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부문에 근무하는 직원이라면 당연히 부품사업(DS)이나 IT모바일(IM)사업에 대해선 문외한일 것이다. 그러니까 삼성전자 공장 다니며 냉장고 만들고 청소기 만드는 직원한테 갤럭시나 반도체 물어본다고 무얼 얼마나 정확히 알겠는가. 나 또한 그렇다. 해외건설 시장이나 FIDIC같은 계약, 교량이나 터널 시공방법 같은 걸 물어보면 누구보다 잘 설명할 자신이 있지만 아파트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즉, 전혀 문외한이고, 철근 콘크리트로 짓는다는 것 외엔 유사성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수주방식도 도급방식도 완전히 상이하다. 하지만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가정경제를 운영하는 주체로서 어찌되었든 이 바닥은 알아야겠고, 일년 전부터 분양시장에도 가보고 여차 저차 집을 짓는 것도 관여하다 보니 이제는 조금 그 시장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역시 사람은 직접 발품을 팔고 자기 돈을 잃어봐야 학습력은 향상된다.
처음 이 책의 제목만을 보았을 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솔직히 뉴스테이 사업을 눈여겨보고 있긴 하지만 이게 임대시장에 조금 영향을 미칠 뿐, 주택시장 전반에 무슨 큰 변화를 줄 것같이 느껴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헌데 여기 저기 이 책에 대한 서평들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서평들을 읽다보니 과연 범상치 않은 인사이트를 갖고 있는 책임을 알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손에 잡히는 경제’라는 라디오프로에 책의 저자가 인터뷰이로 나왔고, 진행자와의 그 짧은 대화 속에서 깊은 내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불금 퇴근 길, 교보문고에서 기분 좋게 들고 나와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읽으며 나의 그 한줌도 안되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지식을 새삼 깨달아 절망스럽기도 했지만, 이 책을 바탕으로 발품팔고 눈여겨 보다보면, 언젠가 인사이트한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가져본다. 그럼 이 책을 통해 느낀 바를 몇 가지 살펴보자.
저자는 먼저 주택보급률의 맹점을 언급한다. 2009년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었는데, 종종 사람들은 이를 가지고 주택시장은 더 이상 미래가 없음을 언급한다. 하지만 주택보급률은 (주택 수/일반가구수*100)으로 계산되며, 분모인 일반 가구수는 해가 지날수록 늘어가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수치를 제시한다.
“통계청이 2012년 발표한 ‘2010~2035년의 장래가구 추계’로는 한국의 2035년 가구 수가 2,226만1,000이다. 2010년 기준 1,735만9,000가구 대비 약 1.3배 증가하는 수준이다.” p.43
그러니까 인구는 줄어들 지 몰라도 가구 자체는 기존 4~5인 가구에서 1~2인 가구로 분화되어 그 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는 말이다. 분모가 증가하면 당연히 분자도 늘어야 주택보급률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저자는 각국의 인구 천명당 주택수를 제시한다.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1천명당 364호이며, 미국은 410호, 일본의 경우는 473호라고 한다. 흔히 일본의 공실률을 예를 들며 한국 부동산의 미래를 논하곤 하는데, 앞서 언급한 숫자에 따르면 일본 주택 재고량이 인구대비 한국에 비해 130% 가량 된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129.9%=473/364*100) 공급이 월등히 많기 때문에 일본의 빈집 비율이 한국보다 10% 포인트 가량 많더라도, 이를 등치시켜 비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울러 저자는 국내 지역별 인구천명당 주택수를 제시한다. 흥미롭게 전국에서 인구 천명당 주택수가 가장 낮은 곳은 경기도(337호), 그리고 서울(347호)이다. 경북(420호)이나 전남(415호)는 오히려 수도권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주택보급률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아직 우리나라는 여타 선진국에 비해 주택보급률이 낮은 편이고, 서울/경기는 그 중에서도 더 많은 주택공급이 필요한 실정이라는 말이다. (p.50)
저자는 또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독특한 개인을 중심으로 한 민간주택시장을 소개한다. 유럽의 경우 공공주택이 전체 임대주택의 60% 이상, 일본의 경우 임대주택 시장의 70% 가량을 민간기업이 제공한다고 한다. 우리는 종종 뉴스에 나오는 혼자 2천채를 넘게 보유하고 있는 임대왕을 탐욕스럽다 욕하곤 한다. 헌데 한국은 개인에게만 주택을 살 수 있게 한 나라였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집을 살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세를 선호하는 경향도 뚜렷하다. 이쯤 되면 그 많은 집을 가지고 있는 임대인과 전세를 살고 싶어하는 임차인 간, 서로의 니즈가 맞아 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된다. 다음 단락은 곰곰이 생각을 해봐야 하는 부분이다.
