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씩 자기 가치를 높이는 ‘훌륭한 사람’이 있고 이에 비례하여 10%씩 연봉을 올려주는 ‘좋은 기업’이 있다고 치자. 30세에 입사하여 연봉 3천만 원을 받으면 60세에 은퇴할 때는 연봉이 얼마가 될까? 단순 계산으로 일 년에 10%씩 증가하여 30년이니 300%, 즉 ‘3배’인 9천만 원이 된다. 과연 그런가?
좀 더 세밀히 계산해보면, 둘째 해는 첫해의 1.1배가 되고 다시 셋째 해는 둘째 해의 1.1배다. 이런 식으로 계산해 보면 60세의 연봉은 첫째 해에 1.1을 29번 곱한 값이 된다. 최종 연봉은 첫해의 약 16배인 4억 8천만 원이 된다. 이를 ‘복리의 마술’이라 한다. 퇴직금도 최종 연봉에 비례할 것이니 그런 사람은 ‘부자’라 할만하다.
그런데 계산이 여간 복잡하지 않다. 일반 계산기로도 이리저리 두드려야 답이 나온다. 이럴 때에 ‘72의 법칙’을 활용하면 쉽다. ‘72를 증가율(또는 이자율)로 나누어 나온 값이 최초의 2배가 되는 기간’이다. 매년 10%씩 증가하면, 처음 ‘7.2년 후에는 최초의 2배’, 다음 ‘7.2년에는 2배로 불어난 금액의 2배, 즉 4배’가 되고, 다음 ‘7.2년에는 4배로 불어난 금액의 2배, 즉 8배’가 된다. 그다음 ‘7.2년에는 8배로 늘어난 금액의 2배, 즉 16배’가 된다. 28.8년 후에는 처음의 16배가 된다는 계산이다.
개인·기업·국가의 성장률을 여기에 대입해 보면 흥·망·성·쇠도 쉽게 가늠해 볼 수 있다. 증명도 되지 못한 숫자가 다양한 적용에 딱딱 맞아떨어지고, 심오한 통찰력도 갖기에 ‘아인슈타인’도 ‘72의 법칙’을 ‘세계 여덟 번째 불가사의’라고 말한 것이리라.
세상의 모든 갑부들이 당대에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도 이 공식을 대입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미국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도 1956년에 단돈 100달러로 시작하여 자산을 지속적으로 매년 20% 이상 성장시킨 결과 현존하는 세계 최고 부자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혹자는 이 법칙이 특별한 사람들의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치부할 수도 있다.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주변에도 많다. 과거 중소형 기업들이 세계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값어치를 매년 10% 이상 성장시킨 ‘아버지’들이 그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백만 원 대’ 연봉에서 시작하여 30년 후 ‘수억 대’ 연봉자들이 되었다.
그럼 초기 연봉이 높으나 성장이 느린 대기업에서 자신의 가치도 그에 비례하여 성장시킨다고 가정하면 어떻게 계산되나. 초기 연봉이 앞의 2배인 6천만 원이라 하고, 연봉 증가율은 앞의 반인 5%라고 가정하자(물론 가정일 뿐이다). ‘72의 법칙’으로 계산하면 2배 증가에 14.4년이 걸린다. 30년 후는 최초 연봉의 4배인 2억 4천만 원이 된다.
앞서 초기 연봉이 3천만 원이지만 10%의 자기 가치를 증가시킨 경우와 비교해 보면 ‘최후의 승리자’는 ‘처음 얼마에서 출발’하느냐 보다는 ‘얼마의 크기로 성장’하느냐에 따라 결판난다.
사실 누구나 갈망하는 부(富)라는 것이 노력한다고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니 그것이 문제다. 그렇다면 금전적인 부(富)와 내면의 가치인 귀(貴)를 종합한 ‘자신의 총 가치’를 매년 10% 이상 성장시킨다고 하면 어떤가? 부(富)의 성장이 여의치 않을 때는 노력 여하에 따라 귀(貴 ; 옛날에는 관직으로 판단하였으나 현대에는 어느 분야나 경지에 도달하여 존경받는 자라 함이 맞을 것 같다)를 얼마든지 더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72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총 가치’는 시간에 비례하여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준비된 자’라 부른다. 기회가 오면 언제든지 내재된 가치가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富)로 귀(貴)함을 사기는 어려워도, 귀(貴)하게 되면 부(富)는 저절로 따라옴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의 세상은 소위 ‘100세 시대’라 하지 않는가. 세상에 대한 공연한 ‘불만’이나 남을 의식하는 ‘폼’을 택해야 할지, 아니면 부귀를 위해 자신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는 ‘긍정’과 ‘실속’을 택해야 할지 답은 뻔하다. 어디, ‘금수저’니 ‘은수저’니 ‘흙수저’니 하고 태생만을 탓하는 ‘세상을 좁게 보는 자들’에 휘둘릴 필요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