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쁜 이야기 Oct 03. 2021

바다 빛 당신 12. 여자의 얼굴

12. 여자의 얼굴

    

1945. 5월.    


“우리 수녀님 내가 없으면 큰 일 난당께~”

“의사 면허증은 언제 딸랑께?”

“시험이 어려우면 우리 딸보고 대신 쳐달라고 해볼랑게~”     


독일어 당케를 호남사투리 당께. 랑게.의 어미로 바꾸어 놀려먹는 재미가 쏠쏠한 ‘성데레사의 집’.  

   

이곳이 누구보다 만만한 시약소가 된 것은 푸룩투오사 수녀님 덕분이다. 푸룩투오사 수녀님은 조선에 도착하자마자 지금까지 18년 동안 ‘성 데레사’의 집에서 간호수녀로 일했지만, 일본 당국이 발부한 면허증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당당히 의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함흥에 병원을 개원한 메페르트 원장 수녀님이나 요셉 그라하머 수사님에 비하면 수녀님은 확실히 똑똑한 분은 아니신 것이다. 신자들도 척하면 척이라, 눈치 빨로 이미 때려 맞췄다. 그분이 그렇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은 시약소의 약을 의심 없이 들이키고, 수녀님의 처방에 따라 주사를 맞기 위해 엉덩이도 깐다.


원산 사람들의 ‘푸룩투오사 수녀님이 건네는 약’에 대한 믿음은 ‘성 데레사의 집’ 실상을 안다면 놀랍기 그지없을 정도다. 주사라고 해야 에메틴 주사나 판토폰 주사가 대부분이고, 약이래야 소화제와 해열제, 강심제, 구충제 같은 것이 다인데, 환자들은 종류대로 질병들을 가지고 찾아온다. 구비한 약은 많지 않아서 비타민이나 소독제로 처방을 때우는 경우도 많은데, 환자들은 꼴딱 꼴딱 고비를 잘도 넘긴다. 수녀님의 정성 어린 손길 안에서 회복된 환자는 언제나 수녀님 덕분에 나았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당케. 수녀님. 고맙당께~!”


‘성 데레사의 집’을 나설 때, 사람들은 또 한 번 수녀님을 놀려 먹으면서도, 푸룩투오사 수녀님께 허리 숙여 인사하고, 헤어짐을 아쉬워한다.     


양 의원 진료비가 한번 방문에 10원 정도 하는 세상에서, 품팔이 노동꾼의 하루 벌이 30전으로 온 가족이 하루를 버텨야 하는 식구들이 ‘성 데레사의 집’을 찾아온다.


 수녀님은 그들에게 가장 손 벌리기 쉽고 만만한 존재가 되어서 응석과 놀림까지 받아 주신다. 그렇게 시달림 아닌 시달림을 받아내시고도 수녀님은 이곳에 조차 올 수 없을 정도로 아픈 척수 마비 환자나 움막의 거지까지 찾아가 돌보신다. 그들의 움막에 먹을 것, 옷가지, 약품, 붕대 등을 가져다주는 일을 18년 동안 쉬지도 않고 하셨다. 폭풍과 장대비, 눈길의 빙판도 수녀님의 길을 막지 못했고, 탈진하여 길바닥에 주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어떻게든 돕고자 하는 그 마음은 하루도 변한 적이 없다.     


“이 사람은 의사가 아니다. 집으로 돌아가!”    


엄포를 놓는 일본 경찰들 앞에서도 환자들은 막무가내로 수녀님을 신뢰한다. 수녀님이 손잡아 주지 않은 가난한 사람이 원산에 없을 정도로 긴 세월이 흘렀고, 그 사이에 누구도 막지 못할 ‘정’이 쌓였기 때문이다. 수녀님이 한국어를 못해도 상관없다. 모든 아이들이 수녀님의 독일 말을 알아듣는다는 전설도 벌써부터 생겨났다.        



부모가 키울 능력이 되지 않아, 또는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성 데레사의 집’ 옆에 딸린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100여 명은 되지만, 이 아이들 얼굴엔 그늘이 없다. 오히려 걸레 짜기, 의자에 앉고 책상을 쓰며 공부하기, 위생 생활과 칫솔질 까지. 신식 문명 생활 연습 하나에도 아이들은 신이나 웃음을 터트리기 일쑤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성 데레사의 집을 함박 울리고, 고단한 삶을 늬이러 온 어른들에게 꿀물처럼 건강을 회복시켜주는 힘이 된다.

