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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미 Oct 20. 2022

육아, 정보를 쳐내는 기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엄마의 심지가 강해야 해요.”



2015년 11월 7일 토요일 118일

요즘 지민이의 수유 텀과 수면시간을 조절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수유 텀이 바뀌면 낮잠 시간과 밤잠 시간까지 영향을 받는다. 그때마다 잠투정이 격렬하다.
더불어 과연 쪽쪽이를 이런 식으로 계속 사용해도 되는지에 관해 고민하고 있다.

꽤 피곤한 하루였다. 종일 비가 와서 나가지도 못하고… 그래서 그런지 몸과 마음이 축축 쳐지는 것 같다.
오늘은 오후 8시 20분에 잠들었다. 과연 몇 시에 깰까?
잘 자렴 아가야.


2015년 11월 09일 월요일 120일

고민이 많다. 지민이가 자꾸 새벽 세 시에 깨고 그때부턴 한 시간에 한 번씩 깬다. 왜 그럴까?
분명 수유량, 수유 텀과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흠…….
쪽쪽이는 최대한 주지 않으려고 한다.

방금 전 엄청나게 울었고 목이 쉬었다.
사람이 울다가 목이 쉴 수도 있는 거구나.
분명 잠투정으로 시작했는데 갑자기 오열로 바뀌었다. 분노와 원망이 섞인 듯한…….


<육아대백과사전>을 뒤적여 봤다. 책은 질릴 만큼 두껍지만 내가 원하는 답은 거기에 없다. 육아 중인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내가 그토록 원했던 '완모의 꿈'을 달성한 훌륭한 어머니들이다. 여러 가지 추측만이 난무할 뿐 역시 분유에 한해선 아는 바가 없다.

육아 인터넷 카페에 접속했다. ‘대한민국 아기들은 XX카페가 키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회원수가 어마어마한 카페다. 4개월짜리 아기의 수유와 수면 시간, 쪽쪽이에 관해 검색했다. 사용 설명서처럼 명확하고 심플한 지침이 필요했다.

소아과 의사나 아동 심리학 박사 등, 이른바 전문가 -혹은 권위자- 라 불리는 사람들의 기사들 위주로 살펴봤다.



“아기가 배고파서 울 때까지 기다려라! 울게 놔둬라! 배고프다고 의사 표현할 기회를 빼앗지 말아라!”

“아기가 너무 울게 내버려 두지 말아라! 엄마가 아기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안정적인 애착이 형성된다!”

“뱃고래가 빵빵하게 커질 때까지 양껏 먹여라!”

“수유량을 점점 늘려야 한다! 많이 먹는 애들이 잠도 잘 잔다!”

“먹다가 잠들지 않도록 하라! 깨워라! 충분히 먹이고 난 후 재워야 푹 잘 자는 법이다.”

“먹다가 잠들면 그대로 두세요! 억지로 먹이려 하지 마세요!”

“낮잠을 너무 오래 재우지 말아라! 한 시간 반 후 깨우는 것이 좋다!”

“아기가 자고 싶은 만큼 자게 놔둬라!”

“안고 재우다 잠들면 30분가량 더 안고 있다가 내려놓아라. 그런 후 30분 후 다시 안고 있다가, 다음 30분 후 깨워라!”

“아기가 잠들면 엄마도 자라!”



눈이 뱅글뱅글 돌아갔다. 귓전에서 한꺼번에 여러 사람이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배고파서 울 때까지 놔두자니 너무 울었다. 너무 크고, 너무 길게 울었다. 알고 보니 배고파서 우는 게 아닐 때도 있었다.

울려는 낌새가 느껴질 때 바로 분유를 주거나 안아줘도 때로는 악악 대고 운다. 역시 원인을 모르겠다. 너 따윈 내 엄마로 부족하다고 거부하는 것만 같다.

뱃고래가 빵빵할 때까지 먹이고, 먹이다가 입과 코로 분유를 뿜어낸 적도 있다. 그런 장면은 만화책에서나 봤지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충분히 먹고 곤히 잠든 것 같아 안심했는데 20분 만에 깨서 2시간 이상 울 때도 있었다.

