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20년 만에 느꼈어요
다시 깨어난 사랑세포
수정은 명훈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사진작가, 1년에 3번 제주도에서 촬영하는 사람, 고민 없이 바람처럼 구름처럼 사는 남자. 왠지 나를 안으면 오르가슴의 절정을 맛보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남자. 사실 그건 수정의 육체가 명훈의 몸을 보며 반응하는 떨림에서 나온 생각이었다.
“명훈 씨는 어떤 사람이에요?”
수정은 혼자 상상하기보다 명훈의 입으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듣고 싶었다. 명훈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냥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수정 씨에게 어떤 구속도 하지 않는 사람. 그냥 도와주고 싶은 사람. 뒤끝 없는 사람. 그래서 편한 사람. 그 정도로 해두죠.”
“그래요. 명훈 씨가 좋은 사람. 편한 사람이란 걸 알았으니 이제 복수의 시간으로 들어가 볼까요?”
수정은 자신이 말해놓고도 흥분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쿵쾅쿵쾅
수정은 심장박동으로 입술이 파르르 떨리자 윗니로 입술 안쪽을 살포시 깨물었다.
명훈은 아주 오래된 연인처럼 수정의 손을 잡았다. 나머지 한 손도 수정의 오른손을 마주 잡고 가벼운 미소로 말했다.
“지금부터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그냥 복수라고 생각하세요.”
“그럴게요.”
명훈은 수정이 탈 수 있도록 차 문을 열어주었다. 수정이 타자 가볍게 문을 닫아주었다. 수정은 자신을 존중해주는 매너에 황홀해 하며 태식에게 조용히 복수를 선포했다.
수정은 상처 입은 마음을 살포시 덮어두었다. 다른 남자와 같이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로 했다. 명훈은 그런 수정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이 선루프를 열어주었다.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이 동시에 느껴지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차는 바닷가 모텔 주차장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갔다. 주차장 입구는 알록달록한 천으로 발을 만들어 놓았다. 이성과 감성의 경계선을 넘는 순간 수정의 맥박은 빨라지고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수정은 자신에게 이런 뜨거운 욕망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20년 만에 처음 느껴보는 욕망이었다.
801호.
엘리베이터 안의 두 사람은 벌써 호흡이 빨라지고 있었다. 명훈은 수정의 손을 잡았다. 수정은 명훈의 손을 펴서 손가락 사이로 깍지를 꼈다.
‘나 마음의 준비가 되었어요. 이제 둘만의 시간을 가져 보는 거예요.’
수정의 마음을 이해했을까? 명훈은 손에 힘을 주며 지긋이 수정의 눈을 바라봤다.
‘참 아름다운 여자다. 그때 그 일만 아니었다면 지금부터라도 같이 살고 싶은 여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둘은 801호를 찾아 복도를 걸어갔다. 발걸음마다 은은한 향이 카펫에서 올라왔다.
“여기네요.”
명훈이 카드를 문손잡이 옆에 갖다 대자 ‘촤르륵’하며 문이 열렸다. 명훈은 먼저 들어가라고 문을 잡아주었다. 수정은 ‘이제 진짜 선을 넘는구나!’라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하지만 이내 내부 구조와 하얀 침대 시트, 먼바다까지 보이는 바깥 풍경에 감탄사가 나왔다.
“명훈 씨 너무 괜찮은데요! 저기 봐요. 고깃배도 보여요.”
“멋지네요. 전망 좋은 방에서 수정 씨랑 같이 있으니 더 좋은데요.”
나이에 비해 상당히 날씬하고 탄력 있는 몸매를 가진 수정. 명훈은 베란다 창문에서 밖을 쳐다보고 있는 수정의 허리를 뒤에서 살며시 감싸 안았다. 수정은 흠칫 놀랐지만, 온몸에 전해지는 명훈의 손길에서 사랑 세포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수정은 행복한 마음이 가슴까지 차올랐다. 작은 목소리로 신음을 내며 명훈의 손을 잡았다.
“명훈 씨. 고마워요.”
“좋은 사람은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그게 세상의 이치에요. 오늘 당신은 나에게 가장 귀한 사람입니다.” (사실은 예전부터요. 다음 말은 입속에서만 맴돌았다.)