     

가난과 무자격을 양 바퀴로 굴러가는 이 공간에 기쁨이 넘치는 것은 신비다. ‘병원 위생 시설에 대한 규정’을 들먹이며, 약품 관리에 대해 g단위까지 체크하여, 불법이 적발될 시에는 언제든지 시설을 폐쇄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일본 경찰도, 지난 20년 동안 면허증도 없이 운영된

‘성 데레사의 집’을 폐쇄시키지 못했다.



들어서는 모든 사람을 정감 있게 받아 안는 집.

 ‘성 데라사의 집’에서 수녀님과 한 이틀이라도 같이 생활한 사람들이 느끼는 정감을 동길도 느낀다.


이유는 꼭 집을 수 있다.

그냥 엄마 같다. 수녀님이 아니라 성모님?

저렇게 허술한 성모님일리가 싶지만 그래도 엄마 같다. 

   

“동길,

우리 보육원에서 자라는 것을

네 동생이 원한다면 데려와도 좋아.

하지만, 아버지의 허락을 먼저 받아야 해.”        


‘성 데레사의 집’ 원장 수녀이신 마틸다 수녀님이 동순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동길에게 상당기간 고심한 끝에 건넨 제안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신데, 새엄마와 좋은 집에 살고 있는데, 굳이 보육원에 올 것 같지는 않다고 판단하셨지만, 동길의 마음속에 응어리진 가족에 대한 감정들이 다시 풀릴 실마리를 주신 것이다. 그런 깊은 뜻 까지 알지 못한 채 동길은 뛸 듯이 기뻐하며 수녀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성 데레사의 집’을 나섰다.

       

여기서 동해문화 집 까지는 자전거로 한 시간도 안 걸린다.

동순이는 아직도 바가지 머리를 하고 있을까?


이제는 아홉 살.

외모가 어떻게 변했을지 쉽게 짐작이 가진 않지만, 동순이가 베일을 두른 서양 수녀님 앞에서 쭈뼛거릴 것은 예상할 수 있다. 서먹해하는 아이 다루기는 푸룩투오사 수녀님이 전문이니까, 수녀님은 보나마다 이름을 먼저 물어보실 것이다. 독일말로 물어도 동순이는 알아들을지도 모른다.


“김동순인데요.”     


동순이가 이름을 대답하면 수녀님은 “동순아. 김 동순” 하고 불러 주실 것이다.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해도 푸룩투오사 수녀님은 성 데레사의 집에 오는 모든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비상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 심지어 몇 해 전에 신세를 지고는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아플 때만 다시 찾아와도, 수녀님은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신다. 처음에 그런 호의를 받은 조선인들은 너무나 놀라고, 감격스레 여겼지만, 이제는 덕원의 가난한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그 능력의 비결이 수녀님의 허리에 감긴 묵주라는 것을.  

       

수녀님은 자신에게 찾아온 환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며 늘 성모님께 기도를 드린다. 그러니까, 언어를 공부하거나, 의학 면허를 따기 위해 보내야 할 시간을 기도에 쓰시는 것이다. 한국말이 어눌하고 의학지식에 허술해 되레 환자들에게 가르침을 받지만 수녀님의 얼굴에서 기쁨이 떠난 적은 없다. 아기를 안은 어머니처럼 기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동순이의 나침반은?

   웃음꽃이 함박 피는 방향을 가리킬 것이다!'  


일방적인 헤어짐에, 제 발끝만 내려다보던 동생의 마지막 모습이 잊히지 않는 동길에게.

마침내 동순이를 위해, 그늘 대신 빛이 드는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동해 문화 집에 비하면 초라하겠지만, 동순이도 금방 성 데레사 집의 멋과 미를 알아챌 것이다.

그런 부푼 가슴으로 동길은 초여름의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탄다.


