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옆으로 간다. 옆으로 가다 보면 수영장에 다다를 것이다. 옆으로 옆으로 향하면서 오늘 상급반 분들과 함께하고 싶은 훈련 프로그램을 설정해 본다. ‘저번에 접영을 좀 안 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접영을 넣어볼까?’, ‘풀부이를 끼고 스컬링하는 건 좀 지루해하시는 것 같은데, 그래도 해놓으면 수영에 도움이 되는데 어떻게 재밌게 해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것들을 떠올린다. 지하철 옆 사람의 고개가 내 쪽으로 기울더라도 나는 딱히 괘념치 않는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상급반 회원분들을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이제는 옆이 아니라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25m 전방에 있는 벽을 터치하고 다시 이곳으로 오는 것이니까!
몇 번 만나지 않았지만 이제 상급반 회원분들의 수영 성향과 이곳에 흐르는 질서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상급반 회원들은 운동량이 그리 많은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오전에 딱 적당한 정도의 운동을 하고서 일상을 시작하는 것이 이들의 주요 과제인 것이다. 너무 많은 운동량은 예상하지 못한 피로의 변수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가급적 삼간다. 꼭 수영장 안에 운동량 바로미터가 있는 것처럼 조금이라도 운동량이 넘치려고 하면 그들은 거절의 의사를 표현하기도 하고 벽에 기대어 쉬기도 한다. 더 운동하면서 만날 수 있는 도파민의 세계로 초대하고 싶었지만, 힘들어하는 이들의 모습을 외면하기란 초보 수영 강사로서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는 철저히 순서가 있다. 더 이상 올라갈 수 있는 반이 없기 때문에 상급반에서 짧게는 2년, 길게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수영을 해온 이들이다. 서로의 수영 속도와 체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1번부터 끝번까지 동일한 순서로 매 수업 시간을 맞이한다. 오늘 누가 수업에 빠졌나 싶으면 쉽게 헤아릴 수 있는 것도 순서 덕분이다. 누군가는 이들을 고인물이라 쉽게 얘기할 수 있겠지만, 내가 바라본 그들은 정해진 순서에 입각해 끊임없이 흐르는 물에 더 가까웠다.
그중에서 ‘수중진담’이라는 수모를 쓴 회원이 우리 상급반에 있다. 다른 수모도 분명 갖고 있겠지만, 그는 늘 그 수모를 쓰고 수영장에 나온다. 나 역시도 취중진담은 잘 믿지 못하는데 수중진담은 믿는다. 수영으로 맺어진 이야기와 인연이 얼마나 끈끈한지에 대해서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는 다른 수영장을 다니다 이곳 수영장이 만들어지면서 건너왔다고 한다. ‘수중진담’ 수모는 이전 수영장에서 맞춘 단체 수모라고 일러주었다. 지쳐 있는 기색이 역력할 때에도 모든 수영에 최선을 다하면서 벽을 박차고 출발하는 그이다. 중간중간 힘에 부쳐 속도가 느려지는 구간도 있지만 그래도 앞 사람과 뒷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수중진담’ 수모를 쓸 수 있는 자격에 대해 생각한다. 수업이 끝나고 짧은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특유의 좋은 목소리로 딱 필요한 말만 건네는 그이다. 진짜 진담가의 여유를 아침마다 마주하는 일은 나로서도 퍽 즐거운 일이다.
수영은 생활이라는 단어와 자주 맞닿는다. 생활 수영이나 혹은 수영 생활이라는 말로 말이다. 생활이 수영 앞에 위치해도 좋고, 뒤에 위치해도 어쩐지 든든하다. 수중진담 회원님을 포함해 상급반 회원분들과 같은 시간에 있다 보면 생활의 두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같은 수영장에서 몇만 번의 스트로크를 수영장에 흩뿌려놓은 사람들, 물은 이내 이들이 지나간 길을 감추지만 그들이 지나온 길은 감춰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활이라는 숭고한 단어와 함께 나에게 밀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