“전세가가 매매가의 90%가 넘어가는데도 매수를 하지 않는 세입자는 오히려 다주택자보다 이기적입니다. 주택을 매수하는 데 따르는 세금과 보유하는 데 따르는 세금, 그리고 가격하락의 위험마저 집주인에게 모두 떠넘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p.53
앞뒤 보지 않고 다주택자를 욕하기엔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면 이러한 현상은 그대로 이어질 것인가. 책 제목에서 보여진 바와 같이 지금 우리나라는 뉴스테이라는 민간기업에 의한 임대시장이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즉, 법이 바뀌어 과거 민간’인’이 수행하던 주택임대사업을 일본과 같이 민간’기업’이 실시하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재개발, 재건축 위주의 뉴스테이로의 변화는 정부의 택지개발 정책에도 고스란히 보여지고 있다.
아파트를 지으려면 맨땅에 짓는 것은 아니고 LH공사나 SH공사 등을 통해 택지개발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택지개발을 통해 산과 들을 평평하게 깎고, 주요 간선도로, 지하철의 신설 및 확장, 학교 및 공원, 병원 및 사회복지시설 등 도시기반시설과 공공시설을 확보하게 된다. 헌데 2014년 9.1 부동산 대책으로 LH가 추진하는 신도시 개발사업은 사실상 종료되었다고 한다.
“2014년 9.1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재건축의 연한을 10년 단축한다는 내용과 함께, 택지 공급의 기반이 된 택지개발촉진법을 폐기 결의했다.” p.73
이어서 저자는 통계청자료를 기반한 택지 신규지정 및 공급 도표를 소개한다. 표를 보면 06년 70km2을 넘던 택지 신규지정이 11년에 들어오면서 5km2 채 안 되는 기조로 바뀌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더 이상 정부는 택지개발에 힘쓰지 않겠다는 말이다. 택지개발을 안 한다는 말은 무엇인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내 가구수는 계속 증가세에 있고, 선진국에 비교하면 아직 인구대비 주택의 수는 부족한 실정이다. 힌트는 재건축법 변경에 있다. 여기서 용적률 개념을 조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지가 100평 있다고 치면, 지역별 조례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여기에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건물면적은 60평 이하로 제한을 둔다. 용적률은 이 건물면적이 아닌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물의 연면적 비율을 이야기 한다. (용적률=건축물의 연면적/대지면적*100) 따라서 60평 건물면적을 4층으로 올렸다고 치면 연면적은 240평(=60평*4층)이고, 용적률은 240%가 되는 것이다.(=240평/100평*100) 1990년 초반에 준공된 분당 일산 등의 1기 신도시의 경우 대부분 용적률은 100% 중초반대에 형성되어 있다. 서울시 도시계획조례에 따르면 중고층(층수제한없음) 주택을 대상으로 하는 제3종 일반주거지역의 경우 용적률을 250%까지 설정해 놓고 있다. 따라서 극히 단순화 하자면 용적률 125%짜리 아파트를 재건축하여 250%로 만든다면, 15층짜리 아파트가 30층이 될 것이고, 아파트단지 세대수는 그 두배로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앞서 언급한 250%의 용적률은 2015년 시행된 ‘민간 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으로 뉴스테이의 경우 그 수준이 조금 더 완화되었다.
