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에 발사믹 식초를 한 숟가락 떠서 야무지게 한 입에 꿀꺽 먹었다. 그 모습을 본 신디 님이 조용히 웃는다.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멋쩍어져서 왜 웃는 거냐고 물어봤다. 그녀는 내가 너무 꾸준해서 신기해서 웃었다고 했다. 그 냄새 나고 새콤한 걸 매일같이 몇 년 동안 먹고 있는 모습이 재밌었나 보다.
책에서 읽은 건지 그냥 귀동냥으로 들은 건지, 발사믹을 먹으면 혈당 조절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먹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정확히 세어보지 않아서 얼마나 된 지 가늠이 잘 안되지만, 2년은 거뜬히 넘은 습관이다.
하루에 두 끼씩, 식사를 할 때마다 식전에 한 스푼을 먹는다. 한 번은 올리브유도 함께 마신 적이 있었는데, 올리브유는 마실 때마다 속이 좀 불편해서 한동안만 먹고 말았다. 하지만 발사믹은 단맛이 돌고 풍미도 좋아서 꾸준히 먹을 수 있었다. 왠지 와인을 마시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발사믹 때문에 건강해졌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플라세보효과 정도는 있었지 않나 생각한다. 발사믹을 먹기 전과 후의 내 모습이 너무도 달라진 탓에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이 나를 못 알아보고 지나친 적도 있었다. 물론 그건 발사믹 덕이라기보단 그동안 식습관과 운동 습관이 달라진 것이 주요할 테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는 현재 몸 상태가 무척 좋아서 20대 때보다 훨씬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 정신뿐만 아니라 근육량이나 체지방량도 월등히 좋아졌다. 피부가 깨끗해졌고 눈빛도 더욱 또렷해졌다. 이보다 좋았던 시절이 있을까. 나는 지금, 가히 인생에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모양이다. 이렇게 좋은 몸 상태인데도 더 건강해지고 싶고 더 날렵해지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여기서 무얼 더 하거나 빼면 건강이 더 나아질까. 따로 시간을 내 피트니스센터에 가고 싶지는 않다. 지금 생활 패턴에 그 정도 시간을 추가할 여유가 없다는 핑계에서다.
현재 내 여건에서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던 가운데, 유튜브 지식 채널에서 내게 딱 어울리는 운동을 발견했다. 계단 오르기가 바로 그것인데, 한때 도전했다 무릎에 통증이 생겨 포기했던 기억이 있는 운동이다.
이번에는 뭔가 다를 거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채널에서 운동을 알려주시는 교수님이 워낙 평판이 좋은 터라 무슨 말을 해도 믿음이 가서다. 요즈음에는 댓글 민심이 그 사람의 이력보다 더 신뢰도가 높은 세상이다. 그 와중에 교수님의 영상은 같은 채널의 다른 영상에 비해 조회수부터 남다르게 높았고 댓글에는 긍정적인 피드백이 가득했다.
사실 교수님의 원격 코칭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얼마 전에도 그 교수님이 알려준 스트레칭 방법으로 톡톡히 효과를 봤었다. 숙련된 조교를 옆에 두고 자세히 원리를 설명해 주셔서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덕분에 의자에 앉거나 침대에 누웠을 때 허리가 뻐근했던 현상이 많이 개선됐다.
나는 머리로 이해해야 몸이 움직이는 타입이다. 당연히 수영이나 자전거처럼 이론만으로는 안 되는 것도 많다. 하지만 난 이론을 빠삭하게 알고 있으면 이론 없이 그냥 부닥쳐 시도할 때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완벽한 자세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전자제품을 사면 꼭 설명서를 읽는다.
그렇게 영상을 공부하다 싶이 시청했다. 장면 별로 화면을 저장해 필기하며 분석했다. 누가 보면 무슨 자격증 공부라도 하냐고 물었을 테다. 공부를 충분히 한 뒤, 나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 한 걸음은 한 층이 됐고, 한 층은 곧 4층, 6층, 10층 높이로 성장했다.
나는 요즘 매일 점심 10층 높이를 오른다. 식사를 마치고 손목시계에서 타이머가 울리면 자동으로 엉덩이를 뗀다. 처음에는 대단하다고 치켜세워주던 동료들도 이제는 당연하듯 다녀오라고 인사를 건넨다.
대단한 것을 당연함으로 만드는 것, 그것은 꾸준함에 답이 있지 않을까.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오제이의 <사는 게 기록> 블로그를 방문해 더 많은 아티클을 만나보세요.
https://blog.naver.com/abovethesurf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