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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페페 Oct 24. 2022

04. 조용한 기쁨

 식물을 키우면서 얻는 기쁨은 정말 다양하다. 일단 거실 한편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화분들은 마치 작은 정원처럼 푸르고 아름다워 눈을 즐겁게 해 준다. 거실에서 식물존으로 허락된 작은 면적을 꾸미기 위해 화분에 식재한 식물의 배치를 고민해 보고, 다음에는 무슨 식물을 들이면 좋을지 고민하는 과정도 즐겁다. 식물에 어울리는 화분을 골라 분을 옮겨 심고, 반대로 예쁜 화분에 어울리는 식물을 상상해 보는 과정도 재미있다. 새로운 식물을 들이면 그 식물이 좋아하는 습도와 관리법, 번식 방법 등을 열심히 찾아보며 새로운 사실들을 습득해 나가는 과정도 두말할 것 없이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제일 큰 기쁨은 예상치 못한 변화의 순간을 목격할 때 찾아온다. 성장이 멈춘 것처럼 몇 개월 동안이나 얼음 상태이던 식물에서 새순이 돋아난다든지, 분갈이 후 시름시름 앓던 식물이 다시 파릇하게 피어난다든지 하는 경우다. 식물이 바뀐 환경이나 화분에 적응을 하면 새잎을 밀어내 보이며 적응이 끝났음을 알려준다. 변화는 갑작스럽고,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순간에도 찾아와 나를 놀라게 하지만, 그럴 때면 내가 그래도 식물들을 제대로 돌보아주었구나 싶어 기쁨으로 마음이 가득 차오른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힘들게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 창문 앞으로 식물을 보러 갔다. 하루 사이에도 식물들은 훌쩍 변해있는 듯했다. 몇 달간 새잎을 내주기는커녕 힘없이 잎을 툭툭 떨구기만 하던 필레아 페페가 손톱만 한 새 잎을 만들고 있었다. 잎 한 장을 얻어와 물꽂이로 뿌리를 내려 화분에 심어준 시암 몬스테라는 새 촉을 삐죽하게 밀어 올리고 있고, 분갈이 몸살 때문에 시름시름 앓고 있던 아젤리아의 가지 위에는 드디어 작은 초록점이 하나둘 돋아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 문득, 내게는 늘 새삼스러운 그 변화들을 만들기 위해, 보이지 않는 시간 동안 식물들은 엄청나게 애를 쓰고 있었을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낮시간 동안에는 잎사귀로 햇빛을 열심히 받아내고, 보이지 않는 흙속에서는 뿌리로 양분을 빨아들이며 새잎을 보여주기 위해 조용히 부지런을 떨었을 것이다. 그 바지런함이 뭉클하고 기특했다. 불쾌함만이 가득한 습도 높은 여름 날씨에 축축 처질 법도 한데, 식물들은 늘 그렇게 하루하루 쉬지 않고 열심히다. 그렇게 오늘도 홀로 감동스러워하는 아침을 맞는다.







괜찮아요

천천히 호흡하세요.

흙에 손을 넣어 물기를 확인해 보세요.

겉흙이 말랐네요,

식물에 물을 주세요.

화분 구멍으로 물이 나올 만큼 흠뻑 이요.


공기가 너무 습한 것 같을 때는

식물에 선풍기를 쐬어주세요.

저는 24시간 창가에 선풍기를 틀어 놓거든요.

새잎이 자주 나오고 있는 것을 보니

녀석은 이 집이 마음에 드나 보네요.

당신이 잘했다는 증거 아닐까요?


그렇네요. 잘하고 있어요.


잘했어요.




@illust&writing by 주페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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