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락이 이야기
첫 해 아이들과는 이것저것 한 게 많았다. 우선 내가 할 일이 없었고, 남자친구도 없었고,
아빠가 학교와 가까운 곳에 근무하셨는데, 퇴근길에 나를 태우고 집에 가시느라 아빠가 올 때까지 6시 7시까지 학교에 남아있곤 했다
학교에서 딩기당가 놀 때가 많았다. 혼자 교실에서 놀기도 하고 (놀았다기보다 수업을 준비했겠지 ㅋ)
동네를 배회하던 우리 반 아이들과 놀기도 했다. (아이들과 가까워져야 한다 생각했겠지 ㅋ)
지금 보면 참 할 일 없는 아가씨였다. 소개팅이나 하고 데이트라도 해보지.
그 동네는 그 당시 그 지역에서 학군이 매우 안 좋았던 곳이다. 원래는 잘 사는 동네였는데 매년 장마 기간이 되면 지대가 낮아서 집집마다 물이 넘치는 바람에 돈 있는 사람들은 다 이사 나가고, 없는 사람들만 모여 있다고 부장님이 말씀해 주셨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지금은 의정부에서 제일 대장 아파트가 들어서고, 비까뻔쩍하게 바뀌어 있다. 20년 전의 그 동네가 머릿속에는 그대로인데, 가보면 또 그 예전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다.
동락(가명)이는 엄마, 형, 동생 이렇게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혼하신 건지 돌아가신 건지 그건 모르겠다. 어머니는 밤늦게까지 일을 하시고 들어오셨고, 집에 오면 주무셨다고 했다. 나이차 많이 나는 형은 그해 군대에 갔던 것 같다.
엄마가 매일 밤 술을 마신다고 동락이가 내게 말했다. 흉을 본다기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짠하면서도 미웠을 것이다.
나도 어린 나이여서 그때는 동락이만 짠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세 아들을 혼자 키워야 하는 그 엄마의 삶의 무게도 참 고달팠겠다 싶다.
동생 양락이는 2년 후 내가 또 맡아 가르쳤다. 형아는 완전 개구쟁이, 문제아(?) 였는데, 동생은 사랑스러운 귀염둥이였다.
지금은 힘들었던 기억이 많이 흐릿해졌지만,,
그때 정신이 없긴 없었다.
막 동네에 PC방이 생겼고, 그곳에 중학교 날라리형(?)들이랑 갔다는 제보가 들어와 동락이를 잡으러 다녔다. 또 과일 파는 트럭에서 수박을 여러 개 깨고 도망가서 아저씨에게 연락이 오기도 했다.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고를 엄청 많이 쳤었는데. 내 머릿속의 지우개가 샤샤샥 지워버렸을 뿐이다.
내가 "너 이런 식으로 하면 옆반으로 보내버린다."라고 엄포를 놓았고, 진짜 책상을 밖으로 뺐던가??
내 예상으론 '죄송합니다' 하고 말을 잘 들었어야 했는데.
동락이는 흥분해서 울며 가방을 메고 뛰쳐나가 버렸다.
나가는 그 아이를 나는 또 뛰어가서 붙잡고, 안 온다고 버티고, 당기고...
쇼도 아주 쇼를 했다.
드라마를 찍었다.
엄청나게 큰일은 없이 무사히 동락이를 6학년으로 올려 보내고, 이어서 나의 새언니가 동락이를 맡았다. 그래서 계속 동락이 소식은 들을 수 있었다. 내 관심 속의 아이였다. 내가 좀 지켜봐 줘야 할 것 같은 아이였다.
그 후로 중학교 입학하고도 학교로 종종 놀러 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면 너무 반가웠다.
어느 날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동락이를 발견하고
"동락아!!! 잘 지내?"
물으니.. 중학교 자퇴를 했단다.
헉.. 중학교 자퇴라니.. 심장이 쿵 했다. 걱정도 되고, 안쓰럽기도 했고, 어떻게 살려나... 막 나쁜 길로 빠지는 거 아냐?
그러다 나도 육아휴직하며 학교를 떠나고 동락이도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그런데, 참… 아이들 걱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덜 해도 되겠다 싶다.
2023년, 그러니깐 2년 전,
갑자기 어느 날 동락이한테 연락이 왔다. 카톡으로.
어떻게 아직 내 연락처가 있을까?!!!
의정부에 애견 카페를 냈단다. 놀러 오란다.
친구 추가가 된 카톡에 프로필을 보니, 어엿한 카페 사장님이 되었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오래된 여자친구가 있고, 여자친구와 함께 애견을 동반할 수 있는 카페를 차려서 운영하고 있었다.
사진을 쭉 보니 동생 양락이는 휴대폰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고, 어머니도 곱디고운 한복을 입으시고 첫째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신 모습이 보인다.
마음이 놓인다. 그래...
그래,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다 태어난 데는 이유가 있다. 잘 살고 못 사는 게 어디 있겠나.
중학교를 자퇴했어도 자기 방식대로 이렇게 잘 살고 있다.
다 자기 몫의 삶이 있는 거고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가 인생의 행복을 결정짓지 않는다.
이렇게 잘 자라준 게 고맙고..
동락이란 이름도 내 마음 저 구석 한편에 안쓰러움으로 존재했었는데 이제는 꺼내줘도 될 것 같았다.
아주 잘 컸다.
애견 카페에 놀러 갔냐고?
차마 놀러 못 가겠더라.ㅎㅎㅎ
20년 만에 보기도 뭔가 응원해 주기도..... 한번 가볼까 하다가도 추억이 바래질까 봐 더 못 가겠다.
그냥 귀여운 제자로, 추억으로만 묻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