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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페페 Oct 24. 2022

02. 시작

 생각해 보면 식물을 한 번도 잘 키워본 적이 없었어요. 누가 화분 선물을 하면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모두 죽이고 말았거든요. 보기에는 예쁘고 선물 받으면 기분이 좋지만 생명을 끝까지 키워 낸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더라고요. 오죽했으면 제가 화분이라는 노래까지 만들었겠어요? 


 이 집으로 이사했을 때 친한 친구가 블랙벨벳 알로카시아 화분을 선물해주었어요. 엄마는 야자 화분과 이름 모르는 식물을 토분에 식재해서 이삿짐 트럭에 실어 보내주었구요. 결국 그 모든 화분은 말라 죽어 버렸지만, 그게 식물 덕질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예전엔 알지 못했어요. 우리 집 화분이 왜 모조리 죽어버렸는지를요. 나는 내가 죽인 블랙벨벳 알로카시아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같은 식물을 인터넷으로 다시 구입했습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잘 키워내겠다고 다짐하면서요. 


 알고 보니 실내에서 키우는 식물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통풍과, 과습을 피하는 것이었어요. 눈에 띌 때마다 식물에 물을 주던 저의 행동은 사실은 식물을 죽이는 길이었다는 걸 예전엔 몰랐어요. 흙이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을 주고, 선풍기 바람을 쐬어주고, 가끔 스프레이로 공중 분무를 해주었을 뿐인데 우리 집 식물들은 그 전과는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새잎이 나는 것이 신기해서 만져 보다가 잎을 찢어버리거나 예쁜 화분으로 이사를 시켜주려다가 분갈이 몸살을 앓게 해서 식물을 죽여버리는 일도 다반사였지만, 시간이 지나 저에게도 조금씩 요령이라는 게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그리하여 우리 집에는 식물 식구들이 끝없이 늘어나게 됩니다. 몬스테라 델리시오사, 몬스테라 아단소니, 필로덴드론 골드셀렘, 수박페페, 필레아 페페, (무늬 잃은) 싱고니움, 알로카시아 핑크드래곤, 히메 몬스테라, 베고니아, 필로덴드론 글로리오섬 등등… 






#식물거래일지①

7/4 월요일, 알로카시아 오도라 오키나와 실버


알로카시아 오도라 오키나와 실버

 식집사라면 누구나 특이한 무늬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되는 순간이 온다. 우연히 무늬 토란이란 식물을 알게 된 후로 나는 순식간에 그 존재에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어느 날 중고 거래 앱을 서치하다가 괜찮은 놈을 발견했다.


 “무늬 토란, 무늬 예뻐요, 7만 원.”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자 남편이 선뜻 선물로 사주겠다고 해서 판매자와 약속 시간을 정하고 만났다. 건네받은 식물은 작은 플라스틱 슬릿 분에 심어져 있었다. 기다란 투명 플라스틱 커피 컵과 돔 모양의 뚜껑을 이용해 이중 포장한 솜씨를 보았을 때 판매자는 식물 거래의 고수임이 틀림 없었다.


- 이거 분갈이는 언제 해야 하나요?

- 뿌리가 화분을 감싸고 도는 게 보이면 하시면 돼요. 

- 아, 네. 감사합니다.

- 네, 예쁘게 키우세요. 


 식물은 아주 작고 귀여웠다. 엄지손가락만 한 초록 잎들에 흰색 무늬가 물감처럼 신비롭게 퍼져 있었다. 과연 비쌀만 하다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식물을 보여주었더니, 뭘 이런걸 7만 원씩이나 주고 사냐고 잔소리만 잔뜩 들었다. 남편에게 승진 기념으로 받은 선물이라 말했지만 엄마에겐 소용이 없었다. 엄마는 그 후 나를 만날 때마다 종종 이렇게 물었다.


“그 7만 원짜리 식물은 잘 있냐?”



@illust&writing by 주페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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