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또 제주? 이제 지겹지 않아?

매일이 지겨운 일상이라

요즘은 어디 가? 너는 국내선 팀이야? 지겹지 않아?

오랜 만에 만난 친구들의 질문이다. 코로나가 한참 끼부리던 시절 내 스케줄은 온통 국내선이었다. 어쩌다 국제선이 나오면 어색한 마음으로 인천국제공항으로 출근했다. 지금 어디냐는 물음에 늘 '제주도' 라고 대답하던 나 였기에 친구들이 나를 국내선 전담팀 혹은 제주도 전담팀으로 오해할 만 했다. 


자주 가서 

지겨울 것 같지만

지겹지 않은 이유가 있다.


Wind Calm, Clear to Land

착륙이 가까운 시점, 관제사들은 조종사들에게 착륙 허가를 준다. 단순하게 착륙을 허가한다는 말로 보이지만, 이때 바람 정보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십 수백번을 간 공항이라도 바람은 매일 다르다. 대자연이 만든 바람이라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이 바람이지만, 방향과 세기로 표현되는 바람이 매 비행을 새롭게 만든다.


같은 공항 같은 활주로 같지만 매일 조금씩 다르다. 가끔은 아주 많이 | 출처: Boldmethod.com


Wind Calm? 봐~ 그럴 일이 없어

관제사에게 바람 정보를 받는 시점은 약 1,000 FT(피트). 어림 잡아 지상으로부터 30m, 더 쉽게 말해 아파트 9~10층 높이다. 이 때 부터 항공기 바퀴가 활수로에 꿍 하고 닿는 순간 까지는 약 1분 30초 남짓이다.


관제기관에서 알려주는 바람 정보는 공항의 지상에서 관측한 것이기에 공중과 사뭇 다르다. 지상에서는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 잔잔한 기류라고 알려줘도 틀릴 수도 있다. 바닷가 근처라서, 높은 산을 돌아오는 바람이라서, 아파트가 많아서, 뜨거운 사막 위를 날아가고 있어서, 착륙할 때 까지 바람은 계속 변하고 지상에서 사뭇 다른 바람이 불 수도 있다. 운이 나빠서 전문 용어로 재수 없게 항공기의 제한치를 넘어가는 안 좋은 바람을 맞아버리면 착륙에 실패할 수도 있다. 모두가 아쉬운 순간일 수 있다. 손님들은 도착이 늦어지지만, 승무원과 조종사들에게는 퇴근이 늦어지니까.


1,000 FT 에서는 조금 뒤에서 부는 바람이었는데

700 FT 즈음 부터는 바람이 없어졌다가

400 FT 즈음 부터 갑자기 왼쪽 맞바람이었다가

200 FT 즈음 바람이 오른쪽에서 불다가

100 FT 즈음 잠잠해지고 

비행기가 훅 가라 앉으며 바퀴들이 꿍 하고 닿는다. 


똑같이 매일 연기를 내며 꿍 찍는 비행기 같지만, 매일 조금씩 다르다 | 출처: 1000 Awesome Things


관제기관에서 분명 바람이 불지 않는 다고 했는데 겪어보면 다르다. 착륙하는 90초 동안 바람은 계속 변한다. 방향도 세기도. 


그래서 매번 비행이 다르다. 

같을 수 없다.



요가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조금 있어 보이게 나열하면 하타요가, 인요가, 아쉬탕가요가, 리스토러티브 요가, 포레스트 요가, 빈야사 요가 등. 이 중에서 아쉬탕가요가는 다른 요가와 다른 특징이 있다. 바로 매번 같은 동작을 한다는 것.


아쉬탕가(Ashitanga Yoga)의 프라이머리 시리즈. | 출처: 요가로그님의 티스토리


아쉬탕가 요가는 정해진 동작의 순서가 있다. 마치 국민체조 처럼 매일 같은 동작을 꾸준하게 수행한다. Surya Namaskara(수리야 나마스카라) 라고 부르는 태양 경배 자세를 진행한 뒤 서서 하는 동작, 앉아서 하는 동작, 그리고 마무리 동작으로 이어진다. 선생님이 이끌어주는 Lead Class도 있지만 수강생들이 각자의 호흡으로 동작을 이어나가는 My Sore Class (마이솔 클래스)도 있다. 


같은 요가원 같은 매트 위에서 같은 동작을 매일 하는 것이 지겨울 수 있지만 매일 조금씩 다르게 느껴진다. 아쉬탕가 요가의 매력은 여기서 온다. 단순하게 어제 보다 동작이 잘 되고, 잘 안 되는 날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컨디션에 따라 기분에 따라 호흡의 길이에 따라, 함께 수련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분위기에 따라 같은 동작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아쉬탕가 요가의 매력이다.



10분을 해도 힘들지 않은 머리서기가 

1분도 못 버틸 만큼 유난히 힘든 날이 있고


잘 접히지 않던 골반이 갑자기 스르륵 굴러가면서

잡히지 않던 손목이 잡힐 때도 있다.


처음 손이 발끝에 닿고, 깍지를 끼고, 마침내 손목을 잡는 순간이 온다. | 출처: 아난다 요가명상 다음 카페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매일 요가는 다르다.


이런 다름을 의도한 건 아닌데, 요가 매트랑 잔디도 다르다.


같은 직장

같은 사람들

비슷한 옷

비슷한 음식

비슷한 업무


챗바퀴 처럼 굴러가는 일상이지만 변하는 것은 날짜만이 아니다. 

공 들여 변화시키지 않더라도 매일은 조금씩 다르다. 


기분에 따라

먹고 마시는 음식에 따라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약간의 힘을 들여 

평소와 다른 길로 출퇴근 할 수도 있고

카페에서 평소에 잘 먹지 않는 메뉴를 주문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소소한 변화가 치매 예방에 좋다고 하는 효과도 있다


꼭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매일은 다르다.

스스로 약간의 변화를 줄 수도 있다.

 

조금 공 들인다면

여행하듯 매일 다른 하루를 보낼 수 있다. 


결론: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제 시간에 연재에 성공했다.



이전 02화 아니 이게 왜 안 되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