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선물

신규발령 에피소드 (마지막)

by 박노을




외로움 [명사]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







당신은 외로움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그렇듯,

나는 자라오면서

언제나 마음 한 켠이 참 외롭고 쓸쓸했던 것 같다.




나는 늘 원치 않았지만

내 문제를 오롯이 홀로 해결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았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문제까지도 대신 해결해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그래서 크면 클수록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일이 어려웠다.


그저, 내 짐을 들어주는 것은 바라지도 않으니

짐을 더 주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사실 이제는 웃기게도 누군가 짐이 있는데도

내게 주지 않으면 불안하게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였어도

외로움은 나에게 그렇게 먼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단양에 발령이 나 버렸다.



첫 발령 당시엔 당연히 그 누구도 내 곁에 없었다.

비로소 물리적으로도 마주하는 외로움이었다.




산과 강, 끝없는 자연으로 둘러싸인 곳이라 그런지,

속세와 단절되어있어 보이는 이곳에서 믿을 건

24살, 만으로 22살이었던 내 몸 하나.

그것밖에 없었다.






물론 돈벌레 하나도 잡기 어려워 씨름을 하던,

정말 작은 업무 하나에도 벌벌 떨던,

동료 선생님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도 용기가 없어 힘들어하던

최약체 병아리의 몸이었기에

처음에는 나 자신도 믿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 몸 하나조차 믿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다.




당장 돈벌레와 하룻밤을 함께할 수도,

이미 많은 업무들을 소화하시는 동료 선생님들께 작은 일 하나로 피해를 줄 수도,

극강의 고독 속에서 홀로 눈물로 매일 밤을 지새울 수도 있었다.






생각만 해도 괴로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을 믿기 시작했다.






“고깟 벌레 나도 잡을 수 있어.”


“처음이라 당연히 어렵지. 그런데 나 이 업무 해낼 수 있어.”


“다가갔다가 거절당하면 어쩌지? 나를 불편해할지도 몰라. 그래서 용기가 안나. 그런데 솔직한 마음으로 나는 그 사람과 친해지고 싶어. 어쩌면 그도 그럴지도 몰라. 그래, 난 그 사람과 친해질 수 있어.”






시작은 외로움이었고,

외로움이 다가왔을 때의 마음은 괴로움이었고,

괴로움을 피할 수 없어 느끼게 된 마음은 믿음이었다.



믿음은 항상 긍정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시작된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은

점점 형태가 갖춰지는 것 같았다.






지난 글에서 알 수 있듯

나는 이제 말벌 3마리는 거뜬히 잡고

지난 글에서는 쓰지 않았지만

무시무시한 지네도 잘 잡게 되었다.


한 번 어찌저찌 잡아보니,

두 번째에는 자신감이 생겼고

세 번째부터는 특별한 일이 아니더라.


무서웠던 벌레는

이제 더 이상 내 인생에서 무서운 일이 되지 않았다.

난 무서움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업무…

지난해 3월이었던가?

처음 맡는 담임, 학기 초 상담에, 교육과정 세팅에, 수업에

처음 만나는 작은 학교의 무시무시한 업무들로 인해 패닉에 휩싸인 나는

아이들을 전담교실로 보내고


뒤돌자마자 의도치 않게 눈물 수도꼭지가 열려

교실에서 펑펑 울다가

학폭실태조사 6학년 차례라고 전달하러 오신 선생님께 대성통곡을 들킨 날도 있었다.




신기한 게

그게 아직도 2년밖에 안된 일이라는 건데,

난 이제 업무가 두렵지 않다.


물론 한 번 해본 업무라 파악이 된 것도 있겠지만

올해 새롭게 하는 업무들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여기서 변한 건, 내 마음가짐이다.

나는 내 끈기를 믿는다.

업무는 결국 공부와도 같은 것이라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파악할 수 있고

시간이 조금 걸려도 마침내 끝낼 수 있다.


나는 끈기가 있는 사람이기에

이제는 업무도 두렵지 않다.






그리고 관계에 대한 용기.

처음에는 업무에 대한 질문이 아니고서는

선생님들께 다가가는 일이 너무 어려웠다.

사는 곳도 다르고 연령도 천차만별인 선생님들.

내가 이렇게까지 낯을 가리고 용기가 없던 사람이었다고? 그 사실을 마주하는 것이 어찌나 괴롭던지.


4시 20분에 한 번 가서 인사드려야지.

22분이 되었으니 30분에 가야지.

그렇게 4시 40분에 메신저에 선생님들 상태가 엑스로 변하는 장면을 확인하고

과학실에서 절망에 가득 찬 머리를 쥐어뜯던 기억이 생생하다.




생각해 보면 그 전의 나는

관계에 있어 항상 수동적이었다.

그간 감사하게도 내가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 먼저 다가와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회는 달랐다.

사회에서는 관계에 대한 욕심이 있는 쪽이

큰 노력을 해야 관계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노력을 안 하면 내 욕심만큼 관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게 외로웠던 나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긴 고민 끝에 아무런 매개 없이 관계를 만드는 것이

나에게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베이킹이었다.


마들렌은 64개 구워서 교무실에 가져다 드려

교감선생님이 학교 그만두고 빵집 차리는 거 아니냐고 하시기도 하고,

드릴 생각에 신나서 휘낭시에, 브라우니, 쿠키를 굽다가

오븐 앞에서 졸았던 기억들이 가득하다.


그렇게 빵이라는 매개체로 장벽을 낮추면서

직장동료가 아닌 사람으로서 다가가려고 하니

용기가 찾아왔던 것 같다.




올해로 3년 차인 지금,

감사하게도 정말 인복 많은 단양생활을 하고 있다.

학교를 떠나신 선생님들께도 자주 연락이 오고,

감사한 기회로 독서교육 컨설팅을 제안해 주신 선생님,

내게 꼭 필요한 자격증과 연수를 추천해 주시는 선생님,

타지를 가셔도 마지막 6학년 업무를 챙겨주시려 전화해 주시는 선생님,

본인의 몫이 이미 너무 많은데도 내 업무를 가져가주시는 선생님들…


뭐 다 말할 수도 없다.


진짜로 지금까지의 생애에 최고의 인복을 경험 중인 것 같다.


중요한 건, 처음에 나도 용기가 없어 과학실에서 머리를 쥐어뜯었다는 거다.

진심은 용기를 만들고,

내게 찾아온 귀인들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밝다, 긍정적이다, 에너지가 넘친다 등등의

피드백을 정말 많이 받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러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아닌데

왜 자연스럽게 이런 피드백을 받고 있지?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그 핵심에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만들어낸 것은 ‘외로움’이었다.




신규 교사가 시골 6학급에 발령이 나면

가장 걱정이 되는 부분은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외로움일 거다.



하지만 외로움은

내게 믿음을 선물했고

믿음이라는 선물상자를 여니

용기, 끈기, 인복, 긍정 등 다양한 선물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니 외로움을

두려워하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인생에서 쉽게 찾아오지 않는

혼자의 시간을 기쁘게 맞이해 보고

믿음을 통해

어떤 선물들이 나올지 기대하는 시간들을 보내길!


:-)




저 멀리

단양 6 학급에 있는

3년 차 교사와 함께 말이다.


(신규발령 에피소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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