“즉, 서울시나 지자체 조례로 주거 3종 지역의 용적률이 250%로 되어 있다 하더라도, 국계법에서 300%를 상한으로 하고 있으므로 민간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사업자는 기준 용적률을 300%로 완화 적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p.108
즉, 굳이 큰 재정 들여서 산을 깎고 들판을 뒤짚어 엎고, 도로 및 상하수도, 학교 및 복지시설을 만들기 보다는 기존 도심의 용적률 제고를 통해 주택공급을 하겠다는 말이다. 아울러 이 주택공급을 개인이 하는 방식이 아니라 민간사업자가 주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골자이며, 그 민간사업자는 기존 건설업체가 아닌 부동산펀드나 리츠사업자에 의해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현재 첫번째 뉴스테이인 인천 십정2구역, 광주 누문지역은 스트래튼 홀딩스라는 부동산 전문 자산운용사가 위탁관리한다고 한다. 나는 여기서 이에 따른 LH공사 재무현황이 궁금해 졌다. 흔히 그 막대한 부채를 보유하고 있다는 LH공사는 현재 134.2조원의 부채를 보유하고 있다. (2015년 말 기준 부채비율 376%) 헌데 흥미로운 부분은 앞서 저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수도권 2기, 세종시를 기점으로 대규모 신규 택지개발은 둔화된 상태이며, 그에 따라 부채규모도 2013년 142.3조원을 기점으로 점차 줄어드는 추세라는 점이다. 점차 택지분양을 줄여가고, 현재 보유하거나 개발중인 택지를 완판한다면 그 부채비율도 훨씬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신규택지 조성의 중단은 공기업의 효율적 운영으로 이어지는 측면도 존재한다. 물론 공기업은 공공성을 감안한다면 그 부채비율이나 재무구조로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긴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말이다.
배울 점이 워낙 많은 탓에 주요 이슈를 중점으로 책을 이야기 해봤다. 뒤쪽으로 넘어가면 주택 재건축, 재개발에 대한 좀 더 디테일한 가이드라인도 제시되어 있으며, 2018년 부동산 위기론에 대해서도 저자의 의견이 제시되어 있다. 아울러 서울에 20평 1억 아파트 공급이 가능하냐는 의문, 한국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있는 지 여부 등에 대한 의견도 흥미롭다. 부동산에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읽어보시길 권하는 바이다. 읽다 보면 치열하게 고민하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하는 저자의 번뇌가 느껴진다.
물론 내가 어떤 집을 사야 할지 선택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전세를 살지, 월세를 살 지 리스크를 판단하고 분석하여 선택하는 것도 나 자신이며, 책은 길잡이의 측면이지 아무리 탁월해도 완전히 의지하면 안될 것이다. 다만 부동산 시장은 건폐율, 용적률부터 1,2,3종 전용주거지역, 등 알아야 할 상식이 많고, 각종 법령변경에 따라 파생되는 현상이 상당하다. 부동산 관련 뉴스를 접했을 때 향후 나의 자산관리를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충분히 마중물이 될거라 생각한다. 물론 이 책이 끝이 아니라, 책을 바탕으로 스스로 조례도 찾아보고, 발품팔아 현장 분위기도 느끼며 스스로 내공을 키워야 할 것이다. 그저 어느 전문가라는 양반이 읊어대는 미래론 따위에 휘둘려서는 안될 것이다. 따져보고 그 논리가 내 생각과 일치하는 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공부하고 연구한다고 미래에 부자가 될리야 있겠냐만은, 적어도 사기 당해 망할 일은 없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 해본다.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High Risk-High Return라는 만고의 진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끝.
뉴스테이 시대, 사야할 집 팔아야할 집, 채상욱, 헤리티지,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