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발령 에피소드(3)
드디어 첫 출근 날이 되었다.
관사를 나서 학교를 가는 순간.
이상하게 첫 출근하던 순간을 떠올리면
바닥에 깔려있는 블록들이 생각이 난다.
땅을 보고 학교를 갔었나 보다.
처음으로 가족과 친구의 곁에서 벗어나
강과 산으로 둘러싸인 2층 짜리 작은 학교에 출근하는
24살, 만으로는 22살이었던 나.
그때의 떨림과 걱정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 떨림과 걱정 속에 설렘도 움텄다.
나는 앞으로 이 학교에서 어떤 경험들을 하게 될까?
어떤 시간들을 마주하게 될까?
.
.
설레는 첫날이 시작되었다.
나는 당시 3, 4, 5, 6학년 과학 전담을 맡았고,
9월 발령이라 중간에 비중 있는 업무를 맡기 어려워
선생님들께서 배려해 주셔서 큰 업무대신 5학년 수업을 더 하기로 했었다.
첫 수업은 7명의 5학년 수업이었다.
자기소개 ppt를 띄우며 아이들에게 박노을 선생님을 소개했다.
이야기하면서 계속
‘낯설다, 새롭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앉은 7명이 5학년의 전부라고?
전 시간 강사 때 맡았던 학급 학생 수가 25명 정도였는데…
내가 교사가 아니라 학원 강사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드는 또 다른 생각.
와, 아이들이 너무 예쁘다.
분명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탐색전인 시기라 그런지 너무 조용하고 예쁘게 내 수업을 듣더라.
문제는 너무 조용해서 질문에 대답도 안 하긴 했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동그란, 토끼 같은 두 눈들.
얘네랑 이듬해에 호주를 가고, 함께 춤을 추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위잉—
그렇게 수업을 하고 과학실에 혼자 앉아 있는데,
말벌이 들어왔다.
청주에서도 학교에서 말벌을 많이 보긴 했다.
그런데 이제 내가 잡지 않아도 되는…
하지만 나는 이제 교사고,
말벌을 쫓아내거나 잡아야 학생들이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병아리 신규와 말벌과의 사투가 시작됐다.
과학실 어디 구석에 있는 빗자루를 하나 움켜잡고
천장 주위를 8자로 날던 말벌과 조우했다.
‘덤벼라’
그렇게 눈썹에 힘을 잔뜩 주고
말벌을 노려보며 빗자루를 몇 번 휘두르다가
조용히 교무실로 갔다.
“실무사님, 저.. 사포 하나가 필요하고요,
과학실에 말벌이 들어왔어요…….”
사포와 함께 자연스럽게 알린 말벌의 존재…
그 당당하던 눈썹은 어디로 가고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쥐구멍에 들어갈 목소리로
앞문에 달라붙어서 작게 말했다.
실무사님은 씩 웃으시더니
시설 주무관님을 부르셨다.
시설 주무관님은 행정실 빗자루를 들고
과학실로 나와 함께 향하셨다.
‘빗자루로 안되던데… 못 잡으실 텐데…’
라는 생각도 잠시.
과학실에 도착하니
말벌이 없어졌다!
순식간에 양치기 소녀가 된 신규 병아리 교사…
당황해하는 나를 보고 따뜻하게 웃으시더니
“신규 선생님 오신다고 말벌이 인사를 왔나 보네요.”
주무관님의 따뜻한 말씀에 출근길에 가져온 걱정과 불안이 사라졌다.
다행히 말벌은 다시 등장하였고,
주무관님은 청주 촌사람인 내 걱정이 무색하게
능숙하게 말벌을 제압하셨다.
그리고 따뜻하게 웃으시며
“또 불편하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편하게 말씀하세요.”
말씀하시고 나가셨다.
말벌과 함께한
따뜻한 햇살 같은 기억.
그게 내 단양 첫 출근의 기억이었다.
.
.
그렇게 관사로,
40초 만에 퇴근.
첫 퇴근 후 롱패딩을 입고
앉아서 잠이 들었다는 친구의 말에 웃음이 났었는데,
나는 첫 퇴근 후
저녁을 먹다가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
그렇게 밥을 다 먹고 치운 뒤
침대에서 쉬고 있는데
벽에 까만 낙서가 있었다.
