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 길에 카네이션을 건네주는 아이의 모습에 뭉클함이 밀려왔다. 아마도 어린이집 선생님의 작품일 거란 예감은 틀리지 않을 거다. 하지만 이게 뭐라고, 이 종이가, 이렇게 감동적이라니.
아이에게서 편지를 받는 날이 오면 또 얼마나 감동적일까 생각했다. 받지도 않은 편지에 주책맞게 눈물이 맺혔다.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직접 만든 거냐고 너무 고맙다고 호들갑을 떨며 인사를 하자, 아이는 "꽃"이라고 답했다.
어린 시절 기억에 심드렁하게 편지와 선물을 받던 부모님이 떠올랐다. 리액션이 없어도 너무 없으셨다. 그래서 뭘 건네는 게 재미없었다. 십 대쯤인가, 언젠가부턴 편지를 쓰지 않았다가 최근에서야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엄마의 서랍엔 어린 시절부터 내가 엄마에게 쓴 편지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엄마는 내가 쓴 편지를 "힘들 때마다 보고 있다"라고 뜬금없이 말씀하셨다.
자식에게 감사 인사를 받는다는 건 이런 기분일까. 그동안 엄마로 살며 겪었던 어려움을 보상받는 것 같았다. 우리 엄마, 아빠도 그랬겠지. 말주변이 없어 호응해주지 못했을 거다.
내일은 고해성사를 하러 가려고 한다. 우리 아이를 돌봐달라고, 염치없이, 세례만 받은 의심 많은 신자가 청을 하려고 한다.
봄바람이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