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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아 Aug 08. 2022

파혼해서 다행이야

깨져야만 배워지는 것들


오랜만에 친구 B가 연락이 왔다. K를 봄에 만났을 적에, 이번 가을에 결혼한다고 들었어서 당연히 청첩장 나왔다는 소식이겠거니, 하고 전화를 받았다. 지만 깊은 한숨 끝에 B예상 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 파혼할 것 같아."


이건 또 무슨 일 일까. 기쁘지 않은 소식에 아찔하기도,  안타깝기도 했지만, 정말 솔직하게는 나에게 닥친 파혼을 감당하기에도 버거워서 친구의 파혼까지 위로할 여력이 없었다. 렇지만,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B가 풀어놓는 연을 들어보, 결혼 준비 과정에서 B가 효심을 부리다가 예비 신부의 신뢰를 잃었고, 뒤늦게 정신 차려 바뀐 모습을 보여주려 해도 예비 신부의 마음을 돌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와 다른 듯 다르지 않은 사연을 듣다 보니 마음이 복잡해왔다. 아주 큰 문제 파혼하기도 하지만, 더 많은 경우에는, 결혼 준비 과정에서 예민해진 마음이 틀어지는 것을 바로잡지 못해서 헤어지듯하다. 나 역시 그랬고.


"나 이번에 정말 많이 배웠다. 인생 공부 제대로 했어."


그래, 우리는 그 와중에도 또 배우고 조금 더 강해진다. 그런데 말이야, 처음 해보는 거여도 문제없이 잘 흘러가는 사람도 많던데, 왜 우리는 이렇게 직접 깨져봐야 배우는 걸까? B는 그래도 파혼이 이혼보다는 나으니까, 라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 모습까지도 나를 거울에 비춰 보는 것 같아서 속이 쓰렸다. 그 지옥 같은 마음을 어떻게 모른다 할까.  


"... 그렇다고 심리적 타격이 적다는 건 아니잖아.

상처받는 건, 지. "


내 말에 B는 조금 울었다. B는 자기가 제대로 처신하지 못했던 부분은 인정하지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대화로 조율해 나가고 싶어도 기회를 주지 않는 예비 신부의 모습에 지쳤다고 했다. 나는 B가 이런 종류ㅡ 인내심의 문제로 파혼하는 일은 없기를 진정으로 바랬다. 경험해보지 않았을 때는, 뭘 그렇게까지 하면서 결혼을 해야 돼?라고 생각했었던 나였지만, 내가 파혼을 해보고서야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는 뜻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서로 맞춰가려고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가 '결혼 생활'이라는 한 편의 영화이고, '결혼 준비'는 예고편에 불구하다.




재혼이 아닌 이상, 결혼은 누구나 처음 하는 거니까. 그래서 누구나 미숙하고, 현명하지 못한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대단히 심각한 문제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잘못을 인지하고 변해가려는 노력을 한다면, 적어도 예고편에서는 상대에게 한 번쯤은 기회를 더 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다른 걸 인정하고 '그럴 수도 있겠다' 이해하면서 존중하는 것이 사랑일 테니.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 참인 명제라면, 오래 참지 못한다면 사랑이 아닐 거다. 내 사랑은 예고편에서 뒤돌아섰고, 결국 사랑이 아니었던 것으로 판명 났지만... 내가 이렇게 박살이 나고 보니, 조각조각난 마음이 너무 아파서 누구에게도 추천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그래도 B는 뒤늦게 정신 차리고 부모님께 '우리 집 귀한 자식'이 아닌 '하자 많은 내 자식'을 데리고 가는 예비 며느리 대하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겠다며 집을 뒤엎고 왔다고 다. 부모님 의견이 제일 중요해서 나를 몰아붙이고, 설득이 안되니 바로 버리는 쪽을 택했던 그와는 다르, B에게는 아직 꼬여버린 매듭을 풀 기회 남아있다고 보였다. 나는 B에게 아직 파혼하기로 결정된 게 아니니까, 한 번이라도 더 노력하고 조금이라도 더 기다려보라고 했다. 나는 그럴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지만, 너는 꼭 해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과 공감과 위로와 조언의 이야기를 마치고, B는 주말에 예비신부와 한 번 더 만나보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B의 일과 나의 일을 겹쳐보며 조금 슬펐. 직접 해보지 않고도 깨닫는 현명한 사람도 있겠으나, 나는 우매하여 역시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르나 보다. 나비가 되려면 번데기의 허물이 터져야 하고, 새가 태어나려면 알을 깨고 나와야 하니까. 좀 아프고 힘들더라도 강해지려면 어쩔 수 없지 싶다. 그래도 파혼을 경험한 덕분에 이럴 상황에 놓인 누군가의 대나무 숲이 될 수 있고, 감히 위로를 건넬 수 있게 되었으니. 그래, 참 다행이다.




