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들 저마다의 이유로 불안을 안고 살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불안을 안고 사는 것 자체를 너무 불편하게 생각한다. 원래 그렇지 않은 사람도 상황에 따라 불안을 들키고 싶지 않아 더 불안해진다. 불안이라는 막연하고 모호한 감정을 견디기가 어려워질 때가 있다. 불안을 감당하기 어려워지면, 우리는 불안을 없애기 위해 통제하고, 강박적으로 행동하며, 불안을 분노로 위장하기도 한다.
불안을 없앨 수 있을까? "경제적 자유"를 취득하면 우리는 이 땅에서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경제적 자유를 득하더라도 불안은 또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삶에서 불안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차피 안고 살아가야 하는 불안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문제만 남는다.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는 법>의 저자 하주원은 우리가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라면, 적절한 불안을 수용하는 마음과 더 나은 불안을 향해 나아가는 태도를 권하고 있다. 지나친 불안은 수행을 방해한다. 모자란 불안은 수행에 이르지 못하게 만든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절한 불안이 무언가를 수행하는 좋은 동력을 제공한다.
시험을 앞두고 불안하다면 '내가 꽤 열심히 하고 있구나', '내가 잘 해내고 싶구나', '나만 불안한 게 아니야. 쟤들도 불안해."라며 나를 다독여주면 어떨까. 지나친 불안이 아주 조금은 가라앉지 않을까? 시험뿐만 아니다. 시간과 에너지, 마음을 들인 일일수록 잘되지 않으면 어쩌나 불안한 게 당연하다. 그 당연한 불안을 수용해 주지 않았던 무수히 많은 목소리들 속에서 우린 불안을 숨기고, 통제하려 들기에 급급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라도 지금의 나에게 말해주면 어떨까. '네가 불안한 건 진심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야. 불안해도 괜찮아.'라고 말이다.
또한 저자는 삶이 의미 있는 발전을 이룬다는 것은 불안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더 나은 불안을 품게 되는 것이라 말한다. '더 나은 불안'. 이 말이 참 좋다. 오늘의 불안이 어제의 불안보다 나은 것인가 가치 평가를 해보라는 말은 아닌 것 같다. 그저 내 불안을 수용하고, 조금씩 다독거리다 보면 어느새 '더 나은 불안'으로 불안의 모양과 색깔이 바뀌어 있을 거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러니 적절한 불안이면 괜찮다.
때론 지나친 불안이어도 괜찮다.
괜찮다고 말하는 순간 그 불안은 적절해지니까.
적절한 불안을 다루다 보면 어느덧 더 나은 불안을 안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