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혼 후에 내 마음은 텅 비어버렸다. 사랑이라고 확신했던 관계는 너무나 부질없이 사그라지고, 기대와 행복으로 충만했던 미래는 신기루처럼 없어졌다. 내 것이라 믿던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증발되어 버린 후, 나는 껍데기만 남아버린 기분이었다. 무언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기준, 그래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가치관, 그리고 택한 것에 대한 자기 확신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쓸려나간 듯했다.
아마 매일 아침 출근해야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정말 빈껍데기 같아 보였을 것이다. 그나마 평일엔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에 기대어 억지로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주어진 일에 대한 성실함으로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방법은 당장 무너지지 않게 하는 데에는 꽤나 가시적인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줄 알면서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퇴근 후에도 운동이나 취미를 몇 개씩 일정을 잡아서 소화하고 밤이 늦어서야 집에 도착하면 생각할 기력도 없이 쓰러지도록 몰아세웠고, 주말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약속을 만들었다. 더 이상 친구들을 불러내기 미안해질 즈음에는 일회성 소셜 모임에 나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혼자라는 감각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혼자 있으면 밑도 끝도 없이 가라앉을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누가 봐도 무진장 애쓰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 깊은 우울의 바닥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알기 때문에, 더욱더 가라앉을까 봐 무서워서 발버둥 쳤다. 허우적 대는 것 말고는 부정적인 생각을 떨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없었다. 그에 대한 상실감은 나를 슬프게 했지만, 정말 나를 불안하게 했던 건 가냘프고 무력한 자기 확신이었다. 내가 다시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누군가에 세 진정 사랑받을 수 있을까? 나는 이제 사랑을 믿을 수는 있는 걸까? 그런 질문들이 연달아 떠오를 때마다 나는 조금 더 불안해지고 조금 더 조급해졌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거라며 주변에서는 소개팅을 권해왔다. 좋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그 말들이 위로가 되기도 했다. 파혼은 내 인생에 없었던 것처럼, 하루라도 빨리 정상 궤도에 오르고 싶었다. 안정적인 상태를 원한다는 건 그만큼이나 불안정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리기엔, 더 늦기 전에 새 출발해야 한다는 강박이 너무 컸다. 그 강박은, 내가 이미 파혼의 상처를 웬만큼 극복했다고 착각하도록 나를 조종했고, 강박에 완전히 지배되었을 무렵, Y를 알게 되었다.
Y는 지인 H님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주선자 H님과 긴 시간을 알았던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느꼈던 H님의 인상은 신중하고, 조심스럽고, 온화한 사람라고 생각했었다. H님은 10년 넘게 알고 지낸 후배라며 Y를 나에게 소개할 때에도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마 H님이 헤퍼 보이는 사람이었다면 거절했을 소개팅이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Y는 좀 당황스러운 사람이었다. 첫 연락, 첫 만남부터 너무 지나치게 나를 배려하고 과하게 공감하려고 하는 인상이었다. 두 번째 만남부터 숨김없이 호감을 표현하는 Y가 이상하기도 했지만, 선명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보통은 재고 따지고 체면 차리느라 바쁜 30대 후반의 남성이 이토록 거침없이 감정을 표현하는 건 드문 일이기 때문에, 고맙기도 하고 또 귀하다고 생각했다. 까불대는 편이긴 했지만 유쾌한 사람이었고, 진지한 대화도 잘 통해서 가벼운 사람은 아니라고 느꼈다. 무엇보다 파혼 이후에 사회적인 미소 외에는 좀처럼 웃어본 적이 없던 내가, Y를 만나는 동안에는 밝고 즐겁게 웃었다.
"너 웃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지?"
Y는 줄곧 내게 반한 것 같은 눈빛으로 말했다. 나를 토끼 같다며 귀여워했고, 지나칠 정도로 보호했다. 손 다친다며 문도 열지 못하게 하고, 물이라도 따르려 하면 너는 이런 거 하지 말라며 물통을 뺏어가서 직접 따라주었다. 뭘 이렇게까지, 싶었지만 '나를 위한' 매너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심 좋기도 했다. 우선순위에서 쉽게 내려버렸던 이전 연애에 다쳤던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그래, 나도 이렇게 사랑받고 소중한 존재로 위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어. 누군가에게는 최고로 대접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어.
