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를 품고 살아가는 방법 (7화)
느린 아이를 키우는 데 기다림의 산은 크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아이의 가능성을 조기에 발견해서 재빨리 키워내고자 한다면 이쪽저쪽 수업을 찾아 아이의 스케줄을 짜는 게 일단 우선순위. 아이의 언어 촉진을 위해 언어치료 수업을 대기 걸고, 혹시 모를 자폐스펙트럼 징후에도 조기 중재를 하고자 행동치료 수업, ABA 치료 선생님을 찾아 나선다. 이 또한 원하는 요일, 희망하는 시간대에 수업을 받고자 한다면 대기는 필수. 하지만 이 많은 대기의 문턱을 넘는다 한들,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다. 또 하나의 큰 벽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다름 아닌 ‘치료 비용’이라는 장애물. 아무리 본격 진단 전이라 해도 조기중재를 하고자 한다면 ‘비용’이라는 장벽에 또 한 번 부딪쳐야만 한다. 소아과에서의 흔한 감기 증상 치료와 달리 아이의 치료 비용은 상당하다. 사설 발달센터에만 기대려 한다면 더더욱 부담은 크다.
회당 수업료 8만 원
한 세션은 고작 40분 남짓
뭐든 의심된다면 조기중재 (Early Intervention)가 필수라고 했다. 내 아이가 유독 또래들에 비해 느린 것 같고 발달상 소위 ‘자스 (엄마들 사이에서 자주 쓰는 자페 스펙트럼의 준말; Autism Spectrum Disorder)’를 의심케 하는 징후가 보인다면 망설이지 말고 일찍 뭐라도 시작해야 했다. 차후 자폐 스펙트럼이 아니었던 것으로 판정받더라도 일찍 행동치료든, 언어치료든, 놀이치료든, 개입해서 나쁠 건 없는 치료니까. 아이의 사회성 발달이나 의사소통 능력 증진을 위해서 뭐든 일찍 해서 나쁠 건 없었다. 단, 한 가지 걸리는 문제는 바로 치료 비용.
자폐스펙트럼 장애 징후를 보이는 아이들을 위해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ABA 수업, 한 세션당 8만 원에서~10만 원에 달한단다. 고작 40분 남짓의 수업에 10분 부모 상담, 모두 합쳐봐야 1시간이 채 안되는데 하루에 잠깐 가는 센터에서 10만 원 가까이 써야 한다는 게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다. 이런 고민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겠지. 아이의 재빠른 치료를 위해 두 발 벗고 나서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가 똑같겠으나 비용에서 ‘덜컥’ 발목이 잡혀버린 셈이다. 자폐의 조기 중재를 위해서는 최대한 어린 나이에 주당 40시간 집중적으로 중재에 나서야나 정상발달 아동에 근접할 만한 효과를 거둘 수 있댔는데… 아무리 효과가 보장된다 한들, 부담되는 건 어쩐담. 하루 이틀로 끝날 치료가 아닐 텐데 마음이 참 먹먹했다. 주 4회 집중적으로 아동들의 행동을 중재한다는 이른바 ‘조기 교실’에 다니려면 다달이 200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을 써야만 했다. 두 돌도 채 안 된 아기를 위해 맞벌이도 아닌 우리 부부가 지출할 수 있는 비용에는 한계가 있었다.
만만치 않은 비용을 핑계로 아예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 꾸역꾸역 주 2회, ABA 개별치료부터 시작해봤다. 이런 치료를 매일 받아도 발달과업에 호전을 보일까 말까일 텐데 현실적으로 이 정도가 최선이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주 2회 치료실 다니고 나머지 시간엔 집에서 엄마표 ABA로 직접 중재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럼에도 태어난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아기에게 상당한 사교육비가 들어가는 게 늘 마음속 혹처럼 걸렸다. 잠깐 해서 좋아진다면 모르겠으나, 늘 따라붙는 물음표는 이러했다. “이렇게 앞으로 어떻게 버티지? 치료를 얼마나 더 받아야 할까?” 바꿔 말해 나의 생각은 다음 질문으로 모아졌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치료비를 더 쏟아부어야 끝날까?”