히틀러가 죽고 독일이 항복을 선언한 이후, 일본군들의 감시에도 힘이 조금 빠진 것 같다.  시가지로 들어서도 학생증을 보이라고 붙잡는 군인들이 없다. 소련군이 연합군에 합류할지도 모른다는 소식 때문에 일본이 만주국과 나진 쪽에 대거 병력을 투입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새어머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할 선물을 사기 위해서 동길은 자전거를 멈추고 점방으로 들어간다.

3년 전, 모질게도 생살을 베듯 나와 버렸던 자신의 태도에 대해 사과할 용기도 생겼다. 자기 기준으로, 옳게 살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단죄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 태도인지도 알았기에 오늘을 그저 서로가 서로를 부대껴했던 그 옛날 마음이 사탕처럼 녹기만을 기대한다.      


눈깔사탕 네 알이 20전.     


동길은 안셀모 로머 학장 신부님께서 기차 삯 대신 알뜰히 챙겨주신 방학 용돈들을 허투루 쓰지 않고 모아두었다. 새엄마의 진주 목걸이 한 알에 비할 바도 못 되는 값이겠지만, 고급문화 주택에 사는 사람에게 값싼 선물을 드려도 위축되지 않는 자신이 기특하기도 했다.


자기 자신부터, 모든 사람, 모든 사물에 대한 긍정이 청년의 마음에 무한한 자신감을 만들어 주었다. 좋은 어른들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어느새 안정적으로 제 살 곳에 뿌리를 내린 동길은, 수녀원 담장 안 어느 한 자락에 동생의 자리도 마련하려고  들떠있다.


알록달록 예쁜 사탕에 제 꿈을 담아 들고 가게를 나오던 동길은 마주오는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쳤다.        


소녀가 떨어트린 것은 영어로 된 잡지였다. 동길은 표지를 한 가득 메우고 있는 한 미국인 남성의 얼굴과 [TIME]이라고 쓰인 그 잡지를 주워 들었다. 태주가 수도원에 보낸 소포에 들어있던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미안합니다.” 인사를 하고 잡지를 소녀에게 건네주었다. 찰나에 보았지만, 고운 피부에 깨끗한 숙녀복을 입은 태가 귀 해 보였다. 그러나 여성을 정식으로 보는 것이 불편하여 동길은 급히 자전거를 세워둔 자리로 갔다.   

 

“김동길 베드로?”     


맑고 높은 소리가 동길의 뒷골을 당겼다.


놀라서 돌아보니, 소녀가 웃고 있었다.

구김살 없는 웃음이 태주와 닮았다. 아직 이름을 말하진 않았지만, 동길은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유미옥 아녜스예요. 태주 오빠의 여동생!”    


엉거주춤 자전거에 기대어 섰는데, 소녀가 먼저 다가왔다. 사탕 같은 미소였다. 동길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고, 귀가 화끈거렸다.     


“오빠들은 저를 모르겠지만, 저는 몇 번이나 봤다고요.

 오빠들이 미사를 드릴 때도, 신학 수업을 받을 때도,

  빨래를 빨 때도...

 오늘은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았는데, 이런 데서 오빠의 친구를 만나다니..”    


여자애가 장미처럼 고운 향기를 풍기고, 지근거리에 다가와 새처럼 재잘대는 일은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동길은 정신이 아찔해져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동생을 찾으러 가는 길입니다. 수도원에 데려 오려고.”    

 

머릿속에 있는 말을 맥락도 없이 꺼내는데     


“동순이요.”    

 

하고, 알아듣는 것이다. 이 소녀가.    

 

“드디어 만나러 가는군요.”     


그녀가 침범하는 방식은 기차보다 빨랐고, 요셉 수사님 보다 뜨거웠다. 말 한마디에 넋이 나갈 것 같은 가슴. 다가왔으나 예의 바른 거리에서 멈추어 버린 얼굴. 그 존재를 마주함에 아득히 멀어져 육체 밖으로 튕겨 나가 버리는 청년의 영혼이여.


 얼빠진 자신을 간신히 추슬러 제 영혼을 뒤 끌고 온 동길은 느닷없는 대화에 대한 이성적 정리를 시작했다.     


수련생 시절, 동길은 친구 태주와 모든 이야기를 나누었고, 태주는 또 제 동생과 모든 것을 나누었으리라. 이미. 유미옥 아녜스는 김동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급습은 불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가웠고, 태주와 동길이 서로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이 소녀도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맑고 고움이 외모부터 시작해서 마음속까지 그러하다는 것이 처음부터 믿어졌다.


