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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May 09. 2021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소리 (feat. 지음)

그림책 <까마귀 소년> & 소설 <로빙화>

외톨이의 친구들


무엇 때문인지 아이는 학교가 무척 낯설었나 봐요. 선생님도, 친구들도 무섭기만 했네요. 그런 아이에게 누구도 다가오질 않습니다. 땅꼬마라 불린 아이는 늘 뒤처졌어요. 따돌림받던 아이는 이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야시마 타로 <까마귀 소년>


땅꼬마는 따돌림 받는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사팔뜨기 흉내를 내기 시작해요. 그럼 초점을 흐릴 수 있어서 보기 싫은 것들을 안 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자신만의 친구들을 만들어 갑니다. 몇 시간 동안 천장만 바라보기도 하고, 나뭇결도 꼼꼼히 살피고. 1년 내내 창밖에 보이는 많은 것들을 바라보고, 운동장에서도 혼자 눈을 감고 온갖 소리를 듣습니다. 아마 이 때부터 땅꼬마는 자연과 동물들, 그들과 친구가 되어갔나 봐요.


야시마 타로 <까마귀 소년>


외롭고 고달픈 학교생활이었지만, 땅꼬마는 6년을 한 번도 결석하지 않고 학교를 다녔어요. 그러던 어느 날 다정한 이소베 선생님이 학교에 새로 왔어요.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뒷산에 자주 올라가셨는데 그때 땅꼬마의 재능을 알아보시죠. 땅꼬마는 머루가 어디에서 열리는지, 돼지감자는 어디에서 자라는지 모든 걸 알고 있었어요. 꽃밭을 만들 때도 땅꼬마는 꽃이란 꽃은 다 알고 있었죠. 그런 땅꼬마를 선생님은 알아보세요. 그리고 땅꼬마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합니다.


학예회 날, 땅꼬마가 무대로 나와요. 선생님은 땅꼬마가 까마귀 소리를 낼 거라 말씀하시죠. 그리고 땅꼬마는 까마귀 소리를 내기 시작해요. 새끼 까마귀, 엄마 까마귀, 아빠 까마귀, 이른 아침에 우는 까마귀, 마을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즐거울 때 내는 소리들을 들려주었어요.


야시마 타로 <까마귀 소년>


땅꼬마의 까마귀 소리를 듣는 아이들, 어른들 모두 땅꼬마가 학교로 오는 저 먼 산자락으로 마음이 끌려들어 갔어요. 어떤 공명이 일어났나 봅니다. 이소베 선생님은 설명해 주셨어요. 땅꼬마가 그 소리들을 어떻게 배웠는지. 동틀 무렵에 학교로 먼 길을 타박타박 오면서, 해 질 무렵 집으로 먼 길을 타박타박 가면서 땅꼬마는 그 소리들을 몸으로 익혔다는 걸. 그 이야기를 들은 학생들과 어른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지요... 그제서야 땅꼬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답니다.


땅꼬마는 이제 땅꼬마로 불리지 않아요. '까마동이'가 새로운 별명이 되었죠. 그리고 사람들은 이제 까마동이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안녕, 까마동아!" 그리고 먼 산자락에서는 행복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오네요.




로빙화, 그리고 지음


책을 덮고 딸이랑 대화를 나눴어요.



나: 이 책 어땠어?

딸: 괜찮네 (쿨걸 ㅋㅋ).

나: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딸: 음... 고정관념?

나: 응? 고정관념? 어떤 게?

딸: 이 아이의 겉모습만 보고 얘는 어떨 거다 미리 판단한 거 같아. 무서운 선생님이랑 친구들 모두.

나: 아.. 고정관념.. 그렇네~ 그럼 이소베 선생님은 어떻게 이 친구를 알아볼 수 있었을까?

딸: 음.. 이 선생님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었나 봐. 모든 사람이 한 가지는 잘하는 게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거 같아. 그러니까 그 장점이 눈에 보였겠지? 그리고... 난 이 선생님이 이 친구에게 "지음"이 되어준 것 같아.

나: 엉? 지음? 그게 그렇게 연결이 되는 거야?

딸: 그 엄마.. 블로그명.. 그거 생각나네. 그거 알아? 내가 봤는데 얘가 한 번도 안 웃는데, 여기서부터 웃기 시작해.

나: 어디?

딸: 여기, 까마귀 소리를 낼 때. 그때 처음으로 웃어. 뭔가 자신의 소리를 내고 나니까 기분이 좋았나 봐. 근데 이 소리를 내고 싶다는 걸 이소베 선생님이 알아줬잖아. 그러니까 지음을 해준 거지.



딸에게 오늘도 배웠습니다. 어찌나 가르침을 주시는지... 지음. 블로그에서 불리는 제 이름. 그 이름을 저는 <로빙화>에서 처음 만났어요.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 지음을 만나는 것처럼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자신을 알아주는 지음이

설사 솜털도 가시지 않은 어린 아이라 해도 그 기쁨은 충분했다."

중쟈오정 <로빙화>


그 때부터 이 단어에 반한 것 같아요. 그때부터 저도 지음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지음은 원래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수 백아와 그의 친구 종자기와의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해요. 백아가 거문고를 들고 높은 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으로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옆에서, "참으로 근사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산이 눈앞에 나타나 있구나"라고 말하고, 백아가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기가 막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눈앞을 지나가는 것 같구나"하고 감탄했답니다. 하지만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기 거문고 소리를 들려 줄 사람이 이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네요(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저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소리를 내고 있다고 느껴요. 전혀 다른 음과 박자로 소리를 내며 자신만의 음악을 연주하고, 저마다의 인생의 춤을 추고 있다고 말이죠. 올해 43살인 저에게도 내면에 소리가 쌓였고, 고였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자꾸 소리를 내고, 흐르게 하고 싶어졌어요. 내가 진짜 나의 소리를 내면, 세상 어딘가에도 내 소리를 알아들어줄 지음이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들어서 블로그와 브런치를 시작했답니다.


소설 로빙화에서는 미술 선생님 곽운천과 천재 소년 화가 고아명이 서로의 지음이 되어 줍니다.


소설 <로빙화>


가난한 고아명의 뛰어난 그림 실력을 처음 알아본 사람은 곽운천 선생님이었어요. 고아명의 그림에 대한 열망, 자유로운 영혼, 거침없는 표현력을 곽운천 선생님만 알아볼 수 있었죠. 다른 선생님들은 학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학부모의 자녀가 스펙을 쌓을 수 있도록 돕고, 학교에서 자리 부지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가난한 소년의 천재적인 재능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죠.


곽운천 선생님과 이소베 선생님은 어떻게 소년의 지음이 되어줄 수 있었을까요? 엄마로서, 상담을 하는 사람으로서 궁금했어요. 어떻게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딸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 봅니다. "믿음". 어떤 아이라도 타고난 장점이 있을 거라는 사람에 대한 믿음 때문에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선생님들은 자신을 많이 비워낸 빈 그릇과 같은 마음의 상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제 경우엔, 자기 자신으로만 가득한 상태에서는, 다른 사람의 소리가 들리지 않더라구요. 자신을 비워 냈기에 다른 사람의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가 공명을 일으켰던 게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 소리는 공명이 커서 그 둘뿐만 아니라 따돌렸던 아이들, 무심했던 어른들의 마음도 흔들어 깨울 수 있었습니다.


부디, 나를 더 비워 내고, 다른 이들의 소리에 더 민감해지길. 꼭 들어야 하는 소리를 놓치지 않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그림책 <까마귀 소년>, 소설 <로빙화>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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