‘오, 멋지군!’
하고 휴대폰을 하고
다시 그 자리를 불현듯 봤는데
낙서가 이동해 있었다.
’ 오.. 멋지군…?‘
이 아니고 돈벌레였다.
그렇게 나의 생존 싸움이 시작되었다.
평소 나는 방에서 벌레를 보면
->오빠나 아빠를 부른다.
->방에 들어오게 한 후 방문을 닫는다.
->문 밖에서 다 잡아야 나올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기다린다.
였는데… 이제 그 오빠나 아빠가 집에 없다.
그럼 내가 잡아야 하는데
잡을 수 있나?
그런데 이제 잡지 않으면
난 저 친구와 하룻밤을 함께 보내야 한다.
그건 진짜 용납되지 않았다.
그렇게 불현듯 스쳐간 한 가지 기억.
돌봄 선생님께서 이 지역은 지네가 많이 나온다고,
관사에서도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만약 나오면 청소기로 빨아들이고
변기통에 버리면 된다고 하셨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실습을 하게 될 줄 몰랐는데…
어쨌든 나는 청소기를 집어 들었다.
그렇게 오늘로써
곤충과의 두 번째 조우.
아침과 비슷하게
치켜 올라간 눈썹
그리고 아침보다는 진화한 도구인 청소기.
-_^
-_ㅠ
그런데 진짜 미칠 것 같았다.
위잉- 청소기는 돌아가는데
청소기로 그 친구를 건들면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져
내 발로 기어 올 것 같았다.
30분을 그렇게 울먹이며 청소기만 움켜쥐었다.
전력질주할 때 심박수가 170이라고 했던가?
그때 애플워치로 본 심박수가 150이었다.
출근할 때 보다도,
밥을 혼자 먹을 때 보다도,
넓은 관사에서 혼자 잠을 청할 때 보다도,
단양에 온 이래로
가장 ‘혼자’ 임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이십여분을 더 고민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용기를 내
청소기를 갖다 대었고
역시나 그 친구는 바닥에 떨어졌다
너무 예상한 시나리오임에도
진짜 소스라치게 깜짝 놀란 나는
청소기를 바닥에 내리쳐
돈벌레가 약간 분리… 된 상태로
빨아들이는 데에 성공했고
그렇게 변기로 보내주며
안녕을 고했다.
+단양살이 4년 차
이제 말벌 세 마리는 가뿐하게 잡고,
돈벌레는 굳이 청소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냥 때려잡는다.
작년 12월이었던가?
교무실에서 회의를 시작하려고 다들 모여 있는데
교무실 바닥에 돈벌레가 있었다.
그리고 그걸 나만 본 것 같았다.
선생님들께 알릴 생각도 없었는지
혼잣말로
“어, 돈벌레다…” 중얼거리다
홀린 듯 일어나
발로 꽝 밟아서
저 먼 세상으로 보내주었다(잘 가고 미안했어..)
모든 건 3초 만에 일어났다
그렇게 신발 바닥에 그 친구의 일부가 묻어있는 듯하여
한 발 뛰기로 교무실 휴지곽 가지러 가고 있는데
그제야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의 웃음소리와 웅성웅성 소리…
발바닥을 닦으며 뒤를 돌았는데
선생님들이
(゜ロ゜; ;(゜ロ゜;
이렇게 나를 보고 계셨다.
대체 관사를 살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단양 살면서 얼마나 강해진 거냐,
벌레도 이제 잘 잡는 거냐… 등등
첫 출근 때
말벌 못 잡던 나를 도와주셨던 실무사님이
“노을쌤… 살려주지…”라며
아련하게 말씀하셨다.
근데… 살려주는 건 선택지에 없었는데..
살려줄 수도 있는 거였구나?
약간의 반성을 하는 시간이었다.
결론:
사람은 환경에 다 적응하고
혼자일 때 강해집니다
이번 주에 혼자임을 느꼈던 여러분
첫 출근, 첫 독립을 응원해요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