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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은 Oct 11. 2024

영천 사람들

화성옥


두꺼운 나무문이 드르륵 열리자, 밤새 내린 차가운 이슬이 유리창에 달려있다 주르륵 흘러 내렸다.

숨 쉴때마다 찬 기운이 몸 속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계절이다.

이슬이 서리가 되기 전이라 아침 공기가 무겁고 차갑게 느껴졌다.

나무문이 열리자 안쪽에서 뜨겁고 구수한 냄새가 훅 밀려 나왔다.

형무소 앞 길을 빗자루로 쓸고 있던 남자 둘이 공기에 섞인 시레기와 소뼈 고운 냄새에 침을 삼켰다.

차갑고 습한 공기가 코를 타고 들어올 때마다 얼음물을 마시는 것 같았는데,

순식간에 골목으로 퍼진 해장국 냄새에 온 몸이 뜨듯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날렵한 인상, 언뜻 보면 인정머리 없어보이는 카랑카랑한 모습의 흰 무명 옷을 입은 노인이

두 남자를 언뜻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한 남자가 빗자루를 세워 들고 인사를 건넸다.


찬 공기에 마른 기침을 한 번 하던 노인이 손짓을 하며,


"이리 들어와 한 그릇들 하시오"


"아이, 매번 감사합니다"


"어여 들어와요"


노인의 뒤를 따라 남자 둘이 빗자루를 내려놓고 옷을 탁탁 털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의 뒤를 따라 푸른 옷을 입은 남자가 조심스레 가게로 들어섰다.

차가운 이슬에 머리카락이 흠뻑 젖어 달라붙었다.

풀 먹인 것처럼 차갑고 뻣뻣하던 옷이 가게 안의 뜨거운 공기에 눅눅해지면서 부드러워졌다.


"이른 아침부터 수고가 많소"


노인은 밤새 끓인 가마솥을 열어 부드럽게 익은 시레기와 뼈까지 흐물흐물해진 소고기를 뚝배기에 가득 담았다.

푸른 옷을 입은 남자에게는 살코기를 조금 더 얹어주었다.


"많이들 들어요"


새벽 공기를 들이마셔 목부터 뱃속까지 깔깔하고, 빈 속은 바닥을 긁어낸 듯 따끔따끔했었다.

탁자에 놓인 뚝배기에서 올라온 김이 얼굴을 감싸면서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뜨거운 국물 한 숟갈이 목을 타고 들어가자, 온 몸이 순식간에 노곤노곤해졌다.


"아, 좋다. 어르신 국물이 참 진합니다"


"많이 들어요. 부족하면 더 드리리다"


푸른 죄수복을 입은 남자는 말없이 해장국을 들이켰다.

간수와 함께 아침 청소를 하러 나올 적마다 형무소 앞 해장국 집의 뜨끈한 국물을 맛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형무소 문을 나서 청소를 하는 것도 매번 있는 일은 아니었다.

수감자들 사이에서 아침 청소때 형무소 앞 길로 나가는 것을 은근히 바라는 이유였다.

남자를 보기 위해 시골에서 면회를 오는 어머니도 이 해장국집 이야기를 하셨다.

첫차로 서울역에 도착하면 형무소 앞에서 기다렸다가 면회 신청을 해야하는데, 그 기다리는 시간에 가끔 해장국을 한그릇 드신다고 했다.

차표도 겨우 마련해서 오기 때문에 해장국 한 그릇을 먹을 여유는 없지만,

그래도 한 그릇 먹고 나서 언제 부를지 모르는 번호표를 받고 있으면 기다릴만 하다는 것이다.

매일 아침 형무소 앞길을 청소하는 수감자와 간수에게 해장국을 대접하는 일을 누구도 타박하지 않았다.

죄 지은 사람을 가두는 곳이 형무소이지만, 몹쓸 죄보다는 저마다의 사정으로 수감되어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할아버지가 첫손님으로 이들을 대접하는 것도 죄를 만드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화성옥은 오로지 할아버지, 할머니의 힘으로 세운 가게다.

떡장수, 채소장수를 해서 모은 돈으로 대들보 굵은 한옥을 지었다.

할아버지는 이 집에서 오래 오래 살 생각으로 굵은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문도 두껍게 해 달았다.

말썽꾸러기 손주녀석들이 기둥이며 마루에 연필로 깨작깨작 낙서를 하고 흠집을 낸다.

먹을것은 한없이 내주는 할아버지지만, 귀하게 지은 집에 흠을 내는 걸 들키기만만 하면 여차없이 호통을 쳤다.

이른 아침에 가게문을 열고 나면 할아버지는 가게를 맡겨두고 잠을 자러 들어간다.

한 숨자고 나서 마차를 몰고 마장동에 가서 소고기를 사다 마당에 있는 우물물을 퍼서 핏물을 뺐다.

