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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ler Dec 06. 2020

밥은 먹고 다니냐

20세기에 배우고 21세기에 살기_07

예전에 해외에 나간 연예인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어쩌다 보게 된 편에서는 남편의 직업 때문에 나가게 된 여성 연예인들의 생활이었는데 거의 90퍼센트가 삼시세끼 준비였다. 아이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메뉴 고민과 재료 준비와 요리와 테이블 세팅, 그리고 설거지까지 반복하다 보면 해가 지고 에피소드도 마무리가 되었다.

 

며칠 후 친정엄마에게 심드렁하게 '아니 무슨 하루 종일 밥해먹는 것만 나와. 하는 일이 그것밖에 없어.'라고 했더니 갑자기 버럭 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게 뭐! 


아, 우리 엄마는 왕년에 삼 남매 도시락 세 개 이상 싸고 지금까지 아빠의 최소 삼 첩 반상을 아침저녁으로 차려내는 사람이었지. 


저녁 뭐 먹을까

아무거나

아무거나 뭐?

있는 거 대충 먹자


우리와 이 대화를 지겹게 반복하면서 시큰둥한 대답에도 항상 따뜻한 찌개와 정갈한 반찬을 끼니때마다 내는 엄마였지. 


그러나 나는 아침상 차려내고 출근하기엔 벅차고, 저녁엔 지쳐 돌아와서는 뭐라도 대충 빨리 먹고 치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야근하고 있으면 도움은 손톱 끝만큼도 안 되는 선배들이 지나가며 물어보는 "밥은?" "집에 가서 밥해야지" "남편이 안 기다려?" "아이 밥은?"에 아주 경기를 일으킬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아이 친구 엄마들이 수백 가지 이유식과 아이 반찬, 그리고 정말 예술작품 같은 도시락을 뽐내는 걸 보면서도 양가 어머니들의 지원과 도우미 이모에게 기대어 연명하던 중이었다. 

남편 또한 엄마가 차려주는 밥만 먹던 대한민국의 아들이었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눈치는 있는 지라 주면 주는 대로 잘 먹고, 아니면 알아서 챙겨 먹었다. 


사실 이 모두는 운이 좋게도, 혹은 양가 엄마들이 그동안 잘 챙겨 먹인 결과로  부부와 아이가 건강해서 병원 한번 심각하게 안 가본 상황이라서 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어머니들과 도우미 이모를 떠나야 하는 해외 근무를 앞두고 다들 걱정이 앞섰다. 

고민 끝에 남편도 휴직을 포기하고 한국에 남기로 했던 터였다. 보다 못한 시어머니는 남편을 본가로 불러들였고, 나와 친정엄마는 내심 안도했다. 이제 오롯이 나 혼자 책임져야 하는 아이와 나의 밥 밥 밥.


나를 잘 아는 친정엄마는 순간적으로 진심을 내뱉었다. 

"그래도 제 새끼 굶기겠나. 애 밥 챙겨 먹이다 보면 저도 끼니는 거르지 않겠지." 


해외에 나온 주부들을 만나보니, 그리고 살아보니 연예인들이 보여준 모습이 정말 날 것이었구나 싶었다. 

한국의 식습관을 그대로 가져온 가족들에게 주부들은 정말 노력하고 있었다. 원래의 한식이 엄마의 시간과 노동을 갈아 넣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이 밖에 나오니 더욱 티가 났다. 그리고 필요한 수많은 재료들과 도구들까지도. 


그리고 낯선 나라의 회사에서, 학교에서 고군분투하는 가족들이 집에 돌아오면 고향과 똑같은 한 상을 차려 먹이는 것은 주부의 과제이자 성과이며 보람이기도 했다. 한인들끼리 모여 서양의 홈파티를 하면서 호스트 가족이 어떤 한식을 차려내는지가 그 주부를 평가하는 척도였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우리 아이 소울푸드는 이케아 미트볼이야"라고 웃으며 말하던 독일 엄마에게 공감하는 한국 엄마는 몇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 전형적인 엄마들의 모습에 몰입할 수 없었다. 매일 출근해야 하는 상황도 상황이지만, 현지의 식사 스타일도 마음에 들었다. 식사빵이나 햄 치즈류는 다양했고, 굽기만 해도 되는 고기와 감자도 싸고 맛있었다. 나물보다 생야채가 수월한 것은 당연했다. 점심용 베이커리도 간단하고 포만감도 있었다. 생각 외로 밸런스도 좋았고 속도 편했다. 

