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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다란고양이 Aug 23. 2023

고객센터의 쳇바퀴 같은 하루 2편

나를 지우고 비우는 곳

고객센터의 점심은 그렇게 낭만적인 것 같진 않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처음 고객센터 근무를 했던 13년 전에는 점심시간 한 시간을 모두 사용할 수는 없었다.

보통 로테이션으로 가는 점심시간에는 콜이 몰리는 시간이기 때문에

40분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직장인은 11시 30분부터 13시 30분 사이에

점심 식사를 하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맞추어 고객센터에 전화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요즘처럼 챗봇이나 사이버상담보다는 전화가 더 확실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점심시간이 40분이라는 말을 들은 친구들은 늘 묻곤 했다.

그럼 20분은???

경우에 따라 OT 수당으로 주기도 하고

추가적으로 쉬는 시간을 부여하여 대체를 하기도 하지만

거의 OT 수당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고객센터 성격상 쉬는 시간이 자유롭지 않아 순서대로

휴식시간을 진행하는데 거기에 추가로 20분을 부여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점심시간 전에 전화가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점심시간 전에 장시간 콜을 받게 된다면

점심시간은 안드로메다로 보내야 하는 순간도 있게 된다.

그럴 때에는 점심시간을 보전받을 수도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점심 전, 퇴근 전에는 전화를 안 받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안 받을 순 없다.

콜은 밀려들어오기 때문이기에.


우여곡절 끝에 얻은 40분이라는 시간은

바깥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시간,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고 받는 시간,

그리고 먹는 시간을 고려했을 때 다다른 결론이 있다.

외부에서 먹는 건 일단 제쳐야 점심시간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


출근할 때 편의점에서 라면이나 김밥을 사 오거나

집에서 도시락을 싸와서 먹는 것이 점심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나 또한 도시락을 쌀 시간도 여유가 없었기에 그냥 맘 편하게 편의점에서 사 먹는 게 나았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편의점 도시락으로 한 끼를 때우는 것은 매한가지 같다.

나의 형편도 그리 좋아진 것 같진 않아 슬퍼지기까지 한다.


오전 내내 고객에게 욕을 먹으니 배가 부를 것 같지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하루 종일 말을 하다 보면 점심시간엔 뭐라도 넣어야 퇴근까지의 남은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자리에 앉으면 고객에 말이 자장가처럼 들릴 때가 꽤 많다.

실제로 나는 전날 과음을 하고 잠을 못 자고 출근했을 때 자주 일어났다.

오전 근무는 겨우 버티더라도 점심 후에 오는 식곤증은 무시할 수 없는 커다란 난관이었다.

가끔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 말도 안 되는 말을 할 때에 그런 일들이 발생한다.


상담은 끝났는데 내가 대체 무슨 상담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나는 경우가 있다.

상담이 시작되어 결론을 냈고 해결은 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 기이한 상황이 펼쳐진다.


그럴 때마다 녹취콜을 들어보면 내 목소리지만 내 목소리 같지 않다는 생각도 꽤 들게 된다.

물론 상담은 정상적이었고 응대도 잘했기에 혹시나 하는 걱정이 안도로 바뀌어 다음 고객을 맞이하게 된다.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며 해결도 하고 뿌듯해하기도 하고,

미해결 된 내용으로 벽에 부딪혀 가면서 기계가 된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고객센터에서 지나친 불친절이 아닌 이상 너무 낮은 평점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늘 고객에게 친절해야 하는 고객센터 직원이라지만,

항상 친절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늘 맡은 일을 제대로 처리해야 하는 직장인들도

항상 완벽한 업무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들도 본인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이 사람 오늘 좀 지쳤나 보다.

오늘 많이 힘들었나?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하루 종일 고객들과 시달리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퇴근으로 향하게 된다.

그렇게 고객들과의 대화에서 나의 감정을 지우고 나라는 인격체를 지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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