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영강사k Oct 27. 2024

내가 너의 거울이라면

 수영장에는 거울이 따로 없다. 다른 운동과는 변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거울이 없다는 것은 내가 지금 취하는 자세를 볼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거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강사는 회원의 거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강사는 회원들의 자세를 정확하게 관찰하면서 필요할 때 회원들에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때, 회원의 근육 가동 범위나 특이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이를테면 어깨 부상 이슈가 있거나 물공포증이 있는 회원들의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다. 

 강사 이외에 강습 중간에 다른 거울이 생기게 되면 곤란하다. 내가 수영장에서 유일하게 누군가를 말리는 순간이 있다면, A회원이 B회원의 자세에 대해 이래저래 말하는 순간이다. 누군가는 내가 내 자세를 모르니 여러 사람의 피드백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피드백이 현저히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고 믿는 사람이다. 수 차례 그의 헤엄을 지켜보면서 지금 가능한 정도의 개선 지점을 얘기하는 역할은 수업 시간 동안 한 사람이면 족하다. 

 미현은 쉬는 시간에도 부지런히 연습한다. 8년 차의 강사면 이제 연차도 많이 쌓였으니 더 이상 연습할 게 없을 것 같은데, 미현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게으른 생각이었는지 번번이 깨닫는다. 어떤 날은 플립턴을 계속 연습하고, 어떤 날은 스타트를 계속 연습한다. 나도 덩달아 미현의 연습 패턴에 합류하곤 하는데, 미현은 자신이 언제라도 시범 보일 것에 대해서 예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거울이 없어 내가 나를 못 보는 곳이지만, 강사의 자세를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회원들은 자신의 자세를 연상해 볼 수 있게 되는데, 미현은 한 번의 시범을 위해서 틈틈이 쉬는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울 역할을 하게 될 때 내가 고수하고 있는 점이 있다면 반드시 잘하고 있는 지점에 대해서 충분히  얘기하려고 한다. 회원들은 자신의 수영에 뿌듯해하기보다는 대체로 불만족스러운 자신의 수영의 여러 지점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한다. 이를테면 어깨가 너무 벌어져 있는 건 아닌지, 손끝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는 건 아닌지 등 내 수영의 아쉬운 지점에 대해서 연거푸 설명한다. 물론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문제이고 해당 부분을 개선하면 좋은 수영으로 이어질 수 있을 때는 나도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문제점을 쉽게 지적하는 일은 거울의 미덕이 아니라고 본다.

 실제로 공포 마케팅이 유행하기도 하고, 그것이 효과적인 전략인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지만, 나와는 결코 맞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수영 영상이나 다른 정보 채널을 찾아보게 되면 ‘당신의 수영이 안 되는 이유 N가지’에 대해 주도면밀하게 설명을 이어 나가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수영이 아니라 다른 운동, 나아가 다른 장르에서도 ‘당신의 ㅇㅇ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더하면서 결과론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권위만을 찾는 사람들을 사회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나는 ‘되는 점을 잘 비추는 거울’이 되고 싶었다. 지금 자신이 생각했을 때 안 되고 있는 것 같은 그 순간에도 물속에서 되고 있는 동작들은 많이 있다. 안 되는 동작들 때문에 되는 동작들이 가려져서는 결코 안 된다. 우리는 되는 얘기들을 더 많이 수영장에서 나눌 필요가 있다. 공포의 자리에 응원의 자리가 대신할 수 있기를 제안해 본다. 응원과 함께라면 지금 잠깐 안 되는 동작들도 됨에 기세에 눌려 곧 되는 동작들로 이동한다는 것을 많은 회원을 비춘 거울은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전 09화 수영강사의 또 다른 직업 목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