 자신이 한 소녀의 겉에서부터 속까지를 순식간에 통과해 버린 것 같자, 동길의 가슴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올랐다. 당황스러움과 동시에 신체적으로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마치 수술 전에 마취를 당한 환자처럼 다리가 풀려 쓰러지려는 것을 간신히 버티는데, 소녀는 그것도 모르고 이번엔 동길의 코끝까지 다가왔다. 총명하게 반짝이는 눈을 빤히 들어 제 오빠를 대하듯 천연의 위로를 건넸다.    


“동순이가 많이 기다렸을 거예요.

 나도 우리 오빠가 무척 보고 싶거든요.”    


반짝이는 눈동자에 아련한 그리움까지 더해지자, 소녀의 눈은 작품이 되었다. 아름다움이. 천상이 아니라. 그녀에게 있다. 는 생각에 퍼뜩.


“가 볼게요.”     


동길은 불에 댄 사람처럼 놀라서 허둥지둥 자전거를 밟았다.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오느라 “태주는 잘 있어요?” 따위의 말도 물어보지 못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바보처럼 방금 무슨 짓을 했던가. 이국 만리로 떠난 친구의 소식조차 묻지 않고 도망을 쳐 버리다니. “아, 이름은 들어봤어요. 우리들도 미옥 양의 편지 덕분에 매우 재미있었답니다.” 따위의 예의도 없이. 허둥지둥 꽁무니를 빼고 마는 그 뒷모습이 그대로 소녀의 눈에 기록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5월 미풍에 얼굴이 식으면 좋으련만,

바람은 더 많은 마찰을 일으키며 동길의 열기를 부채질했다.


앞은 이미 보이지 않았고, 소녀의 눈동자와 미소만이 잔상으로 남아, 이미 떠나온 공간이지만, 방금 만나고 헤어졌던 그 한순간만이 현재에도 끝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결국 트럭과 사고를 낼 뻔하고서야 동길은 자전거를 멈출 수 있었다.        


천막이 쳐진 일본의 군용 트럭 뒤엔 방금 전 보았던 미옥이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소녀들이 여러 명 타고 있었다. 그을린 피부, 땋은 머리, 상고머리를 한 것이 빈민의 자녀들임이 분명했다. 그녀들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처럼 한 꾸러미의 보자기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가족의 굶주림을 대신해 무언가를 해 보려고 나선 것이 분명했다. ‘탄광과 무기 공장, 사할린, 동남아 남양군도로 끌려가는 조선인의 수가 이미 백만 명에 이르고 있다.’ 언젠가 치호 형이 번역해 준 독일 신문이 퍼뜩 떠올랐다. 그러나 분명히 독일이 항복했다고 피셔 수사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는데, 일본군은 있을지도 모를 소련군의 남침을 대비하느라 북방으로 몰려가고 있다고 들었는데, 학도병을 태우고 다니는 그 트럭 안에서 소녀들은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사라진 조선의 소녀들이 유미옥 아녜스와 나란히 동길의 마음을 차지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에 차라리 체념이 쉬웠던 눈동자는 사탕같이 달콤하고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동자와 너무나 달라, 마치 다른 나라 사람인 것 같이 느껴졌다.


순간, 아버지를 찾아 원산으로 오던 길에서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느꼈던 소외감이 되살아났다. 그런 여자들의 얼굴은 어릴 적 보았던 엄마와도 무척 닮아, 태주의 밥 한 그릇 자존심처럼 동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하늘 높이 던져졌던 들뜬 기분마저 땅으로 처박히는 공처럼 갑작스러운 모독을 느끼게 하는 슬픔. 자신의 본성에 뿌리 깊이 내재된 무력감이 다시 치고 올라오려고 하고 있어, 동길은 수련을 통해 배운 대로 스스로를 다스렸다.   

     

 모든 것이 금세 스쳐 지나간다. 극과 극의 눈동자와 만났던 순간은 동길의 인생에 단 몇 분도 되지 않는다. 사람은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다.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기 위해서, 동길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선하심에 맡기기로 했다. 하느님이 믿으신 인간이니까, 동길도 모든 인간 안에 들어 있는 품위를 믿는 쪽을 택한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이 소녀들을 지켜 주기를.        