수정은 백허그 상태에서 몸을 돌려 명훈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자연스레 둘은 마주 안은 상태가 되었다. 수정의 가슴이 명훈의 가슴에 밀착되었다. 명훈은 물컹한 수정의 가슴을 힘껏 껴안았다. 짜릿한 기분이 이런 걸까? 이어서 명훈의 입술이 다가왔다. 수정은 가볍게 눈을 감았다. 명훈의 혀가 들어오자 마중을 나간 혀가 서로 위아래로 휘감았다. 수정의 허리는 살짝 꺾여지고 머리는 뒤로 젖혀진 채 둘은 위에서부터 점점 아래로 하나가 되어갔다.
조용한 공간에서 숨소리만 거칠게 났다. 둘은 입술이 떨어지지 않은 채로 침대로 올라갔다. 수정이 편안하게 눕자 명훈은 수정의 위에서 다시 한번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중요 부위의 마찰이 있을 때마다 수정은 헉, 흐, 신음을 냈다. 명훈은 수정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급하게 서두르지 말아요. 천천히 해요. 급하게 하는 거 싫어요.”
“알았어요. 지금처럼 표현해주세요. 전 그게 좋아요.”
명훈이 수정의 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이듯 말했다.
명훈이 잠시 멈추자 수정은 스스로 옷을 벗었다. 명훈도 같이 벗었다. 이제 둘은 실오라기 하나 없는 완전한 나체로 하나가 될 준비를 마쳤다. 명훈은 수정의 가슴을 쓰다듬으면서 수정의 입술을 벌렸다. 이번에는 수정의 혀가 먼저 명훈의 혀를 감싸 안으며 들어왔다. 수정은 다시 한번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구름 위에 둥실 떠 있는 느낌이었다. 명훈은 그런 수정의 몸 구석구석을 키스하며 애무해주었다. 촉촉한 옹달샘에서는 명훈의 혀가 한참을 머물렀다. 수정은 하얀 침대 시트를 말아쥐며 쾌감이 극에 달아올랐다.
“아, 흑, 명훈 씨. 지금이에요.”
수정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명훈은 수정의 위로 올라가 수정의 안으로 미끄러지듯이 들어갔다.
“꺅, 흑, 흐, 흑”
수정의 두 손이 어느새 명훈의 엉덩이를 꽉 잡아당기고 있었다. 손에 힘을 줄 때마다, 명훈이 들어올 때마다 수정은 더 높은 구름 위로 올라갔다.
“아악, 흑, 사랑해요. 사랑해요. 아, 죽을 거 같아요. 계속해요. 좋아요. 아악.”
명훈은 수정이 내지르는 소리에 더욱 절정을 향해 달렸다. 드디어 화산이 폭발하듯이 명훈의 용암이 세 번에 나눠서 굵게 분출되었다. 수정은 따뜻한 액체를 느꼈다.
정관수술을 한 남편에게는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이후 자잘한 용암분출이 몇 번 더 있고 난 뒤 둘은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수정의 눈은 환희에 찬 눈동자로 빛이 났다.
‘이게 오르가슴이구나! 이렇게 좋은 걸 왜 못 느끼고 살았을까?’
수정은 명훈을 올려다보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명훈은 그런 수정의 만족한 표정이 너무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명훈 씨. 고마워요. 아, 20년 만에 처음 느껴보는 거예요.”
수정은 아직도 구름 위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입니다. 저도 같습니다. 이렇게 멋진 분이 어떻게 참고 사셨을까요?”
명훈도 수정이 보통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수정은 지난 20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남편 태식을 떠올렸지만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통쾌한 복수였다고 생각했다.
행복해하는 수정을 바라보는 명훈에게는 30년간 기다려온 역사적인 날이었다.
‘그때 수정이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혜선이가 죽지 않았을 거야.’
명훈의 따뜻한 미소 뒤에는 30년 전 수정과 얽힌 무엇이 있었다.
수정은 아무것도 모른 채 아직도 구름 위에서 내려오지 않은 상태로 스르르 잠이 들었다. 명훈은 자신의 품에서 잠든 수정을 바라보며 30년 전 대학 시절을 떠올렸다.