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연애는 이제 사양입니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에서 해나 베이커처럼

by 위키별출신

다음 날 아침,

술에 약하기 때문에 해독에도 시간이 걸린다. 오후가 되어서야 잠에서 깬 나는 어제 결심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애초에 그를 피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은 그가 혹시 나에게 연애가 어쩌고 하며 성적으로 접근하진 않을까 하는 우려였는데, 다행히도 그런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그냥 표정을 잘 읽는 것 뿐이었고, 그저 버스킹 할 사람이 필요한 것 뿐이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호스텔에서 오래 묵고 있는 조지아 여자애가 타 준 코코아를 마시면서 나는 3층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호스텔에는 커다란 돔형의 거실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이곳이었다. 지름 20미터 정도 되는 원형의 바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높은 천장은 아래 층의 거실과 마찬가지로 높았지만 약간 더 낮아서 7미터 정도 되었고, 사방은 나무로 만들어진 사각형 문이 달려 있었다. 문이 없는 곳은 세로로 긴 창문이 촘촘히 달려 있다. 한 마디로 커다란 교회 안에 들어온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곳이었다. 어떤 상념에 잠기기에는 최적의 장소이기도 했다. 한쪽 구석에는 천장에 닿을 듯한 높이의 거대한 책장이 달려 있었고 오래된 책들이 잔뜩 들어차 있었다. 그 앞에는 낡아빠진 소파와 테이블, 그리고 중앙에도 소파와 테이블이 여럿 놓여 있다.


나는 바깥을 바라보면서 내가 왜 로빈을 피하려고 마음먹었는지에 대해서 떠올려보았다. 그건, 2017년 방영한 넷플릭스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13 Reasons Why>의 주인공 해나 베이커의 이유와 비슷했다. 이 드라마는 제이 아셰르의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10대 소녀가 주변의 인간관계에서 배신과 실망을 당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 드라마 내에서 해나는 왕따, 친구의 배신, 무시와 경멸, 데이트 폭력 및 성폭력까지 고통스러운 일을 줄줄이 당한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말로 생을 마감한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가 나에게 새로운 상처를 주지 못하도록 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이해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이해받고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에 그것이 온전한 나의 착각이었음을 깨닫고, 이 모든 것들이 그저 아름다운 거짓말이었음을 알게 되고, 속인 사람은 없는데 두 사람 다 속고 싶어서 제 스스로 눈을 가린 것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러면서 점점 멀어지고, 이별을 말을 고르고, 아니면 인성이 별로 좋지 않은 사람들은 비겁한 방식을 통해 자신의 감정이 식었음을 상대에게 전달하게 되고,

하는 이 모든 과정들이 지긋지긋하게 싫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얻게 되는 상처도 무시하지 못한다. 이번처럼, 착하고 남 생각도 할 줄 아는 제정신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생전 한 번도 당해보지 않은 놀라운 실험-잠수 이별-을 당하게 되고, 혹시 그 사실에 내가 기여한 바는 없나 자기 비하에도 빠졌다가 나오게 되고,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아직도 부족한 건가 하는 자기 의심에 괴로워지고 하는 문제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본질적인 괴로움은 아니었다.



설령 내가 인격적으로 괜찮은 상대방을 고르고, 함께 한 걸음씩 옳고 좋은 길로 나가게 된다고 해도 그 끝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해피엔딩 일 수가 없다. 나는 드라마와 소설과 영화 속에 살고 있는 게 아니니까.


젊음은 충분히 누렸다. 즐겼다. 그러니까 더 이상 경험을 더할 필요는 없었다. 이번 잠수 이별의 상처를 극복한다고 한들, 또다시 링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이미 나는 파킨슨 병에 한없이 가까워진 무하마드 알리였다. 머리 충격으로 의식을 잃어본 이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파킨슨병에 걸릴 확률이 50%는 높다고 하니까, 알리가 복싱을 일찍 관뒀다면 그런 병에 걸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상처가 쌓이는 걸 알고도 또다시 연애 시장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또 다른 의미없는 훈장 같은 상처를 받아들인다? 복싱을 빨리 접지 못해서 건강에 이상에 생긴 알리와 무엇이 다른가? 결국 우울증 같은 병으로 괴로워하게 될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간 쌓인 실패의 경험 및 횟수는, 세상이 미디어로 진정한 사랑이 존재한다고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 그건 진실에 한없이 가까웠다. 연애를 시장으로 비유하자면, 가짜 상품이 판을 치는 진실하지 못한 시장이다. 진짜를 사러 온 사람은 많지만 대부분은 가짜 상품이라는 걸 집에 가서 포장을 풀러봐야만 하는 경우가 태반인 거다.


그런 경험을 꼭 끝없이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몇 번 해 봤는데 안 되면 그 시장에 안 가면 된다. 세상에 흥미로운 건 연애만이 아니다. 그리고 적성이 아닐 수도 있다. 세상 모든 것에 적성이 있는데 왜 연애만은 적성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걸까?


상처는 아물 수 있다. 하지만 신뢰 기능에 손상받은 안테나까지 자동으로 수리되는 건 아니다. 물론 잠수이별자가 상처를 주거나 말거나 상처를 받지 않고 그저 씩씩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게 최고의 복수가 될 터였다. 하지만 나는 복수에 능하지 못하다. 나는 아직도 덩그러니 남아 있는 내면의 상처를 소리도 없이 주시했다. 그리고 그가 처음 준 것도 아닌 이별의 아픔들에 대해서 떠올렸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긴 하지만, 그것들은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헤어짐의 과정에서 인내심과 끈기와 배려의 마음으로, 왜 자신이 나와 멀어지게 되는 것인지 성숙한 태도로 설득하거나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제멋대로 자신의 방식으로 통고하거나 끝내면 그걸로 디 엔드. 아무리 전날 다정하게 굴어도 다음 날이면 끝날 수도 있다. 하나의 만남이 영원히 안녕을 고할 때마다 받았던 충격과 아픔은 사라졌을지 모르나, 그로 인한 배신감과 인간과 연애에 대한 불신은 잔뜩 적립되어 있었다. 혼자 상처를 추스리는 작업은 여러 번 반복하니 익숙해졌지만 그것 뿐, 충격과 상처를 덜 받게 되는 것도 아니니,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흔히들 말한다. 시간이 가면 낫는다, 상처로 내면이 성숙해진다고. 하지만 그건 내면을 눈으로 볼 수 없어서 하는 착각 아닐까? 본인의 내부가 얼마나 너덜너덜한지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 1위를 찍는 건 아닐까? 아픈 지도 모르고 꾸역꾸역 또 아플 만한 장소를 찾아가서 상처를 도로 후비고 해서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 해나 베이커처럼 살 것이다. 글루텐에 알러지가 있는 사람이 글루텐이 없는 음식을 먹고, 한의원에서 금체질 진단 받은 사람이 육고기를 끊어버리고, ‘폐에 이상 소견이 있다’는 의사의 진단을 듣고 금연을 결심하는 것처럼, 연애-free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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