하지만 한편으로는 Y와 데이트를 할 때마다 내 안의 불안정함을 더욱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소개팅 제안을 수락했을 때는 미처 몰랐던 혼란에 스스로도 당혹스러웠다. 몇 차례의 데이트를 하면서 Y의 노골적인 구애를 더 이상 모른 척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데, 막상 나는 어떠한 마음의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나에게 딱 맞는다 여겼던 사랑에도 버림받았는데, 단지 나를 좋아하고 다 맞춰준다는 이유로 사랑을 시작해도 되는 걸까? 지금은 저렇게 온갖 정성을 다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이 변한다면, 내가 그 상처를 다시 극복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해도 내가 또 언제 어디서 이토록 나에게 선명한 호감을 보여주는 사람을 만나 귀히 여겨지며 살 수 있을까? 불안한 질문들이 나를 채울수록, 고맙게 여길 만한 친절도 부담으로 느껴졌고 나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Y에게 솔직한 내 심정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헤어진 지 몇 달 밖에 되지 않았고,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이 착각이었다는 걸 알고 나니 자기 확신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예요. 소개팅을 할 때는 미처 몰랐었는데, 누굴 만나기로 결정하기가 주저되는 걸 보니 제게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아요. Y는 자기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 후에도 정말로 Y는 잠깐이라도 보고 가겠다며 회사 앞에 찾아오고,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한결같이 나를 위해서는 뭐든 해줄 것 같은 태도가 갸륵할 정도였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내게, 나는 원래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 뭐든 다하는 편이야, 라던 Y의 정성에꽁꽁 싸놓았던 마음이 풀어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몇 번의 만남 후, Y와 정식으로 교제하기로 했다. 첫 휴일에 Y는 근교에 드라이브를 가자고 했다. 너랑 최대한 멀리 가고 싶다고.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을 수 있잖아. 사실 더 멀리 가고 싶은데 네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근교로 가는 거야. 나도 Y의 제안에 흔쾌히 동의했다. 기분전환도 할 겸, 한두 시간 정도 걸리는 근교에서 데이트하는 것도 좋지. 그러나 나는 두고두고 이 결정을 후회하게 되었다.
드라이브를 가면서 Y는 돌아오는 주말에 함께 갈 곳이 있다고 했다.
-어디를?
-으응, 자고 와야 해.
-무슨 말이야 그게?
-예약 다 해놨어.
-나한테 물어본 적도 없잖아. 난 그럴 생각 없어.
-뭐? 그럼 취소해?
-취소해야지 그럼.
-진짜?... 알았어...
당황스럽긴 했지만 Y가 마음이 성급히 앞서 나가서 그랬겠거니 하고 넘겼다. 그 후에는 맛있는 식사를 하고 경치 좋은 카페를 가고 그런 평범한 데이트였다.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해가 뉘엿뉘엿 질 때가 되어 저녁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Y가 찾아놓은 곳이 있다며 데려간 식당은 '이런 곳에 식당이 있다고?'라고 생각될 만큼 외진 곳이었다. 마감시간에 가까워 도착한 탓에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치고 보니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었다.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공터에는 가로등도 없어 주변은 깜깜했고 비도 오고 있었다. Y는 차에 타자 마자 내게 키스를 퍼부었다. 그만해, 그만하고 집에 가자,라고 재차 말했지만 흥분한 남자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Y는 '멈출 수 없다'라고 했다. 무서웠다. 나를 누르는 남성을 밀쳐낼 완력도 없고,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차가 없으면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최대한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남의 영업장 앞에서 이러지 말자, 그만해, 여기서 이러고 싶지 않아, 라며 설득했지만 Y는 오히려 자기는 확신이 있는데 너는 뭐가 그렇게 조심스럽냐고 했다. 절망적이었다. 또다시 내 몸을 파헤치며 추행을 계속하는 그를 막아내며필사적으로 설득했다.
