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사이드에 초급반 회원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 무얼 할 건지 아는 사람들처럼 표정부터 예열돼 있다. 입술을 질끈 깨무는 이도 있고, 양 볼에 잔뜩 힘을 주는 이들도 있다. 시작 구호와 함께 일제히 발차기를 힘껏 차면서 수영장에 각자의 파도를 일으킨다, ‘솨~아’하는 소리가 반복해서 울리는 풍경은 초급반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자 그만’하는 강사의 지시에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격하게 숨을 돌린다. 역시 파도를 일으키는 일은 인간이 짊어지기에는 버거운 일일 수도 있겠다. 이제 두 번째 발차기를 찰 때는 내가 좀 더 개입한다.
“너무 세게 차려고 발의 힘을 주지 말고, 물의 흐름을 느끼면서 차셔야 해요. 무릎을 너무 굽히지 말고, 살짝 편 채로 다시 한번 차볼게요.”
우리가 지상에서 뛰거나 자전거를 탈 때는 무릎이 자주 접혔다 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추진력이 발생하는데, 우리는 어딘가로 이동하고자 할 때 무릎을 접혔다 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물에서는 무릎을 최대한 덜 사용하는 것이 좋다. 물의 흐름과 신체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무릎이 은근슬쩍 접히는 것은 괜찮지만, 발에 힘을 줘서 의식적으로 무릎을 크게 접혔다 펴는 일은 저항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수영에서는 지양해야 한다.
두 번째 발차기를 시작할 때에는 한 사람씩 발을 잡아가며 물속 부드러운 움직임을 유도한다. 발에 너무 많이 힘이 들어간 회원들에게는 힘을 빼라고 설명하지만, 힘이 이미 많이 들어가 있는 다리의 힘을 빼는 일은 여간 쉽지 않다. 주사실에 들어가면 간호사 선생님이 주사를 몸에 넣기 전에 힘을 빼라고 하지만, 맘처럼 힘을 빼는 것이 어렵지 않나? 내가 시도하는 방법은 그의 발을 양팔로 잡고 세차게 흔들어 주면서 힘이 빠질 수 있게끔 초기화 상태로 돌려놓으려고 한다.
이미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체적으로 특유의 친밀감을 수영장에서 내뿜는 회원들도 있지만, 대체로 많은 초급반 회원들의 경우에는 물과의 만남이 정도는 다르지만 낯선 경우가 대부분이다. 풀사이드에 앉아 종아리까지만 담근 채로 발차기하는 일은 그나마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지만, 물에 몸을 담그거나 띄우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물과의 만남이 낯설어진다. 차가우면서 잡히지 않고, 공기에서의 소리는 삽시간에 휘발된 채 호흡 또한 불편해지는 이곳에서 우리는 수영을 한다. 유리잔에 담긴 물을 마실 때는 물은 공간이 되지 않지만, 사각 수조에 가득 담긴 물에 몸을 담그기 시작한 순간 물은 냉정한 공간이 된다.
몸이 물을 만나면 말을 듣지 않는다. 여기에서 몸과 말은 내가 주체인 영역일 것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고, 내가 의식할 수 있으며, 나를 실감하게 되는 곳이다. 그런데 물을 만나면 내가 도통 주체가 되기 힘들어진다. 끊임없이 흐르고 넘실대며 중력에 반하는 이곳에서 내가 땅에서 이룩했던 질서는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한결 가벼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몸과 말이 흐트러진 새로운 공간에서 빚어진 ‘나의 가벼움’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가벼움을 가여워하는 대신 손 위에 잠시 내려앉은 솜털처럼 소중하게 감싸안으며 대해야 한다. 무게를 상징하는 질서가 사라진 곳에서 나는 나의 가벼움과 함께 물을 오롯이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