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의 8일 간의 영국 여행이 끝났다. 나의 첫 유럽 여행이자, 처음 혼자서 떠나는 여행이었다. 영국, 그 안에서도 런던이라는 여행지에 대해 가장 먼저 생각나는 한줄평은 젊을 때 혼자 떠나 보기에도 좋은 여행지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의미가 있는데, 우선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는 편이라서 다니기에 좋고, 치안 걱정도 크게 없었다. 또한 다른 외국어에 비해서 영어로는 기본적인 소통은 할 수 있다 보니, 마주치는 직원들과의 소통이 조금 더 용이하다는 장점도 꼽을 수 있겠다.
그 다음으로는 한국인 여행자가 많다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에 따라서는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친구 중 한 명은 해외 여행을 가서까지 굳이 한국인 동행을 구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평소에도 한국인이야 많이 보는데, 외국에 나가서는 외국을 온전히 느껴보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나는 해외 여행 경험이 아주 많지는 않은 탓인지, 첫 유럽 여행지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보이는 것은 적당히 반갑게 느껴졌다. 혹여나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요청하기에도 좋을 것 같고.
비슷한 또래의 한국인들과 즉석 동행 만남을 계획해 여행의 일부 일정을 함께 해본 것도 내게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네이버 카페 유랑을 통해서는 런던, 유럽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국으로 떠나는 여행에서 동행을 구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영국의 런던이나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의 몇몇 도시 등 관광지로 많이 알려진 곳에서 동행을 구하는 게시글이 특히 활발한 편이다. 본 글에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런던 다음 여행지로 핀란드를 다녀왔는데, 핀란드의 경우 동행을 구하는 글을 두세 차례 올려보았으나, 끝내 동행을 구할 수 없었다. 다음에 어딘가 해외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도 또 동행을 구하고 싶냐 하면 바로 그렇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런던에서 동행 문화를 경험해볼 수 있었던 것은 상당히 좋은 선택이었다.
여행, 그 중에서도 특히 해외 여행은 내 삶에서 가장 단기간에 값비싼 소비를 하는 선택 중 하나이다. 어쩌면 기간 대비 지출 금액으로 따지자면 1위를 차지하지 싶다. 여행을 가기 전이야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마음이 차 있고, 여행 중에는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감각을 여러 방면으로 느끼기에 바쁘다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이런 질문을 한 번쯤 던져보기 마련이다. '돈과 시간을 비싸게 지불하고 다녀온 여행, 그렇다면 여행이 끝나고 돌아와서도 내게 여전히 남는 건 뭐가 있을까?'
가벼운 것부터 생각해보면 사진이 있겠다. 평소 일상 속에서는 사진을 많이 남기지 않는데, 여행을 가서는 그래도 관광지의 풍경부터 도로나 마을의 모습, 같이 간 사람들과의 모습을 남기려고 사진을 찍으려는 편이다. 특히 유럽은 시간이나 거리 상으로 다시 오기에 어려운 곳일 수도 있을 것 같아, 기념이 될 만한 사진을 제법 찍어 왔다. 물론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매우 적은 양이겠지만. 이런 사진들은 스스로 여행의 추억을 되뇌이는 역할도 하고, 카카오톡 프로필, 조금 덜 공식적인 자기소개 용도의 사진 등 나의 사회적인 상호작용에서도 꽤나 유용하게 쓰이곤 한다.
또 하나는 새로운 형태의 인간 관계에 대한 경험이다. 평소 넓은 관계를 유지할 자신이 없어 비교적 좁은 관계를 지향하고, 별로 안 볼 것 같은 사람들에게는 괜히 에너지 쏟는 것조차 아까워하기도 하는 내게, 여행에서의 동행이란 평소 나의 성격에 비추어보았을 때는 다소 의외의 선택이기도 하다. 여행에서 만난 동행들 모두 동행 일정이 끝나고 헤어잘 때 솔직히 다시 만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그들이 별로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은 내가 기대했던 동행보다 전반적으로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일상에서는 나와 맞닿아 있는 면이 매우 적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 사람의 런던 여행이라는 구체적인 맥락을 공유하면서 누군가와는 축구 경기를, 누군가와는 뮤지컬을, 또 누군가와는 미술관, 이국적인 식사 테이블을 즐겼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순간을 함께 몰입하며 즐길 수 있었다. 그거면 된다고, 그거면 꽤나 충분하다는 것이 내 결론이었다. 이것은 평소 일상에서 내가 시도하고 맺어가는 인간 관계와는 사뭇 다른 잣대이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그것이 충분하다는 게 새로운 결론이었다.
유럽 여행은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라서 현실적으로 근 시일 내에 다시 유럽 여행을 계획하기는 어렵겠지만, 유럽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부터 '만약 나에게 어느 날 유럽 여행에 또 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라는 질문을 가끔 스스로에게 던지곤 한다. 만약 그랬을 때 런던을 1순위로서 다시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여러 여행지를 꽤 긴 기간 동안 갈 수 있다면 런던을 동선에 넣을 의향은 충분히 있다. 그렇지만 한정된 돈과 시간을 가정했을 때의 얘기이다) 지금까지 런던에 대해서 좋은 얘기만 늘어놓다가, 갑자기 글의 결론이 이렇게 지어지는 것 같아 이상할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 '런던은 그다지 좋지 않은 여행지' 라는 단편적인 주장을 하려는 것은 물론 전혀 아니다.
내게 런던은 당연히 아주 만족스러운 여행지였다. 위에서 한껏 이야기했던 여러 가지 이유들에서 말이다. 그럼에도 다시 런던을 1순위로 선택하지는 않을 이유는 오히려 첫 번째 여행에서 충분히, 아쉬움이 딱히 들지 않을 정도로 만족스럽게 런던을 즐기고 왔기 때문일 것 같다. 여행을 가기 전에 기대했던 여러 가지 요소들을 대부분 경험하고 돌아온 느낌이 들어서, 미련이나 후회의 감정이 들지 않는다. 다만 혼자 여행을 떠나서 동행들과 어울리며 여행을 즐기는 것, 다소 시끄럽고 정신없는 런던 시내 한복판 거리를 거니는 것 등은 20대인 지금은 새롭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지만, 미래의 나도 좋아할 만한 요소인지는 약간 의문이 든다. 그런 면에서 20대인 지금의 내게는 런던이 첫 유럽 여행지로서 만족스러운 선택이었으나, 미래에도 여전히 내게 그렇게 다가올지는 모르겠다.
한편 영국에서 유명한 관광 거리인 뮤지컬과 축구에 대해서는,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그 자체로 재방문의 이유로서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EPL이나 영국 뮤지컬의 열렬한 팬은 아니었음에도, 뮤지컬 극장과 축구장에서의 몇 시간은 나를 완전히 몰입시켰고, 왜 그렇게 EPL 축구 경기에 몇 만 관중이 모여들어 열광하는지, 왜 한 번 본 뮤지컬을 극장에 몇 번씩 다시 와서 보며 환호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앞으로 EPL의 팬이 된다든지, 국내 뮤지컬 극장을 몇 번 다녀본 뒤 뮤지컬의 매력에 확실히 빠지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런던을 다시 찾을 이유가 충분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