앞으로 얼마나 많은 치료비를
쏟아부어야 끝날까
아기가 다닐 만한 집 근처 센터에서 한 달을 치료받기 시작하면서 ABA만을 위한 고정지출 비용은 다달이 60만 원 이상. 주 2회 회당 1 세션이 이러한데 만약 수업시간이 아쉬워 몇 세션 더 보태기라도 한다면 비용은 배로 불어나는 거였다. 내 나이 18살, 영어 수학 개인과외 비용을 합친 것보다 비싸져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직 고2가 되려면 15년도 더 남은 아기가 이토록 예사롭지 않은 사교육을 받고 있다니. 한 교수님께서 슬쩍 언급하신 적 있는 말이 종종 뇌리에 꽂혔다. “치료비용 때문에 자폐는 부자들의 병이라는 편견이 있다” 했던 이야기. 왜 아닌가. 조기 중재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일찍 깨닫는다 한들, 아무나 감당하기 쉬운 비용은 결코 아니었으니까.
재수를 미리 한다고 생각해
나중에 쓸 고등 사교육 비용을
미리 당겨 쓴다고 생각해
느린 거북 맘 카페에서도 치료비용 이야기가 오고 가는 틈에 이런 우스갯소리가 눈에 띄었다. “재수를 미리 한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아이가 훌쩍 자란 뒤에 어찌 됐든 쓰게 될 사교육 비용, 지금 흔쾌히 쓰고 만다는 얘기였다. 적잖이 끄덕여지는 순간이었다. “그래. 미리 쓰고 그때 안 쓰면 되지 뭐.” 앞날은 누구도 모르는 거니까 비용 부담에 대해 이토록 얄팍한 위로. 내 또래 엄마들이 아기 영어유치원에 등록하는 비용도 상당하다고 들었다. 비록 영어유치원 사교육은 아니지만 그 비용 미리 쓰는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에 좀 위안이 될까 생각도 해봤다. 언제 써도 쓸 사교육 비용이라면 아기 시절에 미리 쓰는 거라고 생각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머리를 굴려봤다. 만만치 않은 지출에 대해 스스로 정당화가 필요했던 거다.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유명한 입시 강사의 학원에 등록한다면 아마 그 비용 또한 다달이 수십만 원은 들 텐데 그 지출마저 미리 당겨 온 거라고 생각해보자며. 잠깐은 소박한 위로가 되는 듯했다.
비용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이쪽저쪽 알아보고 발품을 팔았다. 부랴부랴 주민센터에 아이의 발달 바우처를 신청한 게 맨 처음. 더불어 어린이 보험사를 통해 아이의 언어치료 비용 일부도 실비 형태로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도 알아봤다. 아직은 아이가 어려서 그 누구도 ASD라고 확언하지 않았으니 이런 노력, 저런 치료 다 시도해 볼 수 있는 열린 단계였다. 의심 징후는 있지만 이런저런 수업을 따라가다 보면 아이는 잠시 느리게 가는 것일 뿐 어떤 우려할 만한 증세가 있는 게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렇다면 가능한 모든 수업을 아이의 하루에 짜 넣고 싶건만, 정부의 바우처를 받고 보험사의 실비 지원을 받아도 여전히 한계는 가득가득했다. 이런 고민 나 혼자만이 아닐 텐데 생각했건만 그러던 차, 텔레비전에는 발달장애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을 언급하는 제법 심각한 다큐가 흘러나온다. 최근엔 40여 명 중에 1명이 자폐 징후를 보인다는데 이걸 개인이 감당하기엔 참 어렵겠다는 ‘실감’만 한다. ‘방법’은 사실상 모르겠다.
재수를 미리 한다 생각하기로 했어요.
입시 학원 미리 보내는 셈 치고
지출하는 거죠 뭐.
무력하게 맘 카페에 흘러나온 우스갯소리만 힘없이 되뇌어본다. 상당기간이 지나 아이가 훌쩍 큰 키를 드러낼 무렵 쓸 사교육 비용… 미리 투자한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아이가 진짜 입시생이 되었을 때 어떤 풍경일지 모르겠으나 15년쯤 뒤의 일은 나 몰라라 하고 일단 지금 그 비용 최대한 ‘영혼 끌어모으듯’ 지출한다고 생각해두기로 한다. 안 할 수는 없는 치료인데, 그렇다고 맘 편히 많은 지출을 허용할 수는 없는 각박한 현실. 치료비 걱정 없이 자폐스펙트럼을 대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얼마나 안심일까 기운 쭉 빠진 채 상상해본다. 느린 아이를 바라보는 저릿한 시선에 비용 부담이 얹히는 지금의 마음. 계산기를 두드리는 엄마의 마음은 요란하게 얽힌 숫자만큼이나 어지럽다. 결코 쉬이 풀리진 않을 것만 같은 지독한 현기증. 치료비용이라는 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