할아버지가 밤새 지키며 고아놓은 해장국을 담아 파는 것은 할머니 몫이다.

가게가 바빠지면서 사람도 들이고, 큰 아들이 가게를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할머니가 나가서 그릇도 닦고, 음식도 내놓아야 한다.

영천시장에 장이 서는 날이면 할머니 고향인 원당이나 할아버지 고향인 선유리에서 사람들이 농사지은 물건을 팔러 올라왔다.

열무, 오이, 배추같은 채소거리는 가게에서도 쓰는 것들이라 시장에서 팔고 나머지는 화성옥에 모두 팔고 내려갔다.

사촌부터 육촌, 팔촌까지 모여 살고, 서로 사돈 맺는 집도 많으니, 성은 달라도 서로 얽히고 설켜 굳이 촌수를 따질 일도 어려울 것도 없는 사이였다.

할아버지는 어쩌다 장에 나온 친척들한테 해장국값을 받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식구들한테 나눠먹는 인심이 박하면 안된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특벼히 인심이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일가친척 누구라도 서로에게 박하게 구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래도 할아버지, 할머니 고향 사람들은 모두 해장국 한 그릇을 고맙게 생각했다.

첫차 타고 나와서 시장에 물건을 팔고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꼬박 시골에서 서울까지 나오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서울에 비빌만한 친척이 있는 것도 고마운 일이었다.

갖고 나온 물건을 시장에 다 팔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모재 아저씨네서 해장국 한 그릇 먹고 왔다"

는 자랑이 꼭 붙었다.

할아버지가 끓여놓은 해장국을 한 그릇이 담아서 손님 치례를 하고 나면 어느새 아침 장사가 끝이 난다.

안채 마당으로 연결되는 가게 뒷문을 열고서


" 장씨 나 들어가요~"


"네"


마당에 걸쳐진 가마솥 하나가 바닥까지 비었다. 아침에 한 솥 팔고 나면 점심에는 우동, 자장면 손님이 온다.

점심은 수타를 뽑는 장씨랑 큰 아들 세균이 맡아서 한다.


"금례야, 점심 준비하자~"

라디오 드라마가 마당 가득 울렸다.

금례는 라디오 드라마 시간이 되면,

"아줌니~ 드라마 시간이예요"하고 달려 나와 라디오를 틀었다.

금례는 할머니의 먼 친척뻘되는 아이다.

할머니와 사촌 지간인 아버지가 딸 둘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는 재가했다.

큰 집에서 설움받으며 사는 아이 둘을 친척들이 한 명씩 맡기로 했다.

열 일곱살 된 금례가 할머니 집에 막 왔을 때는 말수도 없고 가끔씩 멍하게 마당을 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금례야, 금례야"

부르다가 또

"쯧. 쯧. 불쌍한 것"


대청마루에 내놓은 라디오에서 할머니가 좋아하는 소리가 끝나면, 드라마가 시작된다.

금례는 뭐가 그렇게 깔깔대다가 훌쩍쩍훌쩍 울고, 또 까르르 웃기도 했다.


"금례야~ 금례야~ 저 대야 좀 갖고 와라"

드라마 시간이 되면 할머니가 아무리 불러도 딴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저것이 또 저렇게 빠져들었네. 에휴 드라마에 아예 들어가라"


"네? 들어가라구요?"


"너! 듣고도 못 들은척 하는 거니? 에휴~ 내가 못 살아"


"아하하하, 하하하. 아줌니~ 이것 보세요. 깔깔깔"


"막대기 시집보내니 내가 가지, 참"


한 살 어린 명자가 단발머리를 하고 학교에 다니는 걸 보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못하고

저 혼자 한 글자 한 글자 써가며 글을 익히는 게 안쓰럽고 미안해선지 할머니는 금례를 탓하지 않았다.


금례한테 점심준비를 시키고 할머니는 물에 불렸다 푹 삶은 시레기를 쫑쫑 썰었다.

오후에 끓일 해장국 재료 손질을 미리 해놓는 것이다.

점심은 언제나 국수 아니면, 반찬 두어가지를 넣고 밥을 비볐다.

심심하게 무쳐낸 나물과 무생채를 넣고 참기름에 고추장을 한 숟갈 떴다.


대청 마루에 밥상 놓는 소리가 탁하고 들리면, 진지드시라 하지 않아도 새벽녘에 자리에 들어간 할아버지가 나오신다.


"오늘은 해장국 가지러 안 왔나보네"


"그러게요. 점심 먹고 올라오려나"


숭늉그릇을 비워내고 일어선 할아버지는 마루 기둥에 기대서 눈을 감았다.

콩기름을 발라 맨들맨들해진 나무가 따뜻하게 달궈져 있었다. 등을 대고 비비적 대면 뭉친 근육이 시원하게 풀렸다.


"얼른 다녀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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