파혼은, 내 인생의 많은 것들을 무너뜨렸다. 이상형,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 삶에 대한 가치관 같은 것들을 완전히 잃어버린 기분이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고장 난 나침판처럼 정말 이상하다. 누구보다 호불호가 확실한 사람이었던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무엇도 확실하게 선택하지 못하고 폐허가 된 나의 세상을 황망히 바라보는 나만 남았다. 붕괴된 잔해들과연 나를 세우던 기둥이긴 했을까? 그것들은 진실로 내가 온전히 원하여 스스로 웠고, 오롯이 나 자신에게서 나온 답이었나? 어쩌면 결혼을 준비하기 전에, 한 사람의 성인으로 진지하게 살폈어야 하는 생각들을 파혼 후에야 비로소 해보고 있다.


서른네 살에 인생을 재정립하면서, 되도록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려 하고 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위로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성찰이 생기기도 해서 도움이 많이 된다. 예전의 나라면 굳이 처음 본 사람에게 개인사를 꺼내 놓지 않았을 텐데, 이상하게 요새는 거리낌도 없이 파혼한 사연이 줄줄 나온다. 그냥 어디에라도 말하고 싶은 걸까, 인생의 기준이 없어지면서 할 말과 하지 않을 말의 기준도 잃어버린 걸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생각도 별로 안 든다. 뻔뻔해진 건지, 내숭 떨 기력도 없는 건지, 아니면 어떤 평가를 받든 신경 안쓸 정도로 강해졌던지. 아무튼 요즘의 나는 이상하다.


"파혼할 거면 빨리 하는 게 나아.

그리고 지나고 보면 그렇게 나쁘지 않아."


9년을 연애하고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파혼했다던 H 씨는, 내게 '잘했다'라고 했다. 9년을 연애하고, 다 참아가며 청첩장까지 돌려놓아도 안될 결혼은 결국 안된다고. 내 노력이 부족했다거나 내가 뭘 잘 못해서라기 보다 그냥 안될 일이어서 그랬을 거라고 했다. 쉽지 않으셨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냐는 질문에 H 씨는, 물론 몇 년 동안 방황하긴 했죠, 하지만 다 지나가요, 라며 올망졸망한 세 아들 한효주를 닮은 어여쁜 아내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나중에 그 사람이 돌아오더라도 받아주지 말아요.

결혼의 중심이 본인이어야지, 결혼이 중심이면 안돼요."


내 사연을 들은 기혼자 A 씨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조건이 훌륭해도, 결혼 생활은 조건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결혼 후에도 부모님 쳐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많은데. 부모보다 내 가정이 먼저이고,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지 그렇지 않으면 결혼생활 유지하기 힘들어요. 부모님에 반대 의견도 못 내는 그런 사람과 결혼해봤자 고생길만 열렸을 걸. A 씨는 다시 볼 것도 없이 잘 헤어졌다고 잘라 말했다.


요즘 결혼하신 분들을 만나면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결혼을 결심하셨어요?'. 대부분은 그냥 어쩌다 보니,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요, 라며 가볍게 답한다. 아무개 씨는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그걸 참았어야 했다며 괴로운 웃음을 터트렸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저 결혼할 나이가 되어서, 만나던 사람이 있었으니까, 혹은 상대방의 조건이 좋아서 결혼을 한다. 아마 그도 그 정도의 이유로, 마침 적당해 보이던 나와 결혼하려 했었던 것 같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정말로 '그런 결혼'을 하고 싶었던 건지 반추해보게 된다. 나도 예정대로 결혼했더라면,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되었을까?


얼마 전에 업무 차 만난 J 씨는 9살, 7살 두 아이를 키우느라 취미생활은 생각도 못한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굉장히 행복하다고 했다. 결혼은 선택이지만, 강력히 추천한다는 J 씨에게 언제 결혼을 결심하시게 되었는지 물었다.  


"나는 그냥 와이프가 행복해하는 걸 보는 게 좋더라고.

그래서 결혼을 결심했어. 지금도 그래."


