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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페페 Oct 24. 2022

03. 비워내기

 퇴근 후, 혹은 출근 전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때가 있다. 편안하고 안락한 주말을 보내고도 다가올 출근 생각에 두근거리는 심장을 다스리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다가올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타이른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면 된다. 지금 당장은 내게 주어진 시간을 살면 된다.


 아무 보람도 느끼지 못하는 일을 기계처럼 해내며 살고 있다. 몸과 마음은 무너져 내리고, 가끔은 살고 싶지 않다. 잠을 자다가 그냥 조용히 죽어버려서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 적도 많다. 그런 나쁜 마음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돌덩이가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인생을 살다가 결국 내 인생이 별 볼 일 없이 끝나버릴 것 같은 암담한 기분에 휩싸기도 한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내 자신을 먹이고 나면 나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쓸 시간이라곤 고작 서너 시간밖에 남지 않는다. 피곤함을 이겨내고 글도 쓰고 노래 연습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싶지만 하루 종일 소모된 상태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흘려보내는 편을 택한다.


 생존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때리는 시간은 주로 식물을 돌보는 데에 쓴다. ‘ 때리기라고 썼지만 고쳐 표현하자면 ‘비워내기 가깝다. 식물을 돌보며 나는, 내게 남은 최소한의 힘만을 들인다. 하지만 그렇게 가만히 또 고요히 식물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식물에 물을 주고 잎사귀를 아 주고 흙의 상태를 체크하는 행위는 아주 피곤한 상태에서도   있는 사소한 작업이지만,  과정을 통해 식물에 쏟은 나의 관심은 충분히 보답받는다. 시시때때로 창가에 앉아 식물을 바라보다 보면 어떤 날은 자고 일어난 사이, 얼마간 성장이 멈춰있던 식물의 새잎이  자라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수도 있다.


 이 작지만 소중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 매일같이 정성껏 시간과 마음을 쏟은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 너무나 뿌듯해서 누구에게라도 자랑하고 싶을 지경이다. 의미 없이 흘려보낸 하루의 끝에, 그래도 식물에 싹 하나는 틔워냈다는 뿌듯함. 내가 돌보는 대상을 죽이지 않고 건강히 키워냈다는 자부심. 도무지 내가 나를 긍정할 수 없는 날들에도, 이 작은 새싹 같은 감정이 있어 다음날 눈을 뜨며 미약하나마 힘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별로인 하루더라도 그 끝에는 식물이 있다는 안도감이 있다. 내게는 돌아갈 곳이 있고,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다.








3-1. 거실 창문 앞 식물들


 거실 창문 앞에는 언제나 식물들이 기다리고 있다. 옹기종기 줄지어선 화분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내가 회사에 있던 10시간 동안 생긴 변화를 살펴본다. 삐죽 튀어나온 새 촉이 조금 더 자랐고, 발아를 시도 중인 자구에서 뿌리가 마구 자라고 있다. 스무 개가 넘는 화분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살펴본다. 바람이 통하도록 선풍기 바람을 쐬어주고 분무기 물을 분사해 준다. 물이 부족하진 않은지 화분에 손을 넣어 흙을 확인한다. 그렇게 모든 것과 단절되어 한참을 식물을 가꾸는 데 몰두하다 보면 비로소 하루 동안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들과 조금씩 멀어질 수 있다. 시간과 나를 잊는다.



@illust&writing by 주페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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