                                                                                 


     

“ 어쩐 일이니?”    


동해문화 집의 대문을 열고 나온 것은 행랑 이모가 아니라 새엄마였다. 키가 많이 자란 덕에 동길은 몇 계단 위에 서 있는 새엄마를 엇비슷한 눈으로 마주 볼 수 있었다. 어두웠다. 검은 비로드에 진주 목걸이를 한 차림이 아닌데도. 화사한 꽃무늬에 몸을 따라 흐르는 옷감의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도, 사람이 어두웠다. 매끈한 피부와 반짝이는 입술은 여전했으나, 퀭한 눈동자는 아파 보였고, 목소리에도 안개의 스산함이 묻어났다.     


“사과드리려고 왔습니다.”     


동길의 말에, 새엄마의 눈에 잠깐 고양이 같은 호기심이 반짝였다. 그러나 이내 꺼져 버리는 부싯돌 빛이었던 듯, 생기가 나간 채 비아냥대었다.     


“아비나 자식이나.”     


그녀가 문을 열어 둔 채로 들어가 버렸기에, 동길은 잠시 서 있다가 동해 문화 집으로 발을 넣었다.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5월 볕이 무색하게 마당의 식물들이 축 늘어져 있었다. 라일락은 피기도 전에 병이 들어 잎이 누랬고, 기억 속 오밀조밀 들어차 있던 채송화 화분엔 구덩이만 파진 흙이 있을 뿐이었다.     

    

먼지 한 톨 앉지 못하게 닦아낸 창틀과 거실 마루에도 불구하고 이 집 특유의 막막한 공기는 여전했다. 다시 동해 문화 집에 들어갈 것을 예상했을 때, 동길의 마음속엔 그 ‘객관적 아름다움’에 유혹을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실낱처럼 남아 있었다. 신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수련 초기에, 교리에 나오는 ‘마귀’의 존재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새엄마를 떠 올렸던 것이 미안했던 터라, 모든 존재가 하느님의 자비하심 아래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 지금의 마음가짐이라면, 그 속엔 아무것도 없다고 단죄하고 나왔던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긍정할 것 같은 걱정을 조금은 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호하고 퇴폐적인 분위기의 집이라는 동길의 기억과 달리 동해문화 집은 쓸쓸하고 병약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가슴에 알싸한 통증이 밀려오는 순간.    


“오빠.”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순이었다.

제 오빠가 왔다는 말에 급히 2층 계단에서 내려오던 동순이가 눈앞에 선 오빠를 보자, 꿈인 듯 멈춰 버렸다.


키가 많이 자랐다. 팔다리는 어린애라 약했지만, 보육원에서 보는 아이들에 비해 키가 큰 편이었다.  반듯한 이마가 보이게 머리띠를 한 채 등까지 길어진 머리카락을 늘어트리고, 인형이나 입을 것 같은 치마를 입고 있는 동순이의 겉모습은 새엄마의 취향대로 꾸며진 것이다. 그러나 총명함을 잃지 않은 눈동자는 여전했고, 귀엽고 건강하게 살이 붙은 볼은 고맙기까지 했다.     


막상 나타난 오빠 앞에서 놀란 가슴을 할딱대며 쳐다보기만 하는 동생을, 동길이 뛰어가 안아 올렸다. 너무 많이 걱정했지만, 기도 말고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던 미안함이 북받쳐 올랐다. 동시에 고마웠다. 새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이 일 정도로 동순이는 무탈히 잘 자란 어린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건강하니? 밥은 잘 먹고?”

“응.”    


감정에 목이 막힌 오빠가 간신히 꺼낸 말에 동생은 빨리도 대답했다. 살붙이가 다시 만나는데 세월의 어색함은 있을 수 없었다. 어린 살내음을 여전히 풍기는 동순이를 다시 내려놓고, 마주 보면 절로 드는 미소를 막지 못한 채 물었다.     


“아버지는?”     