J 씨의 답변에 감탄했다. 아, 행복한 결혼의 조건은 이것이구나. 기꺼이 나보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걷는 것. '사랑'을 정의하는 더 좋은 표현이 있을까. 내가 하려 했었던, 그러나 실패로 끝난 결혼은 '합리'에만 갇혀있었던 것 같다. 그와 나는, 서로 손해보지 않으려고 했었다. 상대방이 하나를 내어놓으면 나도 딱 그만큼만 내어놓으려고 저울질하고 손해 보는 기분이 들면 희생을 강요받았다고 여기지 않았던가. 마지막에는 나라도 어떻게든 그에게 맞춰보려고 했었지만, 돌이켜보면 그가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이 만큼이나 노력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원망을 걷어낸, 날 것 그대로의 마음은, 그저 결혼을 엎을 수 없으니까, 또 언제 누구를 만나 결혼할지 막막하니까 어떻게든 지속해보려는 '욕심'이었다. 가보지 않은 길을 알 수는 없으나, 사랑이 아닌 집착과 미련 위에 세운 결혼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내가 34년을 키워 온 이상형이었다. 몇 번의 연애를 통해서 학습한 조건, 혹은 어디서 주워들은 조건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빚어 놓은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잘 생기지는 않아도 키 크고 좋은 비율이어야 하고, 근사한 패션 센스는 없어도 허세 부리지 않는, 자존감 높되 가부장적이지 않은 사람. 돈이 많지는 않아도 되지만 나와 비슷한 혹은 이상의 경제적 능력이 있으면서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한 사람. 술, 담배 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 음식을 같이 먹으면서 즐거워하고, 함께 산책하는 걸 좋아해 주는 사람.  생각이 많은 나와 깊은 대화를 할 수 있고, 부지런하고 계획적인 나와 손발 척척 맞출 수 있는 사람. 아차차, 머리숱도 많고 연하였으면 좋겠다, 등등... 적어놓으니 이런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지만, 그는 이 모든 조건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오만하게 기준을 세워놓고, 결혼을 '잘'하지 않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여기던 나로 하여금 ' 정도면 결혼하지 않을 수 없겠다' 하게 만들 만한 사람이었다. 몇 개월이긴 했지만, 단 한 번도 먼저 전화를 끊은 적 없고, 단 하루도 나를 혼자 집 보내지 않았던, 매 순간에 정성스러웠던 그 사람을 나정답이라고 믿 의심치 않았었다. 그래서 나를 버려서라도 나를 그에게 맞추려고 했었다. 34년 간의 이상형과 결혼할 수 있다면 인생 최고의 성취일 거라 믿었던 나는, 파혼 이후엔 방향을 잃은 나침판이 된 것 같다. 


파혼 후에 산산조각 난 마음의 파편들을 살펴보다 보면, 내가 왜 그와 결혼을 하고 싶었었는지 적나라하게 알게 된다. 나는  그가 그저 그런 삶으로부터 나를 구원해줄 거라 착각했었다. 마음속에는 무겁게 가라앉은 상처들도, 그와 함께라면 다 잊힐 거 같았었다. 결국 '그와 함께'라면 행복해질 거라전제, 나에게 치명적인 독이었다. 그 전제가 있는 한, 그가 없는 내 삶은 영원히 가물어 있어야 할 테니. 내가 길을 걷다가 발을 헛디뎌도 싱크홀에 빠지지 않도 손줄 사람이라고 믿었던 람은, 언제라도 내 손을 잘라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를 잡아 줄 사람을 찾기 위해 결혼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헛디디지 않을 견고한 다리 근육과 절벽에버티고 올라올 수 있는 팔 근육을 키웠어야 했다.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다.



파혼 후에야 나는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지 생각해 보고 있다. 그리고 과연 나는 인생이라는 긴 여행에 어떤 사람과 동행하고 싶은지 생각한다. 나이, 키, 머리숱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저 서로 간의 다름에 대해 '그럴 수도 있겠다' 여기고,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맞춰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끈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다름에 대한 이해 없이 설득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강요보다는 존중으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함께 여행길을 걸어봐도 좋을 것 같다. 좋을 때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날씨가 굳을 날에도 끝까지 함께하는 의리가 있는 사람과 같이 걷고 싶다. 아마 파혼하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해볼 기회도 없는 애송이로 남아 있었겠지. 아직은 나의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 중이지만, 그래도 이제야 옳은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건 느껴진다. 그런 기분이 들 때면, 속으로 말해본다.



나, 정말, 파혼해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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