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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함, 착륙하는 학생 조종사의 마음

입랜딩 후기

오늘의 이야기는 N년 전,

미국에서 비행을 배울 때의 일이다.


교관: 요파 학생~ 왔어요? 갑시다.


한결 같은 패션...

아니 오프닝...

아니 반가움을 보여주시는 교관님은 새벽 공기 마냥 차분하게 나를 맞이했다.


교관: 오늘은 Short Field Landing을 연습 할 거에요. 준비 해 왔죠?  

나: (아직은 어려운.. 아니 어색한 사이라 멋쩍게) 네에..

교관: 오케이~ 갑시다~


잠깐, Short Field Landing 을 설명하면, 항공기가 평소 보다 짧은 활주로에 착륙할 때를 대비한 기술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부드러운 접지 보다는 빠른 착륙이다. 활주로 위에 얼른 내려서 착륙 거리를 조금만 사용하기 위함이다. 한 마리 큰 새가 멋있게 푸우우우욱 가라 앉는 부드러운 착륙이 아니라, 꿍 하고 찍더라도 활주로 끝 부분에 얼른 착륙하는 기술을 말한다.
활주로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항공기의 무게나, 접근 속도, 공항의 기상과 바람 상황 등에 따라 부득이하게 착륙 거리가 길게 예상될 때 사용하는 테크닉이기도 하다.


흔한 학생조종사 교육 현장 | 출처: Thrust Flight.com


교관: 보여드릴게요. 이렇게 이렇게 가다가, 여기서 조금 당겨서 마지막에, 꾸웅! 보셨죠? 자 해보세요.

(이때 나는 '참 쉽죠?' 라고 이야기하는 밥 아저씨가 생각났다.)


내 차례가 왔다.

내가 탄 경비행기는 착륙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췄다.


활주로와 일렬로 정렬되어 있고,

바퀴는 원래 내려가 있고,

착륙 플랩은 내려가 있고,

Short Field Landing 속도도 55kt (약 85km/h) 잘 유지되고 있다.


활주로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이제 꿍 하고 찍으면.. 아니 꿍 하고 바퀴가 닿으면 된다.


교관: 자 좋아요. 속도 좋고, 항공기 Pitch 좋고, 파워 조금만 더 넣으세요. 그렇죠! 이대로 쭉 가다가...

(사실 교관님의 이 말이 잘 안들린다. 파워 넣으라고 하는 이야기는 오른손이 듣고, Pitch와 Bank 조절하라는 말은 왼손이 듣는다.)


나: 꿍... 꿍... 꿍...?

교관: 입이 아니라 바퀴가...


항공기가 아직 가라앉고 있었다.






항공기가 지면에 박혔다.


교관: 누가 입으로 꾸웅꾸웅 하라 그랬어요. 바퀴를 꾸웅 해야죠. 누가 입랜딩하라 그랬습니까. 다시 해보세요.


창피한 마음에 웃었다. 그날 그 뒤로도 여러 번 Short Field Landing을 연습했다. 교관님이 보여준 대로 알맞은 항공기 Pitch와 속도를 유지한 채 활주로 에 꾸웅 닿기 연습을 했다. 그 때 마다 내 입에서는 주문이 나왔다.


꾸-웅

꾸우우우우우웅


이쯤 되니 학생인 나도 교관님도 웃는다.

민망해서? 웃겨서? 어이가 없어서?

음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에서 였다.


이렇게 보이다가
이제 곧 닿아야 하는데
아직 안 닿았더라고요... 꿍...


원래 학생의 마음이란, 잘 하고 싶기 마련이다. 비행기를 타본 적도 몇 번 없고, 지금 비행기도 30시간 남짓 타본 내가 활주로 위 원하는 지점에 원하는 강도로 항공기를 착륙시킨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안 해봤으니까. 그런데 학생 마음은 다르다. 잘 하는 것 보다 못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상태인데 어딘가에서 해본 것처럼 하고 싶기 마련이다.


평소 보다 항공기가 일찍 접지해야 하고, 낮은 속도와 높은 자세로 착륙하는 Short Field Landing을 잘 하고 싶었다. 보통 착륙하는 비행기가 접지하고 나면 교관님의 코멘트가 이어졌는데 '나쁘지 않았어요' 보다는 '좋았어요' 라는 말 한 마디를 듣고 싶었다.