동순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든지 말든지.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새엄마 덕에 동길은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마저도 간단한 인사치레처럼 하고 만 채, 동순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보육원 아이들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호사스러운 개인 침대에 비싼 학용품과 장롱까지 갖춘 동순이의 방은 말 그대로 공주님 방이었다. 이런 방을 가진 아이가 과연 이 나라에 몇 명이나 될까? 쏟아부어진 이 과도한 치장과 보살핌의 주인공이 내 동생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불편했고, 다른 의미에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가 또... 떠났구나.”     


아버지가 또.

제 멋대로 집을 떠난 지 1년이라니. 책임감이라곤 없는 그 사람이. 의지할 오빠도 없는 동순이를 제 기분에 따라 팽개치고 가버린 순간은 연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타인의 가슴을 부수고 가는 것이 습관인 남자가 내 아버지란 사실에 심장이 방망이질 쳤다.         


동길의 얼굴에 올라온 붉은 열기에. 동순이가 간단히 모든 상황을 다시 말해주었다. 어느 날 밤. 아버지는 새엄마와 다툰 후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고, 며칠을 방에서 꿈쩍도 않던 새엄마는 행랑 이모까지 내보내고 동순이를 친 자식처럼 돌보고 있다고. 이제는 밤에 노래를 부르거나, 술을 마시는 손님들도 오지 않는다고.  

      

일찍 철이 든 동생이 오빠의 걱정을 덜어주려고 꺼낸 그 말에. 동길은 오히려 걱정부터 되었다.


새엄마가 동순이 하나만을 지극히 아끼는 것이 남편을 잃어버린 상실감이 전이된 병적인 집착이 아닌 가해서다. 그녀는 첫인상대로 건강하지 않은 영혼의 상태인 것이 분명하다. 동길은 동순의 손을 잡고 나지막이 말을 꺼냈다.   

  

“ 오빠하고 같이 가자.”

“ 어디로?”

“ 오빠가 사는 데로.”

“ 거기가 어딘데?”

“ 성 데레사의 집.”    


단풍잎 같이 작은 동순이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우리가 같이 사는 거야?”    

 

바라고 바라던 희망이 동순이의 눈동자에 담겨 있었다.

그 눈에 대고 막상 ‘아니.’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같이 사는 건 아닌데, 조금 더 자주 볼 수 있고, 너는 다른 어린이들과 함께 단체 생활을 할 건데, 개인 침대도 없고, 맛있는 반찬도, 예쁜 옷도 없어. 겨울엔 춥기도 하겠지만 누구보다 천사 같은 수녀님들이 너를 돌봐 줄 거야.’     

라는 말을 한다면 동순이가 이해할 수 있을까? 흔들리는 오빠의 눈빛을 먼저 감지한 것은 어린 동생이었다.     


“우리 셋이 같이 사는 거 아니야?”    


셋이라면. 새엄마였다.     


“ 아니야. 우리 둘만 가는 거야.”

“ 왜? ”

“ 새엄마는 오빠가 사는 곳에선 절대 못 살아.”    

 

동순이의 작은 손이 동길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또 헤어지는 건 싫어.”     


일방적인 헤어짐에 몇 번이고 상처를 받아 낸 어린 가슴이 말했다. 동길은 그런 동생이 안쓰러워서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이런 식으로 일이 돌아갈 것은 미처 생각 못했다. 동순이는 제 엄마를 잃고, 제 오빠가 떠나고, 제 아버지가 떠난 후, 새엄마를 의지하고 살았던 것이다. 둘이서 이미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가족이 되어있는데, 다시 또 떠나라고 하니 두려운 것이다. 속수무책으로 헤어짐을 당하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를 이미 알고 있는 아이는, 결코 버려진 사람을 다시 버리는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동순이 하나 들어 올 자리에 새엄마고 함께 오는 일이  ‘성 데레사의 집’에서 허락이 될까?


“오빠가... 물어보고 다시 올게.”      

   

일은 점점 커졌다. 거실 소파에 삐뚜름히 앉아 있는 새엄마에게 자신이 온 목적을 말했을 때,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눈에서는 소리 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는데,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흐르는 그 눈물은 동길의 가슴에 극심한 죄책감을 일으키게 했다. 위선과 치장으로 제 행복을 꾸몄으나, 결국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결과만을 손에 쥔 허무함. 이렇게나 애를 써도 누구에게도 진짜 사랑받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서러움이 공기를 타고 전해져 왔다. 하지만, 그 인생이 불쌍하다고 해서 동순이도 병이 들게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태로 수도원에 온 가족이 신세를 지는 건 불가능 한 일일 것 같았다. 곪아 터진 상처를 베어내는 심정으로 말을 꺼냈다.    


