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길, 인간의 길 그리고
엄마의 길

(모녀무비클럽: feat. 영화 <늑대아이>)

by 지음

화를 보는 내내, 영화를 본 후에도, 그 다음날 아침에도 눈물이 줄줄 흘렀어요. 영화의 무엇이 제 감정선을 건드린 게 틀림 없습니다. 딸도 영화를 보며 함께 울었답니다. 물론 제가 훨씬 많이 울었지만요. ㅎㅎ


영화를 본 후 딸아이와 함께 나눈 대화와 느낌들을 위주로 작성해 보았어요. 녹취록 작성하듯 대화를 받아적었습니다. 여기에 적은 내용 외에도 생각거리, 느낄거리들이 무척 풍부한 영화였습니다. 한글책, 영어책으로도 잘 나와 있어요. 딸은 도서관에서 영어 만화로 먼저 읽었는데 그 때부터 이미 좋아했더라구요. 영화 아직 못 보셨다면, 강추합니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은 꼭 영화를 먼저 보시고 돌아와 주세요~^^




왜 하필 늑대였을까?: 융의 그림자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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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늑대아이>, 출처: 네이버 영화 구매 후 캡처



나: 딸, 왜 늑대였을까? 다른 동물들도 많은데, 왜 하필 늑대인간으로 설정한 걸까?

딸: 음...늑대는 무섭지. 글고 우리가 늑대인간은 잘 알고 있잖아. 사자인간, 여우인간 같은 건 잘 모르잖아. 그러니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 "다름"을 최대한 표현하려고 한 거 아닐까.

나: 아! 그럴 수 있겠다. 너 얘길 듣고 보니 늑대인간은 우리랑 좀 친숙하네. 그럼 이 영화에서 감독이 '늑대'를 통해 드러내려고 한 메시지가 뭘까?

딸: 늑대를 통해 "다름"을 드러내려고 한 거 같아. 다름 속에 비밀이 있잖아. 우리가 왜 외계인을 볼 때는 이상하잖아. 근데 외계인이 우리를 보면 또 이상하겠지. 이상하지 않게 느끼려면 다름 속에 있는 비밀을 받아들여야 하는 거 같아.

나: 음....그럼 너에게는 늑대 같이 좀 다르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어?

딸: 음...솔직히 장애인? 솔직히...~~랑 ** 이(예전 반 친구들)를 받아들일 때 힘들었어. 감정적으로 발끈하고 조절이 잘 안되니까. 매번 모든 일에 웃어주는 게 힘들었거든.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얘는 이런 애야' 받아들이기 시작하니까 걔네들 장점을 알아보게 되더라구. ~~는 자주 발끈하지만 사교성은 좋은 편이야. **이는 공부는 느리지만 관찰력이 좋고 동물천재박사야. 그리고 엄청 노력하더라구.



딸과 대화를 나눠보니 작가가 늑대로 설정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근데 왜 얘는 이런 걸 알지?). 늑대인간은 인간의 이중적 정체성에 대한 메타포로 오랫 동안 사용되어 왔다는 걸. 인간인 엄마를 제외한 늑대인간 아빠, 아들, 딸은 인간 세상에서 늑대의 모습은 반드시 숨겨야 할 무엇이었다. 남들에게 숨길 수는 있지만 자신에게는 숨겨지지 않는 정체성은 늑대아이에게 큰 고통이 된다.


나에게도 숨겨야 하는 정체성이 있을까. 스위스의 정신과의사 구스타프 칼 융은 사람에게는 누구나 나의 어두운 면, "그림자"가 있다고 봤다.


"심리학적 의미에서의 그림자란 바로 '나'의 어두운 면, 즉 무의식적인 측면에 있는 나의 분신이다."

이부영 <분석심리학> p.86


늑대인간이 아니니 나에게 해당사항이 없다고 치부할 수 없었다. 나에게도 늑대성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누군가 나의 수치를 건드리면 발톱을 드러내기도 한다(진짜 발톱은 아니다). 불안을 가리기 위해 소리를 버럭 지르기도 한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증오가 도사리고 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니 나와 늑대인간은 그리 다르지 않다.


"인간에 대한 어떤 것도 남의 일로 보지 않는다."

테렌티우스,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채 마흔이 되었다> 재인용


그럼에도 늑대를 터부시한다면, 내 안의 늑대성, 나의 분신인 그림자를 무시하는 셈이 된다. 내 안의 늑대, 그림자는 없앨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늑대가 악한 충동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내 안의 늑대를 끌어안는 것이다. 늑대인간을 사랑한 주인공 하나는, 그렇게 늑대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림자가 없는 존재란 죽은 자, 영혼의 특징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그림자가 '나'의 일부가 되려면 '내'가 그림자를 살려야 할 것이다."

