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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영강사k Oct 27. 2024

리듬과 밸런스

 킥판에 기대 있던 시간과는 잠시 이별하고 이제 팔동작과 발차기를 합치는 자유형 콤비네이션 시간이 마침내 당도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기다린 상대를 만났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의욕을 보이는 회원도 있고, 지레 겁을 먹어 물안경 너머로 눈가가 촉촉해진 회원도 있는 반면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영문도 몰라 ‘여긴 누구 나는 어디’ 표정의 회원도 마주하게 된다.

 사실 자유형은 영법이 아니다. 다른 영법들 배영, 평영, 접영은 영으로 끝나는 데 반해 자유형은 형으로 끝난다. 그것도 모양 형形이 아니라 모형 형型이다. 형식에 제한이 없음을 뜻하는 말로 실제로 자유형 경기 종목에서 수영 선수는 어떤 영법을 구사해도 상관이 없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자유형이라 생각하는 영법은 크롤 영법이다. 팔을 세차게 휘두르면서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는 크롤의 멋진 동작이 그것을 자유형으로 부르고 싶은 마음이 든 건지도 모르겠다.

크롤 영법은 모든 영법 중에 가장 빠르다. 그렇지만 지금은 속도보다는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야 한다. 따로 익힌 팔동작과 킥 동작을 합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슬로우 모션으로 차근차근 배운 팔동작과 파도를 일으킬 만큼 빠르게 찼던 발차기를 갑자기 만나라고 하는 것은 낯선 일일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호흡 리듬까지 신경 써야 한다. 우리가 산소가 풍부한 지상에서는 자신의 호흡 리듬에 대해서 딱히 신경 쓰면서 살지 않는데, 물에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서 헤엄을 치기 때문에 반드시 적절한 타이밍에 호흡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이다.

 동작 하나만 익힐 때는 다른 것 신경 쓸 필요 없이 한 동작에만 집중하면 됐는데, 손과 발, 더군다나 호흡까지, 이 모든 것들을 자신만의 리듬과 템포로 자유형을 구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대체로 호기롭게 벽을 차고 나간 이들도 이내 두 스트로크 정도 가게 되면 잔뜩 물을 먹고서는 강사인 내 쪽으로 원망의 시선을 보낸다. 원망의 시선을 받았으니 내 쪽에서도 사인을 보내는 것이 인지상정.


“한 번에 너무 많이 가려 하지 말고 한두 스트로크만 하고 잠시 쉬어도 괜찮으니까, 자신만의 리듬을 느껴보세요.”


 아무런 부력 도구 없이 자유형과 함께 수평의 상태로 물속의 세계로 접어드는 것이다. 물속은 물 밖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다. 낯선 공간에서의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경험이 물속에서 빚어진다. 나의 불편함을 지속해서 응시할 수밖에 없다. 내가 편해질 수 있는 리듬에 대해서 천천히 생각해 보지만 물속 리듬과는 아직까지 덜 친한지라 고개를 물 밖으로 세차게 들어 올리면서 살려고 든다.


“너무 고개를 많이 들게 되면 자유형의 밸런스가 흐트러질 수 있어요. 최대한 수면 가까이로 고개를 든다고 생각해 보세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면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삶 쪽으로 어떻게든 붙으려고 할 것이다. 고개를 세차게 든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반항이자 삶에 대한 의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수면이 삶과 삶의 경계라면 좀 더 낫지 않을까? 물 밖과 물속 모두 삶으로 해석된다면 수면이 경계처럼 느껴지는 게 아니라 일종의 회전문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부드럽게 물 밖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다시 물속으로 고개를 지그시 돌리게 되는 상황, 실제로 수영할 때 물 밖에서 숨을 들이마시는 것만큼이나 물속에서 숨을 내쉬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물속에서 조급함 속에 빠르게 숨을 내쉬지 않고 여유롭게 자신의 숨을 물속에 불어넣는다면 자유형의 밸런스는 근사하게 직조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밸런스를 완성하는 단계가 아니라 알아가는 단계인 점도 분명히 한다. 강사의 몫은 밸런스 잡힌 자유형에 대해서 회원들이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끔 충분히 설명하는 것 정도에서 끝난다. 25m 수영장일 뿐이지만 자유형을 장착한 채로 회원들은 바다로 나아가는 것과 진배없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자유형 밸런스를 망망대해 속에서 찾아볼 것이다. 지금 당장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한팔 한팔 내젓는 스트로크의 횟수는 자연스럽게 축적되고 있다. 많이 저어본 사람만이 알게 되는 수영의 리듬과 밸런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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