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슈트가 도착했다. 한동안 임시로 레시가드를 입고 강습했는데, 오늘부터는 몸에 꼭 맞는 슈트를 입게 되었다. 미현이 수영장 귀퉁이에 있는 온탕에서 슈트를 불려 입으면 몸에 쏙 들어간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처음에는 그것도 모르고 건조한 몸으로 낑낑대며 홀로 씨름했는데, 미현의 말대로 온탕에 슈트를 두니까 틈이 천천히 벌어지더니 쉽게 입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수영장 구석에 이런 온탕이 있는 줄 몰랐는데, 슈트를 착의하러 가게 되면서 온탕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상급반 회원분들이 수영 시작 전 몸을 따뜻하게 데우는 웜업 공간이었다.
아침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온 회원들은 온탕에 나란히 앉아 있다. 눈은 지그시 감고 있지만 입과 귀는 열려 있는 상황, 본격적으로 운동이 시작되면 얘기를 나누기 어려우니 천천히 대화의 물꼬에 물꼬를 잇는다. 어제 운영하는 고깃집에 손님들이 많이 와 힘들어서 오늘 수영장에 오기 싫었다는 얘기, 아들이 군대 휴가를 나와서 어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온 얘기, 어깨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오늘은 수영을 좀 살살 해야겠다는 얘기 같은 것이 나른한 온도 속에 오간다. 옛날 마을에서는 우물가에서 안부 인사가 오가고 소문이 퍼져나갔다고 하는데, 여기에서는 물을 길어 올릴 일은 없지만 아마도 우리 수영장 귀퉁이의 온탕은 우물과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실내 수영장에 여러 곳을 다녀온 적이 있다. 대체로 건식사우나처럼 체난실이 수영장 내부에 딸려 있는 곳이 많았는데, 차가운 수영장에 입장하기 전에 수영인이 체온을 어느 정도 예열하면서 몸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곳처럼 느껴졌다. 몸을 따뜻하게 하면 수영 중 발생할 수 있는 근육 경련 등을 예방할 수 있는데, 사람들 시선 속에서 준비운동을 하는 게 꺼려질 수 있는 내향인들에게는 체난실에 가만히 있는 것이 어쩌면 자신에게 맞는 예열 방법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수영장의 온탕이 문득 생각났다.
또한, 수영장 내에 급수 문화와 휴식 문화가 발달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수영 중간에 급수를 할 수 있게끔 급수대가 비치돼 있거나, 자신의 물통을 둘 수 있는 칸막이 서랍장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리고 풀사이드 옆으로 벤치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우리나라는 수영 도중에 쉬려고 하면 레인 구석에서 잠시 숨을 돌리게 되는데, 일본 수영장은 수영장 밖으로 나와 벤치에서 아예 휴식을 취하는 것을 공간 차원에서 권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수영장 레인은 운동하는 공간, 수영장 바깥쪽은 휴식이나 급수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철저히 구별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온탕으로 말미암아 일본 수영장의 시설들로 잠시 건너가게 되었는데, 종목을 막론하고 생활 체육을 하다 보면 동네를 새롭게 실감하게 되고, 체육인 시점에서 내가 사용하고 있는 시설에 대해서 면밀히 살펴보게 된다. 다른 동네에 멋진 시설을 보게 되면 우리 동네에도 이러한 시설들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면서, 동시에 우리 동네의 자랑거리를 떠올리며 깊은 애향심도 솟구치기 마련이다. 아마도 우리 수영장 귀퉁이에 있는 작은 온탕도 상급반 회원들을 포함해 이 동네 수영인들의 자랑거리일지 모른다. 온탕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며 오늘의 수영도 멋지게 소화해 줄 수 있는 힘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