이부영 <분석심리학> p.93~94




늑대의 길, 인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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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늑대아이>, 출처: 네이버 영화 구매 후 캡처



나: 딸, 네가 만일 늑대인간이었다면, 너는 어떤 길을 선택했을 것 같아? 늑대? 인간?

딸: 음...난...솔직히, 늑대. 늑대였을 것 같아.

나: (다소 놀라며) 진짜? 늑대? (무척 궁금해하며) 왜 늑대야? 사람도 못 만나는데...

딸: 늑대가 인간보다 더 자유로울 것 같아. 난 좀 자유롭고 싶어.

나: .... 그렇구나. 자유롭고 싶구나.

딸: 응. 늑대로 살면 더 편할 거 같아. 생각해 봐. 인간 세계에 살면 늑대가 되는 내 모습은 숨겨야 하잖아. 근데 자연에서는 늑대로 살아도, 사람으로 변신해도 누가 뭐라고 하겠어. 두 가지 모습으로 다 살아도 상관 없지. 그게 더 편하지 않을까?



하나에게는 유키라는 딸과 아메라는 아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늑대아이. 어렸을 때 늑대로서의 자유분방함을 만끽했던 유키는 커가면서 점점 인간으로서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해진다. 친구들에게 여자다움을 인정받고 싶어하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 반면 아메는 어린 시절에는 벌레도 무서워하는 유약한 아이의 모습이었지만, 동물원 안의 야성이 죽은 늑대를 본 후부터 늑대로서의 삶을 살기로 결정한다. 아메가 산에 올라가 광활한 자연을 바라볼 때의 그 표정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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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늑대아이>, 출처: 네이버 영화 구매 후 캡처


딸은 아메의 그 자유로운 모습이 참 부러웠나보다. 딸은 나와 기질적으로 많이 다르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랄까. 아니나 다를까, 늑대인간이라면 늑대로서의 삶을 선택한다니. 딸 답다. 근데 그 대답을 들으며 나는 왜 쓸쓸해지는 걸까.



엄마의 길


유키와 아메가 각자 인간의 길, 늑대의 길을 걸어가기로 선택한 즈음, 하나는 꿈 속에서 그토록 그리워했던 남편을 만난다. 잃어버린 아메를 찾고 있던 중이라고 말하니, 남편은 아이들이 다 컸다고 대답한다. 놀란 표정으로 "다 컸어?"라고 되묻는 하나는 "아메는, 자신의 세계를 찾은 거야."라는 답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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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늑대아이>, 출처: 네이버 영화 구매 후 캡처



(이전 대화를 이어가며)

나: 영화에서 젤 인상적인 부분이 어디였어?

딸: 난 젤 좋은 부분이 거기였어. 아메가 산 위에서 자신의 세계를 찾은 그 장면. 나도 내 세계를 찾게 되면, 솔직히 그 때는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

나: .................. 아메가...엄마를 사랑한 걸까?

딸: 당연하지. 눈빛을 보면 알잖아 (나도 안다).

나: 사랑해도 떠날 수 있는 걸까?

딸: 그럼. 떠나면서도 더 사랑할 수 있다고 봐, 난. 아빠가 출장을 자주 가잖아. 출장 가 있는 아빠가 더 보고 싶잖아. 멀리 있는 사람이 더 보고 싶어지는 그런 느낌 아닐까.



죽어도 여한이 없다니. 그게 엄마 앞에서 할 소리인가 싶기도 하다가 초4에 저렇게 말할 수 있다니 부럽기도 하다. 아메는 늑대로 살기로 결정한 후 산으로 갔다. 그리고 꼭대기에 올라가 하울링을 한다. 아메와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하나는 "나는 아직 너에게 해준 게 없다"며 울부짖는다. 하지만 폭풍우가 걷히고 밝게 햇살이 비치는 푸른 하늘 아래서 자유로운 하울링을 하는 아메의 모습을 보며, 하나는 아메와의 이별을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녀답게. 웃으면서...


딸이 언젠가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 어디론가 훌쩍 떠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리적인 분리와 심리적인 분리를 다 포함해서. 건강하게 분화되어 가는 이 성장의 과정이 감사하면서도, 엄마인 나에게는 상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아픈 과정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렇게 눈물이 났나보다. 미리 겪는 상실의 아픔. 하지만 이 또한 엄마인 내가 다 커가는 아이들에게 반드시 주어야 할 또 다른 사랑일 것 같다. 떠나 보내는 사랑. 나는 이제 그 연습을 시작해야 하나보다.


"이제 나는 상실의 가능성 없이는 사랑하거나 사랑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로리 고틀립 <마음을 치료하는 법> p.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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