 되니까



— 식물이 멈춰 있는 듯 보여도 느릿하게 조금씩 자라나는 모습에서 배운다고 했는데, 

펭귄님도 그 식물처럼 느릿하게 자라는 편이라고 생각하나요?


네, 저도 느리지만 성장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지인에게 "왜 이렇게 조급해? 충분히 너를 잘 쌓아가고 있으니까 차분하게 여유를 가져도 돼" 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내가 생각했을 때는 내가 지금 성장을 멈춘 것 같은데, 

남이 보기에는 충분히 많은 성장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위로가 됐어요.


— 식물을 기르면서 내가 달라진 점이 있나요?

제가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그럼 저는 한없이 늘어지고 누워 있는 편인데 식물들은 집에서 관리를 해줘야 하니까 

집에서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게 되고 생산적으로 변하는 기분이 들어요.


그리고 우주목은 제가 토분 크기를 잘못 잡아서 생각보다 큰 데 심어줬거든요. 

살짝 작은 데로 옮겨줘야 되나 싶기도 하고 요즘은 그런 생각도 하고 있어요.


— 내 공간에 머물면서 느끼는 기쁨에 있어서 식물과 일기 그리고 필로우 미스트가 몇 퍼센트의 지분을 차지하나요?


그래도 절반 이상은 차지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제 공간에서 식물이 공간의 분위기를 많이 자아내잖아요. 그래서 얘네가 주는 힘이 크다고 생각해요. 일기도 저의 하루와 감정을 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요. 필로우 미스트는 하루를 끝내는 저의 잠을 책임지는 친구니까 중요하죠.




Part 3. 필로우 미스트

- 나의 루틴에 쓰이는 물건 : 필로우 미스트

필로우 미스트는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처음 받아서 사용하고,
너무 좋아서 저의 루틴에 쓰이는 물건이 되었어요.

저는 쉽게 잠에 들지 못하는 편인데요. 필로우 미스트를 의식적으로라도 뿌리게 되면 제 뇌가 잘 시간이 되었구나 인지해서 조금은 편안하게 잘 수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퇴사 선물로 사수분께 받은 필로우 미스트도 너무 잘 쓰고 있는데 제가 좋아하는 숲 향이라서 정착하게 될 것 같습니다.


— 필로우 미스트는 향을 품고 있는 동시에 잠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잠에 쉽게 못 드신다고 하셨었는데 필로우 미스트를 쓰면서부터 일찍 잘 수 있게 되었나요?


여전히 일찍은 못 자지만, 잠들 때 조금이나마 기분 좋게 잘 수 있어요.

어느 정도 잠잘 때 맡는 향이라는 게 인식이 돼서 그런지 심적으로는 편안해진 것 같아요.


— 누운 뒤에 잠에 드는 속도가 느린 편이에요?

되게 느려요. 제가 생각도 많고 쓸데없는 걱정도 많아서.

어릴 때부터 감정이나 성격적으로나 예민한 편이어서 잠에 늦게 드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 잘 자기 위해서 했던 나의 노력이 있다면요?

약도 먹어봤는데 일시적으로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근본적으로는 해결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겨내려고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인정해버렸어요.

잠을 못 자는 것도, 생각이 많은 것도 다 나의 모습이니까 

나는 그냥 잠에 잘 못 드는 사람이구나 하고 받아들였어요.



— 어떤 향에 꽂혔던 적이 있나요?

제가 향을 모르는 사람한테 물어본 적 있거든요. 특정 브랜드의 옷을 샀는데 뭔가 뿌려주신 거예요. 몰랐는데 향이 너무 좋아서 옷을 사 들고 나오다가 다시 들어가서 물어봤어요. 답을 듣고 나서 그 향을 위시 리스트에 담아놨는데 친구가 선물을 해줘서 잘 쓰고 있어요.


그랑핸드라는 브랜드예요. 이건 여름 바다 향이고, 얘는 되게 우디한 향이에요.

요즘은 날씨가 선선해지고 있어서 2개를 페어링해서 쓰고 있어요. 



