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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May 28. 2020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고 더 불안해지다

눈을 뜨니 이유 없이 불안하다. 이유 없이 불안하지는 않을 것이다. 슬리는 뭔가가  있을 텐데  정하기 싫거나 피하고 싶어서 무의식으로 깊이 밀어 넣어버린 건 아닐까? 될 대로 되겠지 하면서 진정하고자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었다. 이 책이 나를 평온하게 하기를 기대하면서. 이 작가 무척 똑똑한데. 논리 정연하게 불안을 정의했다.


우리는 적은 것을 기대하면서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도  있다. 반면 모든 것을 기대하도록 학습을 받으면 많은 것을 가지고도 비참할 수 있다.

우리는 조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이다.-



그런데 내가 이걸 몰랐을까? 아니다. 나는 알 고  있 었 다.  다만 내려놓을 수 없어 불안한 것이다.


40년 전, 동네 아이들의 겨울 외투는 한 벌이었다. 부족하지 않았다. 밖에 나갈 때 선택의 여지없이 그 외투를 걸쳤다. 소매는 꼬질꼬질 더러웠다. 겨울 내내 입고 빨아야 했으니 꼬질꼬질한 소매와 뒷목의 반질반질한 시꺼먼 때는 당연했다. 비교대상도 없었다. 다 그런 줄 알았으니 창피하지도 않았다. 2벌 정도 있었던 회색 아니면 검은색 독고리라 불렀던 목티에서는 늘 정전기가 났다. 무릎 나온 골덴바지는 기본이었다.


이제 옷장에는 정전기도 나지 않는 폴라며 외투가 색깔별로, 길이별로, 소재별로 가득하다. 그런데 신상이라는 이름이 안 붙으면 그 좋은 옷들이 없어 보인다. 가난한 어린 시절의 무의식으로 버리지도 못한다.

잘못된 것이다. 홈쇼핑에서 인터넷에서, 그놈의 친구들이  끊임없이 유행을 얘기한다. 쓸데없는 소리라는 걸 잘 안다. 많은 것을 가지고 나누지도 못하며 서로를 비참하고 가난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그만할 때가 되었다. 값싼 화분도 물과 햇빛만으로 찬란한 꽃을 피우며 다른 꽃과 비교하지 않고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데, 인간은 왜 스스로 불안을 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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