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히캔리듀락어매거진

로빈3

by 위키별출신

그가 데려간 곳은 핑크플로이드 광팬인 조지안이 만든 중심가 외곽의 레스토랑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날 이곳에 데려온 이유를 명확하게 밝혔다. 함께 버스킹을 하자는 것이었다.

이 무렵 나는 공연 중 절반은 혼자, 나머지 절반은 기오르기, 파푸너, 일리야 등과 함께 공연하고 있었다. 셋 다 기타나 보컬이었기 때문에 피아노가 절실했다. 그리고 트빌리시에서 1미터나 되는 피아노를 끙끙거리고 끌고 다니면서 다른 사람 곡에 화음을 넣어줄 수 있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한 마디로 어쩌다보니 실력도 없는데 이 지역 영입 1순위가 된 거다.


내가 사용하는 np-11은 피아노 소리 뿐 아니라 EP, 오르간 등 제법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어서 이 또한 장점으로 작용했다. 특히 파푸너가 좋아했다. 한동안 가장 많이 한 공연 스타일은 파푸너 보컬, 일리야 기타, 나 피아노의 조합이었다. 파푸너가 조지안들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많이 알았기 때문에 그를 메인으로 세우면 안심이었다. 그 전에는 기타 반주에만 노래하다가 나의 등장으로 피아노까지 합쳐지자, 그는 한 곡 끝날 때마다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거야!’, ‘정말 느낌이 너무 다르다’라면서 내 손을 붙잡고 거의 뛰면서 즐거워했다.


하지만 사실상 수입이 가장 많았던 것은 내가 보컬 및 피아노를 하고 일리야가 기타, 파푸너가 바람잡이를 했을 때였다. 파푸너의 노래 실력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단언컨데 그의 재능은 사람들에게 웃는 얼굴로 다가가서 호감을 얻고 대화도 하고 수입을 증폭시키는, 즉 영업능력에 있었다. 타인이라서 금방 알 수 있는 것이었다….나도 누가 그런 식으로 날 분석해 주었다면 인생의 낭비가 줄어들었겠지?


이 당시 파푸너와 기오르기는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파푸너들과 공연하다가 기오르기와 공연하다가 했다. 파푸너에게 ‘왜 너희들은 같이 공연하지 않는 거야? 기타 둘로 공연하는 것도 나름 매력적인데.’라고 말해 봤지만 그는 기오르기와 좀 안 좋은 사건이 있어서 함께 공연하기 그렇다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나중에 알게 됐는데 여자 문제였다.)



어찌됐건, 나는 이미 다른 팀들과 버스킹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제안은 내게 달가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그와 나는 실력 차가 너무 많이 난다. 나는 사실대로 고했다.


“영광이야. 나도 사실 너랑 팀을 짜서 공연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어. 네가 공연하는 곡 리스트를 보면 우리가 좋아하는 밴드가 좀 겹치는 것 같아. 하지만 솔직히 말할게. 난 네 실력을 못 따라가. 아무리 카피곡 공연이라지만 너무 차이나면 좀 그럴 걸? 넌 지금 혼자서 해도 충분히 괜찮은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잖아.”


“돈을 벌기 위해서만 버스킹을 한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는 그렇게 말한 다음 눈앞에 놓여 있던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마셨다. 목젖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컵 안에 있던 맥주를 전부 위속에 버리고 나서야 고개를 바로했다.


핑크 플로이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The wall>이다.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1이 끝나고, The Happiest Days of Our Lives이 막 시작된 참이었다. 헬리콥터가 날아오는 소리가 곡의 앞부분에 등장하는데 이 소리가 꽤 크기 때문에 침묵의 어색함을 지워주었다.


그가 다시 말을 꺼냈다. 최근에 다른 사람과 함께 버스킹을 할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 남자가 좀 더 나은 수입을 벌어들이기 위해서 지금 로빈의 버스킹 스타일을 모두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던 모양이다. 노래도 좀 더, 조지안이 좋아하는 선곡으로 바꾸고 앰프도 좋은 걸로 갖추는 게 좋겠다는 식으로. 그리고 그와 내가 비슷하게 생각하는 거라면 실망이라는 투의 말을 덧붙였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거슬리는 소리를 들으면 그대로 넘어가지 못한다.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이유는 알겠는데, 그 남자는 그 남자고 나는 나지. ”


“….”


“그 사람에게서 기분 상한 게 있으면 거기 가서 따져. 나한테 와서 화풀이 하지 말고. 알겠어? 나 역시 돈만을 위해서 버스킹 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식으로 오해받거나 이죽거리면 기분 나빠.”


그는 뭐라고 대꾸를 하려다가 이마를 조금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이곳 사장은 로빈을 좋아했고 우리 대화가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끼어들어서 로빈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어 그의 친구들을 부르더니, 로빈의 기타 실력이 대단하다고 자랑하고 그가 얼마나 섬세하고 탁월한 연주를 해내는 지에 대해서 끝없이 칭찬했다.


말할 상대가 없어져 재미가 없어진 나는 그들을 내버려두고 레스토랑 바깥으로 나갔다. 저녁이 깊어지고 하늘엔 별이 촘촘히 떠 있었다. 워낙 대기가 맑아서 잘 보였다. 강원도 시골로 현미경을 챙겨서 친구들과 함께 별을 보러 갔던 밤이 떠올랐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로빈이 맥주를 가지고 날 따라 나왔다. 그는 내 손에 맥주를 쥐어지고는 왼쪽 자리에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앉았다.


“나는 나 혼자만 너를 잘 읽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너도 날 잘 읽을 줄은 몰랐어.”


그는 사과를 한 건 아니었지만 공손한 태도로 이쪽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태도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나는 ‘알았다’고 하면서 맥주를 마셨다.


“이 나라는 왜 여행하러 온 거야?”


이런 저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마침내 이 질문에 도달했다. 거짓말을 하는 걸 귀신같이 알아맞추는 상대 앞에서는 거짓말을 하기가 두려워진다. 나는 힐끗 그를 쳐다보고는 묵비권을 행사했고 그는 ‘연애네.’라고 힌트도 없이 진실에 도달했다. 나는 콧잔등을 있는 대로 찌푸리고, 저항을 포기하고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내 표정을 그렇게 잘 읽는 거야? 원래 사람들 표정을 잘 읽는 재주라도 있어?”


그는 히끅대면서 웃고 맥주를 마셨다. 둘 다 술이 약해서 그 이후 약간 더 마셨을 뿐인데 거의 만취에 가깝게 비틀대는 상태가 되었다. 우리는 술에 취해서 핑크 플로이드 광팬인 레스토랑 사장을 위해서 로빈의 기타 반주로 몇 곡을 불러주었고, 그 식당에 앉아있던 핑크 플로이드 팬들이 다 함께 떼창을 하며 화답했다. 30분 정도 그러고 놀았을 뿐인데 사장이 공연이 고마워서 계산은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로빈이 억지로 돈을 쥐어주려고 했지만 결국 사장이 이겼다. 우리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함께 살고 있는 호스텔로 걸어갔다. 나는 말했다. 뭐, 내일 정도에 호스텔에서 연습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그런데 왜 나랑 합주하고 싶어한 거야? 내가 공연하는 거 언제 봤어? 그는 내가 거리에서 공연하는 건 못 봤고, 호스텔 3층에서 중년의 캐나다 여자를 위해 문 리버를 불러주는 건 들었다고 했다. 넌 그 자리에 없었잖아, 라니까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계단 아래에 숨어서 듣고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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