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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풀 원섭 May 29. 2023

겸손은 사양한다.

비정상 일기

겸손  :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


당분간은 겸손 중히 사양한다.


겸손 중요성은 살면서 너무 많이 들어 잘 알고 있다. 자기 계발 서적에서, 이제 막 전역한 선배한테서, 회사에서, 밥 잘 사주는 친한 형한테서 그리고 대중매체에서 귀가 닳게 들어왔다.

겸손이 뭐길래 전방위적으로 내 삶을 피곤하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관계의 동물인 인간에게서 겸손이 모든 관계의 미학이며 정수라는 옛 성현들의 공통된 말씀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니겠거니 싶다.


평소 딕션이 좋다는 소리를 많이 들은 나는 '쇼미더머니' 애청자다. 거기서는 좀처럼 겸손한 래퍼를 찾기 힘들다. 돈 자랑, 슈퍼카 자랑, 금목걸이, 금반지, 스웩(Swag) 스웩(Swag) 거리며 본인을 뽐낸다. 우린 그런 래퍼에 열광한다.

너튜브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자가 되는 법, 투자에 성공하는 법 등을 설명하는 다양한 전문가들 역시 처음엔 본인 자랑이다. 당연하다. 본인이 해당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임을 입증해야 말에 설득력을 얻고 독자가 늘기 때문이다.

겸손과 상반되는 래퍼나 유튜버로 대표되는 그들은 겸손하지 않아서 성공했고 더불어 많은 돈을 번다.


지금 시대에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과연 바람직한가?


겸손이 뭔지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하기 위해 그 반대말을 생각해 봤다. 보통은 교만함, 건방짐이 떠오른다. 그러나 최근 겸손의 반대말은 '무지'라는 문장을 봤다. 정말 깊게 동감한다. 책 한 권 읽고 그 분야의 전문가처럼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겸손의 반대말은 교만이 아니라 무지다.

        많이 아는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다.         

                                    - 이동규 교수 <두줄 칼럼> 中 -

                             

위 문장에서는 '무지'의 반대말인 '많이 아는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이를 나의 방식으로 해석하면 '많이 아는 사람'이란 '특정 분야에서 성공한 대가들로 지식, 재산, 명성 등의 성취를 일궈놓은 사람'이다. 또한 이들이 겸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의 성공은 본인 능력 밖의 영역인 주변의 도움, 누군가의 희생 그리고 운(Luck)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이란 것을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위 문장대로 소위 '성공'한 사람들은 겸손해야만 한다.


그런데 나는 어떤가? 30대 중반, 지식, 재산, 명성, 뭐 하나 제대로 이뤄놓은 것 없는 '무지'한 상태의 내가 어떻게 겸손할 수 있을까? 아니 겸손할 필요가 있는 건가? 겸손이 정말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를 낮춰야 하는 덕목이라면, 지금의 난 역설적으로 가장 완성된 겸손을 수행하는 중이다. 왜냐면 스스로를 더 낮추지 못하는 상태까지 이미 낮은 상태이며, 내세울 찾아도 일궈놓은 성취를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겸손까지 강요한다면 내 삶이 너무 비굴하지 않을까?


겸손이 중요한 건 나도 안다. 근데 그건 뭔가를 이룬 그대들이나 하셔라. 공교롭게도 난 겸손을 수행할 조건에 아직 미치지 못하였다. 지금의 난 잘한 건 인정받고, 성과에 보상받고, 업적은 뽐내며 멋지게 성장하는 것이 먼저다.

본인이 힙합씬(Scene)에서 최고라고 뽐내며 겉멋과 허세로 무장하는 모습이 자칫 시청자 입장에서는 불편하게 보일 수 있으나 이는 실력 외에는 아무것도 갖은 게 없는 그들에게, 본인을 대중들에게 증명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지였을지도 모른다.


이동규 교수의 글에서 겸손에 대한 아주 명쾌한 설명이 있어 소개한다.


     "정작 겸손의 핵심은 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남을 높이는 데 있다"


나를 낮추는 건 못하겠다(더 낮출 수 없는 상태이다). 대신 남을 높이겠다. 무지한 나는 아직 겸손할 수 없지만, 상대를 높여 나의 상대적 위치를 낮추는 건 무지한 상태에서도 가능해 보인다.


겸손하지 않기로 결심한 난 겸손하지 않아도 겸손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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