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종합복지관의 이용자들과 함께 연극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보조강사 역할을 맡았는데, 복지관에 드나드는 일이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가 되었다. 복지관이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터라 나는 여기 온 김에 오전에 좀 더 일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었다. 마침, 복지관 옆에 수영장이 딸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길로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공고를 살펴보니 최신 게시글로 오전반 수영 강사를 구인하는 글이 떡하니 있는 게 아닌가!
당시에는 이렇다 할 강사 경력도 없고 라이프가드 자격증 달랑 하나 소지한 게 전부였지만,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냉큼 지원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경력이나 지도 경험이 전무했던 터라 지원서에는 수영에 대한 애정을 피력하면서 이를 지도하는 회원분들에게 고스란히 전하겠다는 이야기를 아주 간곡하게 서술했던 기억이다.
나의 철모르는 간곡한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며칠 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지역번호로 시작하는 그 번호가 왠지 수영장에서 오는 번호일 것 같은 짙은 예감이 들었고, 전화를 받았을 때는 수영장 팀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렇게 길게 지원서를 쓰신 분은 처음인데, 면접 일정 언제가 괜찮아요?”
‘저의 수영에 대한 마음이 실은 훨씬 더 많은데 지원서에는 정말 일부만 썼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초면에 주책인 것 같아 가능한 일정 몇 개를 담백하게 대답했다. 팀장님도 제안한 일정이 괜찮다고 해 금세 면접 일정이 잡혔다. 처음에는 당연히 ‘서류 면접은 내가 통과하는 게 맞지’하고 스스로 자부하게 되었는데, 만나서 도대체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지어낼 수 있는 얘기도 마땅히 없고, 당찬 포부만 늘어놓자니 10초 안에 모든 대답이 끝날 것 같고, 그렇게 생각하니 머릿속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 얼른 내가 좋아하는 수영장에 가서 머리를 식혔다. 그런데 오늘따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신체 부위 하나하나가 물속에서 세밀하게 느껴지는 것 아닌가! 수영을 좋아하는 사람에서 수영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려고 하니 몸 마디마디가 선명해지는 느낌이 들고 지금보다 더 자세를 정교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마음에 욕심이 들면 물속에서는 가라앉기 십상인데, 물 밖으로 내뱉는 호흡 앞으로 욕심 한 뭉치까지 보태어 뱉어내니 다행히 그날은 잘 뜨는 것 같았다.
‘그래, 없는 걸 지어내기보다는 좋아하는 수영을 어떻게 가르치고 싶은지만 간략하게 말하자’
드디어 면접 날 수영팀 사무실에 도착했다. 겁 없이 지원서를 낸 것도 나인데, 막상 가르치려는 사람이 되려고 하니 문 앞에서 긴장하는 사람도 역시 나였다. 문을 두드리고 조심히 문을 여는 순간 전화 통화를 한 팀장님은 왠지 보이지 않았고, 사무 업무를 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가볍게 눈인사만 하고 팀장님이 어디 있는지 찾으려고 했는데,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서로를 알아보면서 “야, 너가 왜 여기서 나와?” 고등학교 동창 미현이었다. 예기치 못한 만남에 반가우면서도 벙찌는 사람이 되었던 사이에 팀장님이 등장했다. “미현쌤, 둘이 아는 사이?” 팀장님이 묻자 미현과 나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보니 미현도 자신이 강사로 일하는 시간대에 새로운 강사가 오늘 면접을 본다고 해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미현과의 갑작스러운 만남은 잠시간 미루고 나는 팀장님과의 면접을 위해 옆에 있던 작은 방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