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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아 May 16. 2023

어느 고요한 밤의 기록

수면제를 먹고 이 들었는데 3시간 만에 이 떠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35분. 망했다. 이젠 수면제에 내성이 생기는지 최근에는 약을 먹어도 도통 잠에 들기가 어다. 이렇게 한 번 깨고 나면 다시 잠들지 못한. 해가 뜨기까지 기다리는 밖에는.


면증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이 긴긴 밤에 잠들지 않는다면 차라리 즐겨버리는 건 어떨까 해서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글도 써보는 중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잠들어 있는 고요 이 밤에 홀로 깨어있는 건 조금 외다. 오늘은 글을 적다가 창문 블라인드에 드리운 나뭇가지 그림자가 새벽 공기에 흔들거리는 걸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렇게 거실에 오도카니 앉아있는 아버지가 물을 마시러 나오셨다가 나를 발견하고 다가오셨다.


"왜 이러고 있어?"

"달빛이 예뻐서."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고 있다는 걸 내가 부모님에게 직접 말한 적은 없다.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하얀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꾸며낼 기력도 없었거니와 워낙 거짓말에 재주가 없는지라 관두었다. 나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길을 택했다.


부모님에게는 지은 죄도 없이 죄인이 된 기분이다. 나도 구김 없이 밝고 명랑한 딸이고 싶었는데, 그게 뜻대로 잘 안 됐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이 목구멍에서 한참 맴돈다. 아버지는 말없이 내 손을 꼬옥 잡으셨다.


"그런 날도 있는 거고 이런 날도 있는 거지."


그렇게 아버지는 달빛인지 가로등 불빛인지 모를 빛을 맞으며 한 동안 내 옆에 앉아계셨다. 조용히 손등을 덮는 손이 따듯했다. 상냥한 침묵이 가만가만 가라앉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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