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지랖 넓은 신규교사

by 밍갱

며칠 전 우연히 발견해서 올린 첫해 아이들 사진.

그 사진을 보다 보니 동건(가명)이가 눈에 들어왔다.

동건이는 아빠가 혼자 키우는 아이였다. 참 착한 아이였다,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할 말이 있을 때는 나한테 와서 속닥속닥 자기 이야기도 잘하고, 귀여운 아이였다.

엄마가 안 계시고 아빠가 혼자 키우시는데 신경을 잘 못쓰시는지 눈이 나빠서 칠판이 보이지 않는데 안경도 없고, 아이들이 동건이 옆을 지나갈 때 냄새난다고 킁킁 거리기도 했다.

얼마나 신경이 쓰이던지.

그 당시 나는 집에 가면 엄마 아빠한테 학교 생활 이야기를 조잘조잘 늘어놓던 스물넷 신규 교사였다.

인정 많은 우리 아빠는 동건이 안경을 맞춰주자 하셨고 엄마는 조카들 옷 작아진 걸 받아 오셨다.

든든한 아빠랑 동건이 안경도 맞춰주고, 옷도 챙겨주고..

그런 일이 가능했던 건, 아마도 그게 2006년이었기 때문이리라. 무려 20년 전.

내 오지랖의 끝판왕은..

어떻게 하다 동건이 엄마와 통화가 되었다.

동건이 엄마는 수원에 사시는데 동건이가 보고 싶으시단다. 동건이도 엄마를 보고 싶어 했다.

이건 내가 나서야 한다.

의정부에 있는 동건이를 엄마를 보여줘야겠다는 의지 하나로 지하철을 타고 수원까지 내려갔다.

둘이 퇴근길 지하철 사람들 사이에 끼여서 엄청 오랫동안 갔었던 것 같다.

수원의 한 주유소. 거기가 어머니가 일하는 곳이었고 그 근처에서 만났다.

셋이서 뻘쭘하게 저녁을 먹었다.

모자만의 시간을 따로 가졌는지, 안 가졌는지 어렴풋하지만 시간을 오래 함께하지 않았다.

동건이는 나랑 다시 지하철을 타고 올라왔다.

어머니는 이미 수원에서 재혼하셔서 잘 살고 계셨던 것 같다.

일하고 있던 주유소 사장님과 재혼해서 살고 있는 거 아닐까 하고 혼자 추측했었다.

동건이 마음은 어땠을까?

그래도 엄마를 보고 와서 좋았을까?

너무 잠깐이라서 슬펐을까?

어떻게 이 아이는 이렇게 담담하게 상황을 받아 드릴 수 있을까?

그리고 24살 신규는 무슨 오지랖에 아이를 데리고 수원까지 갔을까.

사진 속에 씩 하고 미소 짓고 있는 동건이를 근 20년 만에 마주 보니 그때 지하철에서 조용히 같이 앉아오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 착하디 착한 미소가 눈에 선하다.

keyword
이전 04화사운드오브뮤직 '마리아'같은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