평소 먹던 양보다 적게 먹었는데 먹다가 잠이 들면 불안하다. 짧은 낮잠 후 일어나서 또 달라고 하면 어쩌지? 그때 또 주면 되나? 아니면 다음 수유 시간까지 버티다 줘야 하나? 울기 시작하면 그 울음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수유량의 변동 때문에 잠자는 시간이 마구 엉키면 어쩌지? (그래서 내가 힘들면 어쩌지?)

어떻게 재운 낮잠인데, 제 스스로 깨지 않은 걸 내 손으로 깨울 순 없다.

어떻게 얻은 자유시간인데, 함께 잠들 순 없다. 결코 그럴 순 없다.


쪽쪽이에 대해 검색했다.


"서양 아이들은 5살까지 쪽쪽이를 무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무는 사람은 없으니 안심하세요."

가장 위로가 되는 글이었다. 하지만 정말 다섯 살 때까지 쪽쪽이를 물려고 하면 어쩌나 5년 후의 조바심이 밀려왔다.


"쪽쪽이보다는 손가락 빠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오, 손가락을 빨게 해 볼까? 나도 빨았잖아.


"손가락을 빨면 손이 짓무를 수 있으니 쪽쪽이가 낫습니다."

아......


"가급적이면 쪽쪽이에 의존하지 마세요. 의존도를 최대한 낮춰야 합니다."

역시 그렇구나. 의존도는 어떻게 낮출 수 있는 거야?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끊을 수 있으니 너무 염려 마세요.”

그냥 맘 편히 쭉 써볼까?


"쪽쪽이는 구강구조 형성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럴 수가! 아예 안 쓰는 편이 낫겠어!


"쪽쪽이를 끊을 때는 일정 기간 동안 아이의 울음을 견딜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난 거기서 살아남을 수 없을 거야.


인터넷 창을 닫고, 한 동안 멍하니 있었다.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했다. 답안지를 봤는데도 이해가 안 가는 방정식 같다.

어여쁜 아기와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이렇게 오리무중의 연속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상하다. 이론은 완벽한데…….


아기가 나를 보고 웃는다. 쉰 목소리로 웃는 웃음소리에 가슴이 죄어들었다.

나는 오늘 실패했는데, 너는 나를 보고 웃어주는구나.


*


늦은 밤, 단톡방의 친구들이 아이들을 재우고 안부를 묻는다. 흡사 전쟁 영화 속에서 전우의 생사를 확인하는 정도의 무게감이다.


현실주의자(4세 양육 중) : 그래. 생각난다. 많이 힘들었어. 정말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나.
아들 셋 : 힘들지. 몸이 가루가 되는 것 같지. 내가 갈가리 다 흩어져서 없어져 버릴 것만 같지. 힘들고 말고.
커리어우먼(비양육자) : 고생했어. 고생 많았어. 너희 정말 대단해.
아들 셋 : 내가 조만간 놀러 갈게. 조금만 힘내. 응?


너저분한 것들이 널려있는 어두운 거실 한 구석에서 자그마한 휴대폰에 의지한 채 꺼이꺼이 눈물을 삼켰다.


젊은 엄마들은 함께 울어주지만, 늙은 엄마들은 깔깔깔 웃는다. 왠지 통쾌함이 묻어있는 웃음이다.


친정엄마 : 애가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지. 매일 잘 자면 그게 애기야? 나도 맨날 피곤하고 어지러웠어. 그만하면 순하고 착한 거지!
시어머니 : 아이고~ 깔깔깔깔! 너도 그렇게 컸어. 이제 알겠냐? 그러면서 엄마 되는 거다. 엄마 되는 게 쉽지 않은 거야.


그 옛날 갓난아기를 돌보면서도 새벽부터 일어나 출근하는 남편과 시어른을 위해 한상차림까지 해야 했던 늙은 엄마들의 사연엔 당해낼 수가 없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지.



