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어 주는 동동이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 새가
좋기도 하였다
- 박준 -
오늘 아침,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다가 눈이 동그래졌다. "잠깐, 이게 진짜야?" 화면을 몇 번이나 다시 봤다. 종합 베스트셀러 1위가 시집이라니.
커피숍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사람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집이 1위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마치 빽빽한 아파트 숲 사이에서 민들레 한 송이를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달까.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 제목부터 마음을 툭 건드린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어릴 적 교실 창밖에서 보던 철봉이 떠올랐다. 쉬는 시간만 되면 누가 더 오래 매달려 있나 시합하던 그때. 이제는 그 자리에 스마트폰을 든 아이들이 서 있겠지. 우리의 자랑거리는 이제 토익 점수, 자격증 개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로 바뀌었다.
하지만 시인은 말한다.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고.
처음엔 이상했다. 슬픔이 무슨 자랑이야? 우리는 슬픔을 숨기려 하고, SNS에는 행복한 순간들만 골라 올리는데.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가 진짜 자랑해야 할 건 어쩌면 그 슬픔일지도 모른다.
"땅이 집을 잃어가고 /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요즘 뉴스 헤드라인 같기도 하다. 치솟는 전세가에 한숨 쉬는 친구들, 월세방을 전전하는 동생... 집은 많은데 사람이 살 집은 없는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그래서일까? 작은 눈에서 흘러내린 많은 눈물이. 청약 탈락 문자를 받고 흘린 눈물이, 면접에서 떨어지고 흘린 눈물이, 퇴사하던 날 밤 흘린 눈물이... 이 모든 눈물이 어쩌면 우리의 자랑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이렇게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 남의 아픔에 마음이 시릴 줄 아는 사람이니까.
요즘 같은 세상에서 슬픔을 느낄 줄 아는 것,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좋아요' 숫자로 가치가 매겨지는 시대에 슬픔을 자랑하자는 시인의 말이 왜 이리 위로가 되는지.
다음 주엔 서점에 가서 시집 한 권 사야겠다. 폰 케이스 살 돈으로 시집 한 권. 요즘 같은 시대에 이것도 작은 반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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