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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아내가 집안을 일으킨 순간을 떠올리며

쑥스럽지만 소중했던 여정. 그때의 떨림이 오늘의 나를 지탱합니다

by Pelex

20여 년 전, 제 인생은 큰 파도 속에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마음으로도 버거운 시기였지요.
저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앞날은 안개처럼 뿌옇게만 보였습니다.

그때 아내가 나섰습니다.
하나의 기회를 붙들고, 믿기 어려울 만큼 간절하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단 10개월 만에 눈부신 성취를 이루어냈습니다.
저는 그 곁에서 그저 지켜보며 배우고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20여 년 전, 제 인생에서 가장 다사다난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지인의 부도가 보증의 여파로 집안 경제가 한순간에 휘청거렸고,

딸아이의 병원비와 얽힌 문제까지 겹쳐 숨이 막히던 때였습니다.

저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앞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아내가 나섰습니다. 아내는 하나의 기회를 붙들고,

말 그대로 죽을힘을 다해 달려갔습니다.

놀랍게도 불과 10개월 만에 최고 직급에 오르는 성취를 이루어냈습니다.

저는 그 곁에서 그저 따라가며, 아내의 기세와 뚝심을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참으로 무겁고 답답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습니다.
하루하루를 온몸으로 살아냈고, 작은 성과에도 눈물로 기뻐했습니다.
때론 두려움과 불안을 감추면서도, 마음속 깊은 간절함으로 나아갔습니다.
아내는 “될 거야.”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말이 우리 집을 버티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내 덕분에 저는 평생 겪기 어려운 호화로운 경험도 했습니다.

몇 년 사이 열 차례가 넘는 해외여행, 비즈니스석 비행기, 일류 호텔,

잊지 못할 가든파티와 골프 라운딩까지…

지금의 저로서는 상상도 내지 못할 일들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단순히 ‘호화로움’을 누린 것이 아니라,

벼랑 끝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맛본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게 남은 것은 아내의 힘, 그리고 우리가 함께 버텨낸 시간입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당시의 글.

그 편지를 다시 읽습니다.

그 시절, 저는 친구인 e형에게, 이 길을 함께 걸어가 보자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좋은 것을 나누고 싶었고, 서로의 삶이 조금 더 풍요롭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마음은 단순한 권유가 아니라

믿고 있던 희망을 함께 나누고 싶었던 간절함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이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경제도 흔들릴 때도 있었고, 마음이 불안정할 때도 많았습니다.

삶은 성공과 실패의 도표로만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 시절, 우리는 흔들렸지만 쓰러지지 않았고, 절망했지만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때는 미숙하고 부끄러웠지만, 결국 우리는 버텼습니다.
삶은 성공과 실패의 기록이 아니라,

그때그때를 어떻게 살아냈는가의 이야기라는 걸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때의 가장 선명한 기억 중 하나는, 올림픽 체조경기장의 단상 위에서였습니다.
정장을 입은 우리 부부가 수많은 회원들의 환호 속에 손을 흔들던 순간,
빛나는 조명 아래에서 나는 아내의 눈빛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겠다.’

그리고 저는 그 곁을 지키며 배웠습니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믿는 길 위에서 빛을 낸다는 것을요.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서툴고, 조금은 무모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습니다.

이 편지를 다시 꺼내 보며,
저는 그때의 열정과 간절함을 오늘의 삶 속에서도 잃지 않고 싶습니다.
삶이란 결국 무엇을 이루었는가 보다, 어떻게 살아냈는가로 남는 것이니까요.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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