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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ler Nov 27. 2020

어느 흔한 팀장의 고백_리더의 의미

20세기에 배우고 21세기에 살기_06

꼰대 상사를 흉보던 친구들과 어느 순간부터 요즘 애들은...으로 시작하는 한탄이 늘었다.  


매니저들에게는 리더십 교육이 큰 과제이다. 기업들이 임직원 만족도 조사라는 것을 하기 시작하면서 더욱 심각해졌다. 임직원 만족도 조사에서 가장 낮은 점수는 매번 '상사의 리더십'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취업사이트에서 현직 회원들의 자사 평가를 봐도 리더십/경영진에 대한 점수가 후한 곳은 흔치 않다. 특히 무기명일수록. 


그래서 기업의 교육 컨설턴트들은 매년 새로운 리더십의 유형을 내놓았고, 기업은 각 단위의 관리자들을 실습시켰다. 카리스마 리더십도, 서번트 리더십도, 코칭의 노하우도, 위임형도, 동기부여형도, 비전 제시형도 다 배우고 멘토링까지 해야 할 업무에 포함했지만 모든 매니저들이 훌륭한 리더십을 장착할 수는 없었다. 

 

리더십 평가를 매년 받아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직원들은 바빠 죽겠는데 상사들은 교육 가버리고 그래 봤자 변화는 없다 하고, 열심히 불려 가서 배운 대로 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기는 관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잘해주는 거 필요 없어. 스스로 잘나서 잘해주는 줄 알지." 

"비켜줘야 만족할 것을 왜 눈치 없이 앉아서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어"

"그래, 다 내주고 그만두면 되지. 중간 역할해보라 그래 뭐 쉬운 줄 아나" 

그러나 그만둘 사람은 없고 이건 100퍼센트  라떼는 말이야~로 넘어갈 신호다. 빨리 막아야 한다. 


예비역의 군대 이야기와 

낚시꾼의 월척 이야기와 

부장님의 사원 대리 시절 이야기는 절대, 시작하게 내버려 두면 안 된다 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우리가 이제 이러고 앉아있다니.  21세기 후배들도 나중에는 이럴까 아님 그냥 우리도 20세기 선배들 하던 대로 읊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모든 리더십의 덕목 중의 하나는 경험과 연륜이었다. 너희들이 하고 있는 것을 내가 다 해봤고 안다는 전제 하에, 그들이 하는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이끌고 검토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이미 기업과 사회는 연공서열을 버린 지 오래이고 후배들은 선배의 경험보다는 신기술이 제공하는 데이터베이스를 훨씬 신뢰했다. 


층층시하 조직에서 팀장-팀원이라는 단순한 조직으로 변화할 때 타이틀과 결재 칸을 잃어버린 중견들의 표정을 기억하는 이들도 이제는 별로 없다. 

격의 없는 호칭에 'XXX님이라고 불러주십시오'라는 아들 또래 신입사원의 표정은, 과장 승진을 깜빡하고 김대리~라고 불렀을 때 김 과장의 표정보다 더욱 진지하고 근엄하다. 


지금 이리 말하는 나도 소위 '발탁 인사'였다. 경영진은 조직의 새로운 방향에 걸맞은 신세대 전문가를 과감하게 - 많은 논쟁 끝에 - 배치했다. 개인적으로는 일이 너무나 재미있고 자신만만할 때였다. 선배 팀장들의 흥미로운 표정도 기억나고, 경영진의 전격 지원 하에 종횡무진 다니는 초짜 팀장에게 태클 거는 사람은 없었다.


이때부터였나 보다. 아직 팀장이 되지 못한 부차장님들은 불만을 토로했지만 급격히 존재감이 흐려졌고, 그와 동시에 비슷한 연배의 동료들은 칼을 갈기 시작했다. 나도 못할 것이 뭐냐며. 그러면서 팀제로 바뀐 후에도 말년 부장들이 먼저 포진하고 연차 순서대로 물려받던 팀장 자리를 놓고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별 것 같지 않은 자리이지만, 극소수의 임원 자리를 제외하고 남은 유일한 리더십 타이틀인 팀장은 일반 직원들에게 여우의 신포도이자 알면서도 당하는 회사의 당근이다. 

아직 조직은 백 퍼센트 상하관계에 자유롭지 않고 명함에 적힌 타이틀이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은행 대출에도, 거래처 만남에도, 가족 모임에도 여전히 타이틀은 유효하다. 그래서 수평조직을 추구하는 조직 내에서 몇 개 남지 않은 자리에 대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개개인의 욕구는 더 강해졌다. 


세월이 지나 이제 나는 촉망받는 신세대 팀장이 아니라 흔하디 흔한 팀장들 중 하나다. 

대리 시절 부장님은 까마득한 위치이지만, 팀원에게 팀장은 내가 넘을 수 있을 것 같은 상대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제는 꽤 자리 잡은 팀제에서 팀장은 팀원들과 실무를 나누어 가지고 일을 하고, 거기에 팀 운영을 관리하는 역할이 추가되는 것이기 때문에, 딱히 나이가 많거나, 경력이 많거나 할 필요가 없다. 똘똘한 후배들에게 팀장의 결재는 권한이기보다는 참조 정도로 여겨지고 이제 남은 팀장의 역할이자 권한은 빨리 후임을 양성하고 비켜주는 일뿐이다. 


10년 전에 했다가 망한 프로젝트를 아주 새로운 프로젝트라며 눈을 반짝이며 들고 온 후배 팀원은 어찌해야 할까. 리더십 트레이너라면, 나의 경우를 공유하고 왜 실패했는지를 분석해서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과정을 추천할 것이다. 그것이 팀이며 상호 윈-윈 하는 방법이라면서.


말이 쉽지, 친구가 한숨을 내뱉었다. 현실에서 후배는 내 경험은 무시하고도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나를 앞질러 승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물론 실패가 빤히 보이는 후배도 있다)


능력 좋은 친구들이야 빨리 임원 되어 자리 내어주고 더 잘 나간다지만, 그보다 많은 평범한 팀장들은 그 작은 타이틀 하나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예전이 부장/차장들처럼, 지금의 팀장들도 낀 세대이긴 마찬가지이다. 경영진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고 팀원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줘야 하면서 동시에 도전에 방어해야 하는 이 줄타기에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일까. 

지금도 조직에서는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팀장/팀원도 해체되고 또 다른 타이틀이 스멀스멀 시도된다. 누가 이 변화에 적응하고 주도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테스트당하는 팀장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이 시점에서 나는 다시 한번 자문한다. 나를 발탁할 당시 경영진과 리더들은 정말 몰라서 나에게 임무를 준 것인가. 나의 업무는 정말 새로운 것이었나, 그리고 나의 성과는 진정 나만의 성과였나. 




해외근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외국인 선배와 밥을 같이 먹었다. 

돌아가서 잘 지내라며, 계획을 묻는 그녀에게 나는 완전히 한국식(?)으로 말했다.


"이제 돌아가면 회사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텐데 말이에요. 열심히 할게요" 다른 선배들에게 하듯 의례적인 말을 하는 나에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회사의 기대에 부응할 생각하지마. 너의 기대는 뭐야? 거기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해"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좀 더 진지하게 질문하게 되었다. 

회사 말고, 상사와 팀원들 말고 나는 나에게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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