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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이 Jun 05. 2024

종로 거리 위 노숙자의 삶이 곧 당신의 삶이라면?

600일의 기


 내가 일하는 을지로 주위에는 걸인이나 노숙자가 많다. 강남에서 일할 때는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다. 바닥에 바짝 엎드려 구걸하는 사람도 있고, 온 온몸을 면이나 테이프로 둘둘 감싸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도 있다. 처음 보면 깜짝 놀랄만한 광경이지만, 몇 번 보고 나면 그냥 좀 독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길에서 충격적인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걸인이나 노숙자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종로 3가 대로변에서 길 위에 앉아 홀로 술을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오늘 하루 좋지 않은 일이 있으셨나?’라고 생각하며 지나갔다. 하지만 길 위에서 술을 마시는 모습을 하루 이틀 보며, 그게 그의 삶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나는 그 사람에게 호기심을 느꼈다. 횡단보도 신호를 대기하거나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 그 사람을 유심히 관찰해 봤다. 옷이 깔끔하고 머리도 떡지지 않았다. 외형적으로 볼 땐 노숙자 같지 않았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 가끔 그 사람 앞에 주차된 폐지 가득한 리어카를 보면, 아마 폐지를 주워서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추측을 한다. 그는 소주를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안주 없이 깡소주를 마시는 걸 즐기는 듯하다. 또한 그는 미디어를 사랑한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엔 늘 스마트폰이 있다. 스마트폰을 안주 삼아 홀로 고독한 술 상을 즐긴다. 그가 주로 보는 채널은 야구와 뉴스다. 가끔 유튜브나 게임 방송도 보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가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 사람 주변에 빈 병이 늘어져 있는 걸 본 적이 없다. 술자리 매너는 괜찮은 편이다. 나는 그가 술에 취해 행인들에게 추태를 부리거나 시비를 거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는 그저 술을 마시거나, 잠을 잘뿐이다. 먹거나 자거나. 그는 딱 그 두 가지만 한다.



 내가 그 사람에 충격을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 삶이 3년 전 내 모습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리어카 대신 승용차를 끈다. 폐지를 줍는 대신 컴퓨터를 두들긴다. 업무를 마친 후에는 눕는다. 그는 바닥에 누웠고 나는 쇼파에 누웠을 뿐이다. 그리고 술을 마시며 스포츠 경기를 본다. 그는 야구를 보고 나는 축구를 본다. 그는 뉴스를 보고 나는 신문을 본다. 나의 인생과 그의 인생은 수단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큰 충격이었다.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내 삶이, 길거리에서 신문지를 깔고 깡소주를 마시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내 마음속 깊은 곳이 불편해졌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퇴근하는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이 불편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진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것이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10억짜리 아파트에 살며, 제네시스를 몰고 출근하고, 비싼 브랜드 의류를 입는 삶은 성공한 삶인가. 그 삶은 종로 3가 거리 위 이 사람의 삶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 둘의 다름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종로 3가 거리 위에 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 답을 얻었다. ‘자신의 삶의 의미에 대해 설명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게 내가 구한 답이다. 우리는 스스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인식하고, 그 삶의 의미와 목표에 대해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왜 굳이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냐면, 우리는 자신이 이해한 것만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이해하지 못한 것과 같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삶의 목적과 존재의 의미에 대해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이야기는 재밌을 수도 있고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재미나 농밀함이 아니다. 재미가 없어도 괜찮고 지루해도 상관없다. 그저 설명할 수만 있다면 모두 다 괜찮다.



 생각을 말로 설명하는 데에는 글쓰기만한 것이 없다. 머리로만 이해되는 것들도 글로 정리하고 나면 눈앞에 그림으로 그려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많은 것을 글로 남겨야 한다. 우리 삶의 많은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가볍게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나아가 우리의 인생의 모든 순간을 기록하는 습관으로 발전시키자. 일기를 쓰자는 거다. 일기의 내용이 반드시 특별할 필요는 없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비슷비슷한 기록이 이어져도 상관없다. 일기를 쓰는 초기에는 한동안 같은 느낌의 글만 쓰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괜찮다.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쓰자. 그것은 절대 영원하지 않다.



 생각하고 글로 쓰는 행위가 습관이 되면, 우리의 인생은 반드시 달라진다. 보는 눈과 생각하는 수준이 변화한다. 그럼으로써 쓸 거리가 더욱 많아지는 윈윈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 삶에서 느끼는 가치의 양이 증가하고 많은 순간을 인식하는 힘의 커진다. 삶의 해상도가 올라 선명하고 다채로워진다. 글과 삶은 서로 만나 시너지를 만든다. 우리를 성장시키는 양분이자 열매가 된다. 발전을 위해 글을 쓰고 발전에 대해 글로 쓴다. 글쓰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그 안에 있다.






오제이의 <사는 게 기록> 블로그를 방문해 더 많은 아티클을 만나보세요.

https://blog.naver.com/abovethesur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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