어떤 말이 통했는지 알 수 없지만 Y는별안간정신을 차린 듯, 미안하다며 자리로 돌아갔다. 차에 시동을 걸고 집으로 향하는 동안 Y는 자기가 실수했다며 변명 같은 소리를 뱉어냈다. 말 같지도 않았지만,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그저 입을 꾹 다물고 버텼다. 영겁과 같은 시간이었다.
나는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믿기지 않았다. 명백한 강제추행이었고,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충격적이었던 것은 내가 이 상황에 대해 화를 낼 기력마저 없다는 것이었다. 분명 화가 나야 할 상황인데 나는 그저 멍했다. 이미 파혼 후에 너무 많이 힘들었는데. 겨우 버텨내고 있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또 반복되는 거지? 사랑을, 사람을, 내가 또 믿었구나. 희망과 믿음의 대가가 이렇게 돌아오는구나. 사람을 사람으로 잊으려는 욕심이, 서둘러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내 가치를 찾으려던 잘못된 강박이 나를 이렇게 추락시키고 망가트리는구나. 내가 나를 이토록 처참하게 만들었구나. 이제는 나를 존중해주는 사람을 만날 거라고 다짐해놓고, 상실감을 견디지 못하고 뭐라도 채워 넣어서 메우려다가 이 꼴이 났구나. 나는, 또, 행복을 꿈꾸다 불행에 더욱 가까워지는 걸 반복하고 있구나.
결과적으로는, 그 날 집까지 별일 없이 도착했고 Y가 몇 차례 실수였으니 기회를 달라며 연락을 해왔지만 그 후로 만나지 않았다. 머리로는 나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내가 당한 것은 범죄이고, 나는 피해자이고, 이 사건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파혼 후에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처에 뿌려진 잿가루는 제정신으로 견디기가 버거웠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으라는 말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자신의 회복을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은 불확실한 확률일 뿐이다.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서 치유되는 기적도 분명 있겠지만, 오히려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사람을 믿는다는 건 그런 것이다.
데이트 폭력 가해자를 용서하고 만남을 반복하는 피해자들의 사례를 기사를 통해 접하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답답해했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고 나니, 너무나 충격적 이게도, Y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 사건'만 아니면 나에게 그렇게 잘했었는데. 자기는 원래 신중한 사람이라서 이렇게 금방 사랑에 빠진 것이 처음이라고 했었는데. 정말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이성을 놓고 잠깐 실수한 건 아닐까? 미안하다고 하니까 앞으로 절대 그러지 않겠다 하는 말을 믿어줘야 하지 않을까? Y가 아니라면 나에게 그토록 선명한 사랑을 줄 사람이 또 있을까?라는 정신 나간 생각이 들어서 너무 괴로웠다. 머리로는 절대 용서하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 흔들리는 자신에게 자괴감이 들었다.모멸감과 동시에, 나는 내가 너무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나, 진짜 많이 힘들었구나.믿었던 것들은 다 사라지고, 마지막 남은 실낱같은 자존감 하나 붙잡으며 버텼는데. 이제 그 마저 지킬 힘도 없어졌구나.
사랑과 사람을 다시 믿어도 되는 것인지 고민하기 전에, 진짜와 가짜를 판별할 수 있는 감각을 키웠어야 했다. 조급하지 않게 찬찬히 사람의 본성을 살필 수 있는 통찰이 필요했다. 이 재난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 내 잘못은 아니지만, 소위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들의 특성을 간파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Y는 유독 나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했었다. 내가 혼자서 무언갈 하려 하면, 그러면 내 역할이 없잖아, 라며 하지 못하게 했다. 중성적인 스타일보다 여성스러운 걸 좋아한다고도 했었다. Y는나를 보호하고 챙기면서 자신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고 싶은 사람이던 것 같다. 그래서 자신에게 더욱 의지하고 기대도록 나는 과잉보호했던 게 아닐까. 매너, 보호, 배려 같은 예쁜 포장으로 가렸으나, 나는 Y의 남성성을 입증시킬 수단에 불과했다.
