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고 노랗고 흰 고운 가루로 변한 곡물들은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물기를 머금으며 섞여 들었고,
적당한 점도가 되면 이것저것 영양제도 톡톡 뿌려 휘 저어 주면 완성이었다.
일단 만들어진 유동식은 정말 금방 상했다.
그리고 원래 조금씩 자주 먹기도 했고 워낙 입맛이 까다로운 코링이었기에 계속해서 그때그때 냉장고에서 미리 갈아둔 가루를 꺼내 농도를 맞춰 여러 번 만들어줘야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맘마'를 코링이 전용 작은 접시에 담아 베란다 앞 온실 옆 코링이 지정석에 놓으면 무섭게 어디서든 쪼르르 달려와 찹찹소리를 내며 잘 먹는 모습을 보면 뿌듯함에 귀찮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나마도 턱이 많이 부어오르기 시작하고서는 접시에 담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고,
그때부터는 정말 주사기로 먹고, 주사기로 입을 헹구는 주사기(期)에 접어들게 되었다.
제대로 먹지를 못하니 아무리 잘 뛰어놀고 돌아다니던 코링이도 급격히 기력이 쇠하기 시작했고,
높은 곳을 다니기엔 점프력도 시원치 못하고, 흔들흔들 가끔 중심도 잡지 못 해 보기에도 불안한 마음에
꼭대기에 올라가 있던 코링이 전용 담요, 텐트, 스크래처 등등 장난감과 안식처를 모두 내려 주었다.
그랬더니 오히려 계속해서 높은 곳을 올라가고 싶어 하던 청개구리 다람쥐..
내려놓으면 올라가고, 또 내려놓으면 올라가고..
결국 바닥에 쿠션과 담요를 두툼하게 깔아 두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그리고 또,
제대로 먹지 못하게 되면서 알곡에 대해 엄청난 집착을 보였는데,
건강할 때 먹던 알곡통, 철제로 만들어져 들어 올리거나 움직이면 촤라락 소리가 나던 알곡 통을 늘 케이지 옆에 두었는데, 그 알곡 통을 미친 듯이 긁으며 열어달라고 성화였다.
그 짠한 모습을 보다 못해 남편이 원래 먹던 먹이통에 알곡을 조금 부어 줬는데,
입에 머금지도 못하는 코링이가 그 알곡에 머리를 파묻고 어찌나 애절하게 부비는지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매일아침 먹이통에 알곡을 쏟아부어 주면 신통방통하게도 좋아하는 흰 들깨와 귀리 먼저 진공청소기처럼 흡입하고, 그다음에 찬찬히 옥수수 씨눈만 뜯어먹고, 겉보리를 먹고, 메밀과 수수를 먹고, 나머지 율무와 홍화씨 등등은 처량하게 남겨져있다가 심심풀이 땅콩처럼 나중에야 하나씩 먹어보던,
그 사랑스러운 소리와 움직임들이 가득하던 평범하디 평범한 시간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일상이 더 이상 일상이 아니게 되었을 때의 상실감이라니..
그렇게 알곡에 얼굴을 파묻은 코링이 옆쪽 구석에 산에 갔다가 주워 온 도토리가 보였다.
단단한 아랫니로 피잣과 도토리, 밤 등은 뚝 똑 딱 딱!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껍질을 까서 행복한 얼굴로 알맹이를 음미하던 코링이었는데 나이가 들고 이빨이 약해졌는지 어느 순간부터단단하고 질긴껍질을 까지 못하게 되어 피잣 하나를 하루 종일 갉아대고 있길래 이후로는 단단한 건 껍질을 쪼개서 주거나 반 잘라 놓아주니 좀 먹다 말아버리곤 했더랬다.
그래도 밤이나 도토리에서 간혹 나오던 통통하고 하얀 애벌레를 코링이가 너무 좋아해서 구멍 난 밤과 도토리는 따로 모아뒀다가 애벌레가 나오면 주곤 했기에 산행을 할 때는 발 밑을 살피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그즈음 뒷산에 올랐다가 유독 반질반질 동글게 예쁘던 도토리가 눈에 띄어 코링이 생각이 나서 갖고 놀다가 벌레 나오면 먹으라고 먹이통 구석에 놔뒀었는데, 그게 여즉 저기 있었다. 그걸 보니 또 눈물이 났다.
정말 오래간만에 도토리가 먹고 싶어서 힘껏 깨물어보다가 턱을 다쳤던 건 아닐까, 저기 도토리 위쪽에 찌그러진 자국이 처음부터 있었던 건가, 저게 혹시라도 코링이 이빨 자국일까,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생각대로 안 되는 몸이 코링이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답도 나지 않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인간은 또 울었다.
그렇게 먹이통에서 한참을 분노인지 서러움인지 아니면 그저 본능이었을지 얼굴을 파묻고 앞발로 알곡을 마구 파헤쳐 바닥에 뿌리며 차르륵 차르륵 소리를 내던 코링이는 인간이 내미는 손을 타고 앉아서 주사기에 담긴 유동식을 허겁지겁 받아먹고 또 주사기에서 뿜어지는 식염수로 입을 헹구고는 인간의 어깨 위에서 동그랗게 몸을 말고 꾸벅꾸벅 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