“동순이, 데리고 가겠습니다.”     


하고 일어서는데, 2층 계단 난간에서 숨죽이며 보던 동순이가 뛰쳐나왔다.     


“엄마. 울지 마.”     


동순이는 그녀에게 가서 안겼다. 그 조그만 것이 손에 잡히자, 결핍을 숨기려고 태연한 척하던 그녀의 팔이 순식간에 동순이를 휘감았다. 엉엉 울어대는 새엄마의 서러움에 동순이도 같이 울었다. 그리곤 되돌아 동길을 보았다. 앙 터진 설움이 동길을 향했다.     


   

“ 오빠 가.

  오빠가 없어도, 아버지가 없어도!

  우리는 잘 살고 있어.

  오빠 가!”      


  

 



수녀님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둘러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는 마루에서 인기척을 가장 먼저 느낀 푸룩투오사 수녀님이 돌아보았다. 암담한 동길의 모습에 수녀님이 바느질을 멈추었고, 이어 다른 수녀님들도 동길을 보았다. 일이 잘 안된 것을 알아챈 마틸다 원장 수녀님이 일어나, 동길을 데리고 원장실로 갔다.    



“힘들었지?”    


그 말을 하시곤, 보리차를 주시며 동길이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셨다.  

  

“ 동순이한테, 새엄마는 이미 엄마가 되었어요.”  

  

동길의 말에 수녀님이 낮은 숨을 내쉬었다.  

  

“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않겠니?

  엄마가 없는 아이들도 얼마나 많은데,  새어머니께서 그간 고생이 많으셨을...


“그게 아니라니까요!”     


원장수녀님의 말을 끊고, 동길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수녀님은 잠시 놀랐으나, 이내 무슨 사정이 있는 거라고 느끼셨는지, 동길의 어깨를 도닥여 주었다. 그 손길에 동길은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일어섰다.    

 

“.... 심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동길은 수녀님께 미안한 인사를 하고 원장실을 나갔다.



동생을 저 상태로 두면 안 된다는 직감이 들면서도,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었다. 동순이가 새엄마와 모녀의 관계로 크게 된다면, 그녀를 닮으며 자랄 것이 뻔했다. 새엄마는 사람을 어둠 속으로 빨아들이는 힘이 크다. 동순이가 엄마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진짜 사랑을 몰라서다. 그녀는 자기 비애를 어린것에게 투사시키고, 소유물로 잡아두기 위해 온갖 치장을 해주며 동시에 눈물까지 흘릴 수 있는 여자다. 미로처럼 복잡하고 어두운 그 영혼에 대해 수녀님들이 어떤 대적을 할 수 있을까? 큰 잘못이라곤 해 본적 없이, 오로지 하느님만을 사랑하며 그분 뜻대로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삶의 행복인 분들이 그렇게나 혼탁한 영혼을 이해할 수 있느냔 말이다. 수도를 하시는 분들이 속세의 가정사에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아니니, 더 이상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도 않았다.  동생을 저 상태로 둘 수 없기에 이제는 동길이 뭐라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속은 끓는데, 막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동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감실 앞에 꿇어앉아, 성체 앞에 자신을 내어 놓고 눈을 감으니 오늘 하루 일어난 모든 일들이 프리즘을 통과한 햇빛처럼 다양하게 펼쳐졌다. 하루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여성과 마주쳤다. 누군가의 딸로 태어났고, 언젠가는 누군가의 어머니가 될 여성들을 구운몽의 꿈처럼 보고 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하느님의 배려일까? 시험일까? 세속과의 완전한 인연을 끊는 삭발례를 앞두고, 못내 끊지 못하는 동생에 대한 걱정을 놓으라는 뜻일까? 아니면, 속세로 돌아가란 뜻일까?


몇 시간을 앉아서 보채 봐도 하느님은 말이 없다.







(사진 출처: 분도 출판사 덕원의 순교자들)

이전 12화 바다 빛 당신 11. 겨울의 온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