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끝나기를 바랐던 내가 할 수 있던 일
3월의 첫 금요일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3월의 하루.
회사는 코로나 이슈로 일주일 넘게 재택근무 중이지만, 업무를 위해서 나는 계속 출근을 한다.
남들은 자다가 눈 비비고 로그인해서 업무 체크인을 하지만, 여전히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한다.
최근에 주말에 할 일이 없다 보니, 자연스레 인터넷 쇼핑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장만하게 된, 민트색 맨투맨 티셔츠. 개인적으로는 블랙을 너무나도 좋아해서, 거의 모노톤의 흑백인간처럼 하고 다녔으나, 이날은 웬일인지 민트색이 끌려 나도 모르게 결제를 하였다.
마침 어제저녁 배송이 완료돼서, 손에 받아 든 티셔츠를 보고, '와 이런 걸 내가 샀다고?' 라고 탄식을 했다. 고기도 먹어본 자가 먹는다고, 민트는 베스킨라벤스에서밖에 선택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날 아침 나는 자연스럽게 민트색 맨투맨을 집어 들었다. 바지는 뭐 입지? 베이지 슬랙스. 신발은 뭘 신어야 해? 화이트 스니커즈. 왠지 나도 모르게 고민 없이 옷이 술술 골라졌다.
출근을 하고, 나와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이 출근한 동료들과 인사를 했다. "오늘 어디 가세요?", "오늘 봄이네요?". 어? 다들 왜들 그러지? 아~ 옷!
평상시에 블랙만 입고 다니던 흑백인간이, 갑자기 파스텔 옷을 입고 왔으니, 의아한 그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아 그냥, 봄이잖아 ㅎㅎ"
올 겨울은, 개인적으로, 매우 긴 겨울이었다. 일, 사람, 관계 등등 힘든 일들이 계속되어 빨리 지나가길 바랬다. 걷잡을 수 없이 소모되는 나를 느끼면서, 계속 '아, 이번 겨울 되게 길다'를 되뇌었다. 아마도 지난겨울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긴 겨울 중에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사실, 나는 원래 계절 중, 겨울을 제일 좋아한다. 겨울의 따뜻한 느낌을 좋아한다. 코끝까지 시린 저녁, 따뜻한 카페로 들어와 마시는 아메리카노 같은 그 따뜻한 느낌을 좋아한다. 그와 함께 긴 코트. 세상 모든 고뇌는 다 가진 것 같은, 롱코트를 입은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는 나. 그리고, 크리스마스와 연말의 설레이는 기분들. 송년회 그리고 귤.
오히려 나에게 봄은 그다지 와 닿지 않는 계절이었다. 많은 이들이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라고 하지만, 나는 더워지기 시작하는 징조의 계절 정도로 느껴졌었다. (나는 엄청나게 더위를 탄다.)
하지만, 나는 올 봄을 누구보다도 기다렸다. 새 봄, 지난겨울의 힘들었던 시간은 다 잊혀지고, 그로 인한 피로감, 상처들은 다 치유가 될 것이라 믿는다. 이것은 내 바람이지만, 내 다짐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를 위해서, 빨리 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무의식적으로 봄 옷을 입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점심을 먹으러 나갔지만, 아직은 공기가 차갑다. 코로나 덕분에 사람도 많지 않아, 생동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이렇게 되뇌었다.
"아, 이번 겨울 되게 길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