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는 나름의 별칭이 있다. 이름에서, 외형에서, 아님 행동에서 따온다. 그래서 어릴 적 별칭들이 만돌이, 뺑돌이, 또순이, 너구리, 독사, 까시····· 뭐 그런 것들이 아니겠는가. 약간은 놀림감이 되어야 재미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그래도 조금은 폼 나는 별칭을 갖고 싶어 진다. 그간 즐겨 써먹었던 ‘德山(덕산)’도 그중 하나다. 부산 범어사 주지이셨던 정여스님의 선물이다. “덕이 부족하니 살면서 산처럼 쌓아 올리라”는 뜻이 아니겠나. 좋은 별호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은근히 다른 별호에도 욕심이 생겼다. ‘澤山(택산)’은 어떤가? 고향 동내 이름이 ‘山澤(산택)’이니 좌우 동형이라 나쁘지 않다. 외형상 그렇고, 사실은 “珠藏澤自媚 玉薀山含輝(주장택자미 옥온산함휘)”에서 ‘澤과 山’을 따왔다.
1983년도 고속도로 건설 당시 남원에서 얻은 글이다. 예서라 글씨가 고요하고 아름답다. 집안에 걸어놓고 들락거리며 흥얼흥얼 거리기에 딱 좋다. 수년 전에 울산대학교 중문학과 박삼수 교수님께 의뢰하여 출처도 알아냈다. 중국 명나라 ‘설원’의 글이란다.
“진주를 품은 연못은 절로 아름다워지고, 벽옥이 묻힌 산은 눈부신 빛을 머금고 있다.”는 뜻이다. 인격 함양의 중요성을 역설한 글이라 한다. 글의 힘이 집안에 가득했으면 좋겠다.
‘澤山(택산)’을 택한 진짜 의미는 다른데 있다. 아들 둘 중 한 놈은 ‘珠藏澤(진주를 품은 연못)’이 되고 다른 한 놈은 ‘玉薀山(벽옥이 묻힌 산)’이 되었으면 해서 그렇다. 진주를 품은 연못은 벌써 스스로 빛을 발하건만, 벽옥이 묻힌 산은 아직도 흙을 벗겨내는 과정에 있다.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흙을 벗긴 옥산이 얼마나 크고 연마한 벽옥이 얼마나 눈부실지 그 누가 알겠는가!
그리고 ‘澤山(택산)’은 산 위에 못이 있는 형상이니 백두산 ‘천지’처럼 풍요롭고 신비한 느낌이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