어제 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누가 소리를 바퀴에 맞춰 내라 그랬어요?"


라는 교관님의 말에 그 때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너무 창피해서 "교관님이 꿍- 하길래 저도 그래야 하는 줄 알고" 라고 얼버무렸지만, 그날의 진실을 이야기 하자면, 잘 하고 싶었던 마음과 혼잣말도 옆사람 귀에 깨끗하게 전달해주는 비싼 헤드셋 덕분이었다.


당시 상황 속 나는,


꿍 (이쯤 바퀴가 닿아야 겠지?)

꾸-웅 (어라? 아직인가?)

꾸우우우우웅 (아이참. 아직이야? 비행기야 이제 좀 내려가자. 응?)


그랬다.


중얼거린다고 하기엔 너무 큰 혼잣말이 헤드셋의 마이크로 흘러 들어갔고, 옆에 있는 교관님의 귀 까지 안전하게 SSG 배송 되었던 것이다.


프로펠러 엔진 소리가 아무리 커도 헤드셋 마이크가 있어서 혼잣말도 옆사람에게 아주 잘 들린다. | 출처:




"오늘 내 몸이 허락하는 만큼 동작을 따라하세요."


요가를 처음 배우면 선생님에게 꼭 듣는 말이다. 그리고 99.99999%의 확률로 학생들은 이 말을 듣지 않는다. 삐질삐질 흘러 내리는 땀과 넘어질까봐 온 신경이 곤두 서 있고, 근육과 인대가 늘어나는 고통을 애써 호흡으로 내려보려는 마음에 선생님의 말은 잘 들리지 않는다.


스-윽


근육이 늘어나는 느낌과는 다른 서늘한 감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파도 조금 더 늘려보고, 버텨 보려고 했던 내가 동작을 그만 뒀다. 이건 동작을 열심히 할 때 느껴지는 감각과 사뭇 달랐다. 잘못하면 다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였다. 요가를 조금 살살하기 시작했다.

신기한 것은 그래도 요가를 더 빨리 잘하게 되었다.




"우리는 누가누가 빨리 다리를 찢나 경쟁하는 거 아니에요"

"다 할 수 있어요. 단지 시간이 필요한 거에요. 기다려주면 돼요."


다리찢기를 배우는 모빌리티수업 선생님께서 자주 해주시는 말이다. 몸에 열을 내고 천천히 기다리면 늘어난다고. 신기한건 애쓰지 않아도 기다리면 몸이 늘어난다. 60도 가량 벌어지던 다리가 90도, 120도, 그리고 150도 까지 벌어지고, 가끔은 앞으로 몸을 숙였을 때 가슴이 땅에 닿는다.


뻣뻣 그 자체인 내 몸이 다리찢기를 하고 있다.

계속 기다리면


"오~ 요파님. 바로 그거에요.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한 거에요."




착륙이 멋지게 되면 좋겠다 싶은 학생 조종사의 마음과

요가 동작이 멋지게 되면 좋겠다 싶은 수련생의 마음과

다리가 쭉쭉 찢어지고 강한 코어를 갖고 싶은 학생의 마음이

다 비슷했다.


조급함이다.

바꿔 말하면 잘 하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할 일은

기다리는 일이다.

꾸준히 하면서.




에필로그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 요파야. 형 요즘 글 써. 거기 "네 이야기"도 있어.

나: 네?

망고파일럿: 보여줄까? "입랜딩"이라고. 있어. 그거 네 이야기야.


시간이 지나 교관님도 나도 항공사에서 손님들을 모시는 부기장이 되었다. 나를 막내 동생 같다고 이야기하던 교관님을 이제는 형이라고 부른다. 나 보다 먼저 브런치 작가가 된 형이 이 이야기를 알려주기 전 까지 이 일을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 


(워낙 어리버리 했던 학생이었으니 에피소드가 엄청 많아서 그럴 것이다.)


.

.

.


사실 지금도 랜딩하면서 마음속으로 종종 주문을 외운다.


Fifty

Fourty

Thirty

Twenty

Ten

...

Five

...

...

(꾸웅)

...

(꾸웅)

...

털썩.



오늘 이야기는

친애하는 망고파일럿 작가님의 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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