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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ing days Feb 11. 2023

사장님, 저를 고용하세요!

맘껏 소리쳐 울어봅시다

돈이 없다. ATM기에서 흩어진 돈을 탈탈 긁어모았지만 10만 원 되지 않다. 우울증이고 뭐고 이대로라면 굶어죽을 판이다. 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곧바로 PC방으로 다.


처음엔 백화점 지하 1층의 베이커리 가게에서 일했다(여기가 시급이 가장 셌다). 루종일 서있보니 일이 끝나고나면 파김치가 됐고, 집에 와서 공부를 하려고해도  위에 침만 질질 흘리다 앉은 채로  때가 많았.


그래서 선택한 두 번째 아르바이트 로티번 가게였다. 백화점만큼 시급이 세진 않았지만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적당한 노동강도가 마음에 들었다. 특히 아침에 갓 구운 로티번과 함께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하루의 피로가 싹 풀리는 게 아주 일품이었다. 실로 오래간만에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시험일자가 점점 다가올수록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젠 남들처럼 공부에만 집중해야 될 것 같아서, 이번엔 독서실 총무가 돼보기로 했다.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싹다 뒤져봤지만 처 독서실 무를   없었다. 언제 뜰 지도 모르는 모집공고를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 핸드폰을 챙겨 들고 무작정 을 나섰다. 큰 길가를 따라 두블럭쯤 걷다 보니 저 멀리 노란색 독서실 간판이 보였. 일단 부딪쳐보기로 했다. 2층, 3층, 4층……. 엘리베이터 올라갈 때마다 조금씩 긴장이 됐다.


문이 열고 들어서자, 카운터에서 공부하고 있는 젊은 남자가 보였다. 옆에 놓인 책들을 슬쩍 훑어보니 나와 같은 공무원 수험생이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사장님은 안 계세요?"

"네. 지금 시간엔 안 나오세요."

"아, 그럼 실례지만... 제가 독서실 총무를 하고 싶은데... 혹시 여기에서 오래 하실 생각이세요? 그만두실 계획은 없으신가요?"


다짜고짜 이렇게 말하기가 민망했지만, 달리 돌려 말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시나  당황스런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그만둘 생각이 없다는 건가...? 왜 대답이 없지?


"혹시 그만두시게 되면 제가 여기서 일하고 싶어서요. 사장님께 제 연락처 좀 전달해 주세요."


그런데 주머니를 뒤져봤지만 종이도 없고, 펜도 없었다. 뿔싸, 거기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저기, 죄송한데... 종이랑 펜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자리 뺏으러 와서 종이와 펜까지 뺏어는 뻔뻔함이라니……. (그, 그래도 한번 보고 말 사이니까. 하하하.) 


시작이 반이라고,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쉬웠다. 길 건너편에도 독서실이 하나 있었다. 이번엔 사장님으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남자분이 앉아계셨다. 


"안녕하세요. 혹시 여기에 독서실 총무가 있나요?"

"네. 왜요?"

"제가 근처에 사는데 여기에서 일하고 싶어서요. 지금 있는 총무가 그만두면 아르바이트 사이트에 공고 올리지 마시고 저한테 바로 연락 주세요. 제 전화번호 알려드릴게요."


음 날 오후, 드폰이 울렸다. 두 번째로 찾아갔던 독서실 사장님이었다. 

"다음 주부터 나올 수 있어요?"

"네! 바로 나갈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알고 보니 마침 총무가 그만두겠다고한 시점에 내가 방문한 거였다. 역시 발로 뛰니 없던 기회도 금세 생겼다. 사장님께서는 똑 부러지게 일을 잘할 것 같다 칭찬도 곁들여주셨다. 


얼마 후, 첫 번째 독서실에서 봤던 총무가 내가 일하는 독서실로 찾아왔다. 와 내 자리가 바뀐 채로 서로를 다시 마주한게 신기했다. 이제 공부에만 집중하려고 일도 그만두고 독서실을 옮는 거라고 했다. 


독서실에서 일하다보니 매일 보는 장기등록자들과 친해졌다. 전(前) 총무였던  말하길, 날 처음 봤을 때 '얘는 뭐지' 싶었다고 했다(역시나 그 이상한 눈빛이 맞았다). 웬 꼬맹이가 와서 언제 그만둘 거냐고 당돌하게 말하는 게 인상깊었다고. 쟤는 뭘 해도 되겠다 싶어서 웃겼다고 했.


점수가 안 나오는 과목은 전 총무에게 좋은 강사를 소개받기도 하면우린 좋은 친구가 됐다(실제로는 오빠지만). 그 외에도 동갑내기였던 초등 임용고시 준비생 A, 제대한 다음날부터 바로 공부에 돌입한 재수생 B, 회계사 준비를 하던 두 형제 C, D, 전 총무의 지인인 E까지. 낯선 동네에 드디어 아는 사람들이 생겼다. 혼자서는 갈 수 없던 삼겹살집도 이젠 갈 수 있게 되서 좋았다. 외로수험생활을 함께 달릴 수 있어서 힘이 났다.





몇년 전 학교 OT때였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자, 선배가 강당 위에서 황도 통조림을 들고 물었다.

"이거 가져가실 분?"

다들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거렸다. 괜히 손을 들었다간 노래나 춤 같은 걸 시킬까 봐 선뜻 나서 사람이 없었다.

"저요."

그때 어떤 여학생이 손을 들었다. 예상과 달리 선배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싱겁게 통조림을 건네줬다. 그러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이제부터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해요. 우물쭈물하다 보면 옆 사람들이 다 채가요.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말은 이거 딱 한 가지예요. 우는 아이에게 젖 줍니다. 가만히 앉아 공부만 열심히 하던 시기는 지났어요. 자기 발로 기회를 찾아 나서세요."


그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총무 자리를 구할 때 나를 모니터 밖으로 움직이게 한 건, 그 선배의 말 한마디였다.



울어야 배고픈 줄 안다. 울어야 힘든 줄 안다. 소리치다 보면 누구든 달려 나올 것이다. 설령  부모가 아닐지라도, 시끄러을 못 견뎌서라도 누군가는 젖을 줄 것이다. 눈앞에 있는 저 사람이 내가 필요한 걸 갖고 있는지 없는지까지 깊이 고민할 필요도 없다. 내가 할 일은 단지 이것이다.


울자, 시끄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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