자꾸 되뇌었다. 나는 아기가 많이 웃고, 잠깐 울길 기대했다. 왕왕대며 몇 시간이고 우는 건 비정상이며, 내가 뭔가를 단단히 잘못하고 있는 줄만 알았다.

다행히도, 젊은 엄마들과 늙은 엄마들의 증언에 따르면 아기들은 원래 시도 때도 없이 우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그것부터 받아들여야 했다. 아침저녁으로 다르게 자라나는 아기의 수유량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고, 잠 좀 덜 잤다고, 어제보다 더 많이 운다고 일일이 예민해져선 안 됐다. 잘 먹고, 잘 자며 야무지게 울어대는 평범한 아기를 통계 수치대로 -사실은 나 편한 대로- 조절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를 버리고, 때 이른 조바심과, 틈만 나면 비집고 들어오는 자책감을 내려놓아야 했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으리.


시어머니 말씀처럼 엄마가 된다는 건 마침표가 아닌, 길고 긴 여정인 것 같다. 아기를 낳으면 엄마 모드로 자동 전환되어 척척 잘 해내는 건 줄 알았는데 큰 오산이었다. 아직은 엄마가 아니고, 엄마가 되어 가는 중인 것 같다.

그래, ‘꽃보다 누나’의 희애 언니도 말했지.


우는 날이 더 많아.
아홉 번 울고, 한 번 웃어주면 좋다가,
또 우는 거야.


*


며칠 새 극도로 날카로워진 성질 머리가 남편을 사납게 공격했다. 퇴근 후 속수무책으로 총알받이가 되던 남편에게서 평일 낮에 전화가 왔다.


“이따가 누가 전화 할 거야. 네 번호 알려줬어.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까… 일단 이야기 들어봐.”


남편 지인의 아내였다. 아이가 모두 초등학생으로, 딸 둘, 아들 하나 무려 셋을 키우는 엄마다.


많이 힘들어요? 나도 그랬어요.

친정엄마도 한국에 안 계시고, 무엇보다 제가 아기일 때 부모님께서 이혼하신 후 그때부터 쭉 엄마와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엄마란 어떤 존재인지,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건지 전혀 감도 안 오더라고요.
한 번은 한밤 중에 애기 업고 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 씩 돌면서 엉엉 운 적도 있어요.

아기가 웃어줄 때 가끔 좋았고, 나머진 다 지옥 같았어요.
주변에서 힘내라고 하면 화가 났어요. 힘이 안 나는데 어떻게 힘을 내. 죽을 것 같은데…….

주변이나 인터넷에서 이러쿵저러쿵하는 정보에 휩쓸리지 말아요. 내 아이는 내가 가장 잘 아니까. 승미씨 아이는 승미씨가 가장 잘 알아요.

아, 기억난다. 이런 적이 있어요. 유성이가 막 걷기 시작한 장마철에 집에만 있으니까 애는 계속 보채고, 나도 미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우산도 안 쓰고 같이 빗속을 뛰어다녔어요. 그걸 보고 다들 미쳤다고, 감기 걸린다고 난리였는데, 신경 쓰지 않았어요. 감기 좀 걸리면 어때? 그날 우리가 얼마나 즐거웠는데…….

아기만을 위한 방법 말고, 나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육아를 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무엇보다, 엄마의 심지가 강해야 해요.


포켓몬이 진화하듯 한 단계 진화한 느낌이었다. 어지럽게 뱅글거리던 정보들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이 세상 수많은 인간의 사연이 같을 수 없으리라. '줏대'와 '주관'이라는 낫을 들고, 취할 건 취하되, 버릴 정보는 과감히 버리기로 작정했다. 나를 믿고, 아기를 믿고.

정보가 넘치는 사회에서는 많은 정보를 습득하는 기술보다, 불필요한 정보를 쳐낼 줄 아는 기술이 필요하다.

(몇 단계까지 진화할까?)


뒤집기 하다 지쳤음. 너도 녹록지 않지? 20151110



https://brunch.co.kr/@aamuroo/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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