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된 주택에 차린 신혼살림
작년 겨울, 아르헨티나 여행 때 친구 집에서 머물렀다. 그 집은 햇살이 잘 들어오는 단독주택이었다.
나는 평생을 아파트에서 살았고, 자취할 땐 빌라에 살아왔기 때문에 주택에 오래 머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주택은 무언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 주택은 온전히 친구와,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 둘만의 공간으로 느껴졌고, 그 공간에 두 사람의 따뜻함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었다.
또 땅과 가까워서 그런지 알 수 없는 안정감이 느껴졌고, 주변에 고층 건물이 없으니 햇살이 온전히 들어와 기분을 좋게 했다.
이웃과의 정을 느낄 수 있었고, 사람냄새가 났다.
그 따뜻한 기억이 마음에 남았는데, 우리는 3개월 뒤 거짓말처럼 4월 1일 만우절에 주택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신혼집을 주택 월세로 시작한다고 하니,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주택~? 진짜?”
놀랄만도 했다. 대부분 신혼부부는 아파트 전세로 시작할테니까.
사실 우리도 그랬다. 이전 집은 전세 3억, 깔끔하게 올수리된 아파트 전세였다.
하지만 서울 외곽이라 출퇴근 거리를 감수해야 했다. 왕복 3시간이 넘는 출퇴근길에 지칠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혼집이 꼭 아파트여야 하나? 굳이 남들이 사는 방식대로 살아야 하나?’
나는 조금 낡았더라도, 작더라도, 입지 좋은 곳에서 살고 싶었다.
이왕이면 햇살이 잘 드는, 고즈넉한 주택이면 더 좋고.
예비신랑과 오랜 대화 끝에, 전세계약을 1년도 채우지 않고 이사를 결심했다.
중개비, 이사비 등등 기회비용이 많이 들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는 기대만큼 걱정도 컸다.
‘신랑이 막상 마음에 안 들어하면 어떡하지?’
걱정은 기우였다.
중개사와 함께 이 집을 처음 보러 왔던 날, 우리는 동시에 말했다.
“이건 우리 집이야.”
그렇게 다음 보기로 한 집을 모두 취소하고, 계약을 진행했다.
계약부터 이사까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그리고 입주 첫날, 예비신랑은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행복하게 시작하자며 내게 프로포즈를 했다.
우리의 바람처럼, 이곳에 온 날부터 행복한 일들로 가득했고, 오래전부터 살아온 집처럼 편안했다.
“노엘아, 나 사실 전 집은 정이 안 갔었는데, 여긴 정이 붙어. 원래 살던 집 같아.“
“집이란 게 뭔지, 신혼이라는 게 뭔지 알려주는 집 같아. 우리가 가족으로 더 단단해지는 느낌이야.”
곰곰이 생각해봤다.
뭐가 다른 걸까? 왜 느끼는 게 다른 걸까?
주택은 손이 많이 간다. 그게 오히려 우리에겐 장점이었다. 예전에는 혼자 살아도 아무 불편이 없었다.
그래서 결혼이 왜 필요한가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주택에 살면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혼자 못 살겠다.’
이 집에선 매일 신랑의 도움이 필요하다.
고장 난 것을 척척 고쳐주는 그의 든든한 모습에, 나는 조금 더 그를 믿게 되고 의지하게 된다.
또 주택은 경비 아저씨가 없다. 혼자 살면 불안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언제나 나를 지켜줄 남편이 늘 옆에 있다.
존재만으로도 안심이 되고 고마운 사람, 없으면 안되는 소중한 사람이 되버렸다. 그가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이다.
그렇게 우리의 신혼이 시작됐다. 사람들은 ‘신혼집’ 하면 예쁘게 꾸며진 아파트를 떠올리지만, 우리에겐 새것일 필요가 없었고 아파트일 필요가 없었다.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는, 우리만의 온기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했다.
이 집에서 나는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매일 배운다. 그리고 서로의 소중함을 더 깨닫는다.
주택이라는 공간은 우리를 더 자주 마주치게 만들었고, 더 자주 서로를 필요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족이 되어가고 있다.
아직은 이삿짐도 다 풀지 못한, 시작의 시간에 머물러 있지만 햇살 좋은 오후면 종종 생각하게 된다.
참 잘했다. 내 취향을 빨리 알게 된 것.
남들이 아닌, 우리의 방식대로 살기로 한 것.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집을 스스로 찾은 것.
60년된 주택에서 시작하는 신혼생활,
예쁘게 봐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