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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퀘벤하운 Oct 30. 2016

오지랖의 넓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를 기대하며

초1인 우리 큰아이가 스마트폰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에 딱 하루, 토요일뿐이다. 한 번은 금요일 저녁 회식 때문에 밤 11시 넘어 집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아내와 둘째는 잠을 자고 있고, 초1인 첫째 혼자 책상에 앉아서 숙제를 하고 있더라. 그 광경을 본 순간, 무슨 아내는 초등학생에게 이렇게 혹독히 공부를 시키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알고 보니 큰 애는 일주일에 한 번밖에 없는 귀중한 토요일을 온전히 스마트폰만 하고 싶어 자발적으로 주말 숙제까지 금요일에 다 끝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 봤자 토요일은 여기저기 나와 놀러 다니기 때문에 또 하루 종일 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그다음 날 그 틈틈의 시간 동안 아이는 신나게 혼자 게임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과학 앱도 하며 놀더라. 단순히 밤늦게 공부하는 아이의 모습만 보고 아내에게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말을 건네었다면 아마 갈등으로 번졌을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아내가 하는 일에 토를 달지 않는 편인데, 내가 집에서 아이들을 키울 것 아니면, 내가 그 학부모들 및 아이들 간의 인간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진단은 물론 해결책을 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간혹 스마트폰이 아이의 성장발달에 얼마나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식당 같은 곳에서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부모를 욕하는 경우가 보인다. 하지만 나는 스마트폰을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식당이나 자동차 내에서 수십 분 단위로 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 어렸을 적, 밥 먹으며 TV 보면 머리 나빠진다라는 말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루 종일 TV를 보면 분명 뇌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존재하겠지만, 하루에 한두 시간 본다고 머리가 나빠지진 않는다. 자기가 본 단편적인 사실과 시각의 조합으로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쓸데없는 오지랖의 영역에 해당한다. 물론 공공장소에서 스마트폰의 소리를 크게 키우고 애들에게 겨울왕국 따위를 보여주는 것은 민폐의 영역에 해당하지만, 나에게 피해 주는 바가 없다면 그건 각자 알아서들 할 일이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다 보니 학원을 많이 다니게 된다. 보통 태권도나 피아노 학원 등은 한 달에 15만 원가량 하는데, 기본적인 영어 피아노 태권도에 학교 방과 후 수업만 수강해도 한 달 사교육비 지출액은 50만 원이 훌쩍 넘게 된다. 이게 고학년으로 가면 수학이나 과학, 혹은 청담어학원 등 한 과목에 30-40만 원이 넘는 학원들이 등장하며, 중고생이 되어 과외나 종합반의 영역으로 가면 백 단위가 넘어가게 된다. 물론 사회 거시적 총론의 입장에서 보면 사교육비의 증가는 사회적 문제이다. 하지만 한 아이의 부모 입장에서 보면 남들 다 하는 사교육을 혼자만 안 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비록 친구들은 다 학원에 가지만, 그건 국가적인 관점에서 소모적인 일이야. 방과 후 학습도 다 그거 돈만 낭비하는 거야. 그러니 너는 학교가 끝나는 12시부터 집에 와서 스스로 자습하고 자기주도형 학습을 하던지,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 나가서 혼자 놀던지 하거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나는 12년간 초중고를 다니면서 사교육을 받아본 기간이 통틀어 12개월이 채 안되지만, 이것을 가지고 28년 시차가 나는 아이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저 능력 범위 내에서 아이가 하고 싶다는 게 있으면 시키는 게 부모의 도리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얼마 전 큰 애가 나에게 친구들이 수영을 다닌다고, 바둑을 한다고, 그 학원도 다니고 싶다고 하더라. 물론 가정 예산의 문제도 있지만, 더 이상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 얘는 숙제할 시간도 없고 놀 시간도 없게 될 것 같더라. 그래서 이야기했다.


"00아, 세상에 시간과 돈은 유한한 거란다. 네가 태권도도 하고 싶고, 미술도 하고 싶고, 수영도, 바둑도, 항공과학도, 한자도, 등등하고 싶은 건 알겠지만, 여기서 딱 세 개만 선택을 해야 해. 아빠는 이 모든 학원을 다 보내줄 만한 돈도 없거니와, 이걸 다 다니다 보면 너도 만화영화 보거나 장난감 만질 시간이 없으니."

나는 어려서부터 자기가 스스로 정리할 건 정리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생각한다. 여기서 학원이 1개니 3개니 7개니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각자 가정경제 및 아이의 생활패턴에 맞게 선택하는 게 정답인 것이다. 이걸 가지고 또 옆에서 3개가 많으니, 애가 학원만 다니다 죽겠다느니, 하는 말을 하면 고것은 오지랖이다. 저학년의 경우 생각보다 부모가 보내는 학원보다 자기가 스스로 가고 싶은 학원이 많다.


젊은 사람들은 간혹 이렇게 기혼자 혹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에 대해 오지랖을 넓힌다. 자신이 유치원을 졸업한 지도 어언 20년은 지났겠구만, 그 얼마나 20년 전이 기억나는지 가끔 그 기억력과 판단력에 경의를 표할 정도다. 그런가 하면 미혼이나 자녀가 없는 사람들에게 오지랖을 떠는 경우가 있으니, 명절의 가족 어른들이나 회사의 고참인 경우가 그러하다. 왜 결혼을 아직도 안 하냐느니, 국가의 발전을 위해선 어서 아이를 쑥쑥 낳아야 한다느니, 애가 있으면 얼마나 인생이 행복한지 아느냐부터 시작해서 쓸데없는 오지랖이 너무 많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본적으로 넘들 다 하는 방과 후 학습에 태권도 피아노 수영만 다녀도 사교육비가 인당 50만 원이 넘고, 이게 아이 둘이면 100만 원이 넘게 된다. 여기에 각종 보험료, 통신료, 아파트 관리비, 식료품비, 교통비, 세금, 의복비, 여기다 대출금에 이자까지 하면 월급은 그저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객체일 뿐이다. 맞벌이라면 아이 돌봐주는 분만 구하려 해도 기본 월 200만 원은 발생한다. 이 모든 것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다 지원해줄 요량이 없다면 결혼하라는 말, 아이를 낳으라는 말은 그다지 꺼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물론 나 개인적으로는 아이를 키우며 행복하고, 누가 물어보면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줄 요량은 있지만, 그건 내가 그렇다는 것이지 남도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 큰 성인이라면 그러한 것은 알아서들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으며, 각각 지적 능력이나 재산이나 소득, 그리고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부디 그러한 사실을 모두 망각한 채 자신의 시각만으로 타인을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 혹은 자기 가정은 자기가 생각하고 고민하며 판단해 나가야 하는 것이지, 누군가에게 컨설팅을 받거나 멘토링을 받는 대로 산다 하여 무언가 인생이 장밋빛으로 변해가진 않는다. 조언까지는 받아들일 수는 있겠지만, 피차 스스로 공부하고 판단하는 습관을 가지도록 노력해보자. 나의 인생은 그 상당히 peculiar 하고 unique 하기도 하여, 내가 아니고선 누구도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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