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마음-델핀 드 비강>
2021년 4월 21일(수) 한적한 오전, 공원에서 진행됐던 2021년 BnJ의 제3회 독서모임.
사람은 없었지만 새들의 지저귐 덕에 조금은 소란스러운 가운데 시작됐다.
※ 본 글에는 일부 스포가 포함돼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B: 나는 이거 어제 다 읽었는데, 책을 딱 덮는 순간 마음이 울컥했어.
J: 우리가 나이가 많은 주인공의 책을 한 해에 한 권씩 읽자고 해서 읽고 있잖아요.
B: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읽다 보니까 그랬었지.
J: 맞아요, 이 책을 읽으면서 의도치 않게 또 그런 책을 읽게 됐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어요. 언니는 혹시 이 책을 읽으면서 비교할 만한 책으로 떠올랐던 것이 있었어요? 나는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2020년 12월 독서모임 책)과 비교할만하다고 생각했어요.
B: 아~ 그러고 보니, 나는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2020년 1월 독서모임 책) 그 책 생각나긴 했어.
J: 어? 되게 다른 책을 떠올렸네요?
B: 너는 내용적인 측면에서 유사성을 찾은 것 같고, 나는 언어 유희라는 점에서 유사성을 발견한 것 같아. 이 책에 핵심 화두가 '언어'잖아.
J: 나는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읽으면서 엄청 슬프게 봤다고 했었잖아요? 어떻게 보면 두 책이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풀었는데,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은 노골적인 슬픔인 것 같고, 이 책은 노골적이지 않지만 가슴 한편이 짠해지는 책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책은 남자 작가가 남자 할아버지와 아들, 손자의 이야기였고, 이 책은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교할 만한 하다고 생각했어요.
B: 나는 오히려 그 책(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이 너무 판타지적이라고 생각했었어. 내가 어릴 적 조부모의 치매를 지켜보면서 저 상황을 경험해 봤기 때문인 것 같아. 그런 측면에서 나는 '고마운 마음'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왔었어. 오히려 그래서 더 마음이 쓰였던 것 같아.
J: 맞아. 그때 언니가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이 공감이 안된다고 했던 거 기억나요. 그리고 점수도 되게 짜게 줬었죠.
B: 맞아 그랬었지. 그리고 또 이 책이 마음이 쓰였던 부분이 이 책의 주인공은 편집자였고 어떻게 보면 언어가 이 사람 생에서 '언어'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간단한 것 중에 하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언어'를 잃고 있잖아. 차라리 기억을 잃거나 신체 기능을 잃는다는 가정이었다면 주인공을 대하는 내 마음이 좀 달랐을 것 같아. 근데, 언어를 잃는다는 것이 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하니 좀 남달라 지더라고. 혹시 뒤에 ‘옮긴이의 말’ 봤어?
J: 네. 봤어요.
B: ‘옮긴이의 말’을 보면 이 작가가 쓴 이전 작품들을 비교를 하잖아. 비교하면서 옮긴이가 말하길, 작가가 어린 시절 우리가 겪었던 트라우마가 어떻게 우리에게 남아있는 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적었더라고. 그런데 (작가의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느껴지기로는 (트라우마가) 어떻게 남아있는가 보다 그 뒤의 삶을 어떻게 살았는가가 더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었을까 싶었어. 물론, 어떻게 감히, 내가 유대인으로 살았던 세계 전쟁의 그 어려운 시기를 가늠할 수 있겠냐만은, 그런 시기 었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사람에게 맡겨져서 운 좋게 살아남았고, 엄마의 사촌을 통해서 고국으로 돌아와서 살았고, 비혼으로 살았지만 손녀와 같은 아이를 만났고, 제롬도 주인공을 특별한 관계로 인식하잖아? 마지막도 어찌 보면 소취 한 다음에 생을 마감하잖아. 그래서 그 이후에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살았는가가 중요한 거라고 생각했어. 또 주인공이 마지막에 그 삶을 돌아보면서 ‘고맙다’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그 삶이 얼마나 감사한 삶이었는가 거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할머니의 말실수는 소설을 이끌어가는
의미를 내포할 뿐 아니라, 상징적이기도 하다.
가량 요양병원 입원환자를 의미하는 résidant은
할머니에게는 삶에 당당하게 맞서는 '레지스탕스 résistance'
(할머니는 요양병원을 나치 수용소로 혼동하기도 한다)가 되기도 했다가,
'삶을 체념한 사람 résignant '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을 지칭할 때 사용한다.)이 되기도 한다.
B: 난 이 책 읽을 때 옮긴이의 노고가 굉장했겠다는 생각도 들더라. 처음에 언어를 잃은 실어증 환자라는 것을 모르고 봤다면 전부 오타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점점 언어를 잃어가는 과정이었고, 그 과정을 살펴보면 발음이 음운론적으로 아주 유사한 성질의 것들로 대체되기도 하고, 의미적으로 비슷한 것으로 대체되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바뀌잖아. 분명히 프랑스어와 우리나라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번역하는 과정에서 맥락을 전달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을 것 같은데, 그 부분을 고려해봤을 때 옮긴이가 정말 공을 많이 들였다는 생각을 했어.