양념 범벅의 설거지 거리도 훨씬 없고 음식물쓰레기도 훨씬 줄었다. 물론 양가 엄마들이 교대로 엄청난 식재료를 이고 지고 오셔서 한국 음식이 그리울 시기도 그리 길지 않았고, 갑자기 떡이 먹고 싶어서 혼자 반죽을 치대며 부엌을 난장판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래서 엄마의 예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내 새끼는 먹여야 한다고 아침에 늦잠 대신 일어나 학교에 보낼 간식을 싸고 끼니를 거르지 않는 모성 본능은 발휘했지만, 밥 국 김치로 이어지는 뜨끈하고 푸짐한 한식 메뉴는 드물었다. 그리고 다행히 우리 모자는 별 탈 없이, 아픈 데 없이 무사히 귀국했다. 


귀국한 후에는 한국 직장인들의 점심식사를 피할 수 없었고, 거나한 회식도 다시 이어졌다. 여전히 집에서는 도우미 이모와 양가 엄마들의 도움으로 연명했고, 엄마 밥을 계속 먹던 남편에게 여전히 빵은 간식이었다. 그러던 중 올해 코로나 19의 해를 맞이하여 우리 집 식습관은 또다시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내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아이는 학교를 거의 안 가고 도우미 이모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묘하게도 음식이 제일 먼저 내 일이 되었다. 누구 하나 그러라는 사람이 없었는데도. 그러니 어느 순간 나의 주 무대는 부엌이 되어버렸다. 노트북은 식탁에 놓인 채 일 좀 하다가 금방 식재료 마트 검색과 요리법 검색으로 넘어가기 일쑤였다. 


성장기 아이는 계속 먹어야 했고, 남편은 회식이 금지되니 집에 와서 저녁을 먹어야 했다. 게다가 요즘 엄마들은 알겠지만, 아이가 크면서 저녁 학원시간이 정해지고 나면 아이 저녁식사와 아빠의 저녁식사 시간이 같기 어렵다. 아이가 학원가에서 해결하거나 도시락을 싸주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같이 온라인으로 하는 경우에는 결국 엄마는 저녁상을 두 번 차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안 그래도 별 것 없는 나의 메뉴는 동이 나고 "뭐 먹을래" "아무거나" 이 대화는 세대만 바뀌어 다시 반복되었다. 


시대는 바뀌어 택배와 마트 배달이 바로바로 식재료를 조달한다. 다행히 배달음식도 다양해지고, 반조리 재료도 많이 좋아졌다. 나의 요리 능력-이라고 쓰고 요령이라고 읽어야 할 것 같다 - 도 늘었다. 신혼 때처럼 식재료 양을 조절 못하는 일도 훨씬 줄었고, 손질된 소량 재료들을 구입하는 일도 수월하다. 

 

하지만 엄마 세대보다 간단해진 듯한 밥을 하면서, 생각은 더 많아진다. 


부부는 동등하고, 살림과 육아는 돕는 것이 아니라 같이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직장인은 바쁘고 결국 그동안 엄마들의 도움을 받으며 도우미 이모에게 맡겼었고, 이제 출근 안 하는 사람이 전담하는 것에 대해 당연한 듯 자리를 잡아간다. 그렇게 나는 다음 끼니는 뭘 먹을지 혼자 고민하는 엄마세대가 되었다. 나의 식단은 엄마의 음식과는 달리 서양식과 시판 반조리가 섞였고, 여전히 국과 찌개의 깊은 맛을 내기엔 어렵다. 

그래도 아이의 식습관과 성장과 건강은 나의 몫인 것 같고, 남편이 건강하게 회사 업무에 집중하게 할 수 있는 내조 역시 가정의 흥망에 꼭 필요한 것만 같다. 


이 시국이 지나고 또다시 출근하기 시작하면 다시 우리의 살림은 도우미 이모가 전담하고 중국식 계란 볶음이 다시 주 반찬이 되는 걸까.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밥에 자유로운 주부가 될 수 있을까? 사실 세상은 넓고 맛있는 것은 많은데... '밥'에만 얽매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아이가 기억할 추억의 집밥은 무엇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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