이성적으로 '당장에 신고해야 할 범죄'라고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감정적으로는 그냥 용서해버리고 인형처럼 아껴지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누일 곳 없던 내 마음이 그렇게라도 발 붙일 수 있다면, 금방이라도 가라앉을까 봐 두려운 지금보다는 평온하지 않을까. 아냐, 미친 생각이야. 욕망이 앞서면 절제도 모르고 나에 대한 존중도 하지 않는 쓰레기일 뿐이야.대체 어디까지 형편없어질 거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신고하는 방법부터 알아봐야 해. 혹시라도 증거가 없어지기 전에.
혼자서는 이 상황을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상담소 문을 두드려보기도 했다. 첫 번째 상담소에서는 이미 교제 관계였기 때문에 신고가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여기서는 심리 상담이나, 법률적 자문을 제공하지 않으니 다른 곳을 가보라고 했다. 두 번째로 찾은 상담소에서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중적인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신고할 수 있지만,신고하지 않는 선택을 하더라도 내 선택이 그러하다면 그 또한 옳다고 했다. 가해자가 진심으로 뉘우치는 중인지 아닌지, 과연 실수였는지 아닌지보다, 우선 나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것이 먼저라는 말에, 정신 차리라며 또다시 자신을 향해 휘두르고 있던 채찍질을 멈출 수 있었다.
괜찮아요. 당장은 마음에 힘이 없어서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마음이 어느 정도 회복된 후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결정하면 돼요.
사람을 사람으로 잊어 보려고 했었는데, 그냥 상처가 더 큰 상처로 덮어진 것이 아이러니하다. 친구들에게도 자세한 얘기를 다 꺼내놓을 수 없어서 말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꽁꽁 싸매고 있자니 내 속에서 응어리가 되어 내 숨통을 조여올 것만 같아서, 오히려 가까운 듯 멀고 먼 듯 가까운 몇몇 지인들에게 가벼운 해프닝 정도로 꾸며서 풀어놓아 보기도 했다. 누군가는 '그러게 거길 왜 따라갔냐', '왜 그렇게 밖에 대처를 못했냐'며 나를 탓했고, 심지어는 '그냥 너무 좋아해서 그런 거 같은데?', '그럴 수도 있지, 뭐'라며 Y를 두둔하기도 했다. 한편 누군가는 '어떻게 그런 놈이 있냐', '욕 나온다'며 나 대신 화를 내주기도 했다. 자기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며, 가까운 사람에게도 말하기 힘든 얘기였을 텐데 말해줘서 고맙다는 사람도 있었다.
"힘든 얘기일수록 계속 입 밖으로 꺼내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만드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잘했어요."
줄곧 내 얘기를 들어주며, 때로는 미친년아 정신 차려라 하다가도, 그래도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후회 남지 않게- 라며 나를 지켜봐 주었던 17년 지기 친구 C는, 내가 또 감정적으로 휘청이고 있던 어느 날에 나에게 말했다.
내가 아는 너는 토끼 같은 사람이 아니야. 너는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야. 너를 보살피고 챙겨 줄 사람이 아니라, 너의 강함을 있는 그대로 완전하게 해주는 사람을 만나.
이렇게 곧 무너져 버릴 것만 같은 나를 두고도, 너는 강하다고 믿어주는 말에, 나는 또 한 번 흩어진 자존감을 붙잡을 수 있었다. 그래, 비록 큰 시련을, 또 하필이면 연달아 겪다 보니 그릇에 금이 가버렸지만, 아직은 깨어지지 않았어. 지금은 수리가 필요한 상태이지만, 나는 그렇게 쉽게 깨지는 재질은 아니야. 잠깐 약해져서 회복할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야. 겨우, 간신히, 안간힘을 다하는 거라도 좋아. 견디고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 충분해.
나는 오늘도 출근을 하고, 내 몫의 일을 해내고, 운동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내 상처를 돌보고, 이렇게 글을 쓴다. 살아간다는 것이 원래 그리 만만하지는 않은 거라지만, 최근 몇 달 동안 인생은 유난히 나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신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준다던데. 대체 나를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나한테 원하는 것이 뭘까. 이 시련을 관통하여 어떤 삶을 살아가길 원하는 걸까. 나는 이 시간들을 지나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 건지 아직은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내가 애틋하다. 내가 부디 행복하기를, 누구보다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