J: 나도 번역하는데 진짜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존에 있는 문장을 가지고 온 상태에서 언어유희를 써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잘 번역하고 잘 옮겼다는 생각을 했어요. 번역가가 잘 만든 책이다...라는 생각?
B: 이 안에 있는 언어유희들 때문에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도 생각이 났고, '언어'가 전면에 드러나 있는 소설이지만 이렇게나 다를 수 있구나 싶었어.
J: 책에서, 주인공이 말이 안 나와서 답답해하잖아요?
B: 응. 또 불안해하기도 하지.
J: 근데 주인공이 말이 안 나올 때, 저도 같이 답답한 거예요. 그래서 주인공의 마음이 이런 거겠구나 싶었어요.ㅋㅋ
B: ㅋㅋ나도, 특이 요즘 들어 단어 생각날 때가 너무 많아서 공감되더라고.
J: 나도 그래요. 그리고 이 책에 메인 선율처럼 보이는 주제가 ‘실어증’이잖아요. 그런데 그 안을 보면 단지 실어증뿐만 아니라 한 여자의 삶을 보여주잖아요. 그런 뒷배경까지 우리가 쉽게 느낄 수 있는 책이라서 좋았어요. 그리고 이 작가가 섬세한 작가라는 느낌과 여성스럽게 써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B: 여성스럽다는 것은 어떤 점에서?
J: 문체나, 사건을 다루는 시각이 그렇다고 느꼈어요. 물론 이건 번역책이기 때문에 이 작가가 그렇다고 이야기 하긴 좀 그럴 수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거칠지 않고 따뜻하고 섬세하고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B: 아...!
J: 과거에 유대인으로 살았던 어린 시절도 거칠고 투박한 기억이 아니라 그것 또한 부드럽게 다룬 것? 그 사건을 거칠고 어둡게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그 일도 따뜻하고 부드럽게 쓱~ 쓱~ 써진 느낌?
B: 맞아, 그런 느낌이야. 그리고 여기서 우리 감정이 어두운 사건에 가려서 밑으로 가라앉지 않는 건, 내가 아까 말했던 '트라우마 이후 어떻게 살았는가'랑 연결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부모님이 자신을 찾으러 오지 못하고 결국 사망하잖아. 그런데 그 과정을 또 가스실에 끌려가고, 강제 수용소에 끌려가고 하는 식으로 아주 처참하고 참담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그때 나를 받아줬던 그 부부를 찾고 싶다’가 주인공의 염원이잖아. 부모님의 원수를 찾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때 나에게 삶의 기회를 줬던 그 이름 모를 부부를 찾고 싶다, 내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엄마의 사촌을 통해서 들었던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을 찾아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여기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는 거잖아. 그래서 과거의 트라우마보다는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 아마 네가 느끼는 감정선과 맥이 닿는 이야기였던 것 같아.
J: 언니 혹시 기억나는 문구나 구절 있어요?
B: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매주, 아니 거의 매주, 손실과 손상 손해를 입는 것이다. 이게 내가 이해한 바이다.’ 그 맥락에서 ‘때로는 상실이 남긴 허무를 책임져야만 한다.’ 이게 앞의 내용은 주인공 할머니의 입장이고, 뒤의 내용은 제롬의 입장에서 이야기한 것인데, 그 둘의 입장이 서로 다르고 마주하고 있는 방향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맥이 통하는 느낌이 들었어.
J: 나는 ‘말들은 상처를 입혀요. 욕설, 모욕, 빈정거림, 비난, 질책은 흔적으로 남아요. (중략) 그러고 나면 저 자신에게 신뢰를 가지기가 어려워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가 힘들어요.’ 나는 이게 공감이 갔던 게, 누군가 나를 질타하면 대부분은 질타를 한 사람을 미워하기보다 나 자신을 미워하는 쪽을 선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질타하고 비난한 사람이 이상한 것인데, 우리는 나의 잘 못으로 질타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거죠. 그래서 말이 남긴 상처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무너지게 만드는 것 같은데 , 그런 생각을 잘 정리한 문장 같았어요.
B: 9.1
J: 7.9
B: 7.9? 너무 짜다...
J: 난 이게 나쁜 책이나 안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내 스타일이 아니야... 나 이렇게 따뜻한 책 안 좋아하거든요. 따뜻하고 아름다운 책을 개인적으로 안 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7.9! 어둡고 좀 파괴적인 그런 내용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B: 휴...
J: 델핀 드 비강의 마음 시리즈가 총 3권이 있다고 했잖아요. '고마운 마음' 이전에 ‘충실한 마음’이 있었고, 그다음에 한 권이 더 있을 거라고 하는데 나는 이 세 권을 다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B: 응. 나도 다른 책들이 궁금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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