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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피지 못한 채 져버린

by 심연

출근길에는 가장 먼저 봄을 알려주는 목련이 있다.


공원에 가장 풍성하게 둘이 나란히 서있다. 곧 꽃을 터뜨리려는 듯 알차게 차오른 잔뜩 맺힌 꽃몽우리들은 그곳을 지나다니는 것만으로도 설렘을 주었다.


봄만 기다리던 어느 날, 가지가 휑하니 정리되어 있었다. 가장 가까이 있던 집안에서 보기 답답하지 않게끔 많은 부분들이 잘려나가 서있던 자리 옆에 누워있었다. 그 많던 꽃몽우리는 그대로 매단 채로.


‘채 피지 못한 채로 져버렸다.‘


언젠가 나도 그런 말을 들었었다. 어린 날에 내 사랑이 피기도 전에 끝나버렸을 때였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어떤 말보다 저 말이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있다. 그때는 위로의 말로 들은 저 말이 어떤 느낌이었지, 그 말을 들은 나는 어땠는지, 잘 몰랐었다. 차마 피지 못한 꽃들이 져버린 그 느낌을.


시간이 흘러, 봄이 오기 전에 자연에서 느끼게 된 안타까웠던 내 모습을 알게 되었다. 아직 어려서 뭘 모르고 그 자체로도 얼마나 설렘을 가득하고 있는 꽃몽우리였는지.


저 꽃몽우리들은 따뜻한 봄이 와도 피지 못하고 그대로 져버리게 될 것이다. 왜 꽃을 피울 설렘을 갖게 하고 나서야 가지를 정리했을까. 차라리 꿈꾸게 하지 말지, 차라리 설렘을 모른 채로 정리되었다면 조금이나 덜 아프지 않았을까? 서있던 나무의 옆에 누워있는 풍성한 가지들을 보고 봄의 설렘보단 애석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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