— 잠을 불러오는 필로우 미스트, 사실 잠을 불러온다기보다는 '이제 잘 시간이야'라고 몸에게 알리는 신호탄 정도지만요. 내가 나 자신을 의식적으로 컨트롤하는 경우가 다른 일상 루틴 속에서도 있나요?

또 다른 루틴... 저는 운동을 꾸준히 하려고 하고 있는데 운동을 못 가는 날이어도 

하루에 만 보 이상은 걸으려고 하고 있어요.


— 걷는 것 자체도 힘들지만 걷는 것에 시간을 들이는 게 쉽지 않거든요. 

이 시간들도 잠을 줄이면서 확보된 건가요?

막 무리하게 잠을 줄여서까지는 하지 않아요. 제가 원래 산책을 좋아해서 

만보를 채우는 게 저한텐 그렇게 어렵지는 않거든요.





— 이제는 나 자신의 일부로 수용했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숙면처럼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지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인간관계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나를 좋아하는 만큼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한때는 누군가 저를 싫어하는 이유를 찾으면 고치려고 했거든요. '그 사람이 나를 안 좋게 보면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구나' 생각해서 노력을 했었던 때가 있는데 고쳐도 그 사람은 그냥 저를 싫어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것에 태연해지고 그냥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나를 싫어하고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나아졌는데 저는 어쨌든 간에 마음처럼 되지 않는 건 인간관계라고 생각을 해요.






— 내 인생에 있어서 잠은 중요한 요소인가요? 잠을 좋아하나요?

중요하죠. 약간 웃길 수도 있는데 잠을 되게 몰아서 자거든요. 

혼자 있는 시간이 일주일에 두 번 있다면 진짜 하루 종일 잠만 자요. 

자다가 깨서 배고프면 뭘 좀 먹고 다시 자고.


— 잠에서 깨는 순간과 잠드는 순간 중에 어떤 순간을 더 좋아해요?

저는 잠드는 순간이 더 좋아요.


그냥 자는 게 좋아요. 

자면서 좀 쉬는 것도 좋고, 가끔 깨고 싶지 않을 때가 있을 만큼 잠이 좋아요.





— 나의 물건들을 정의를 한다면 무엇일까요? 나의 물건들은 ___다.


나의 물건들은 그냥 25살의 안수현이다 

일단은 앞에서 얘기했듯, 그냥 저의 일상이나 저에 관련된 것들이거든요. 

그래서 저 그 자체를 나타내고 있어서 '25살의 안수현이다. '

만약에 내년 이 시점에 인터뷰를 한다면 또 물건들이 달라져 있을 것 같아요.


— 사람들이 내 인터뷰를 보고 어떤 걸 느꼈으면 하나요?


'이런 사람도 있구나' 


왜냐면 세상에 다양한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그냥 저 사람은 저렇게 살고 있구나, 되게 재미있게 살고 있네 

저 사람의 색깔은 저거구나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색깔이 없어서 무색무취인 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부분 때문에 고민이 많았어요.

24살부터 뭔가 제 색깔을 하나씩 찾아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 되게 자기만의 색깔이 뚜렷하다'고 생각해준다면 저는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 사적인 질문인데요, 내 일상 속에서 가장 비생산적인 순간은 언제인가요?


안 좋은 거긴 한데, 제가 발등에 불 떨어졌을 때 효율이 제일 잘 나거든요. 

이것 자체가 좀 비생산적인 사람이지 않나. 미리미리 했을 때 효율이 나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미리미리도 해봤거든요. 근데 발등에 불 떨어졌을 때만큼의 효율이 안 나요.


— 물건들이 대체로 집과 관련되어 있어요. 집에 있는 시간이 밖에 있는 시간보다 애틋한가요?


집에 있는 시간이 조금 더 저 같아요. 

블로그의 안수현과 일기장의 안수현은 다른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지금의 안수현은 일기장에 더 가까운 사람이라고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알겠습니다. 스물여섯 펭귄님의 모습도 기대하며 이번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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